아기들은 다른 사람을 보면 낯을 가리고 엄마를 찾는데 우리 아기는 처음 보는 사람한테도 덥석 안긴다. 사람들은 아기보고 순하고 낯을 안 가리나보다란 말을 한다. 왠지 애가 탄다. 아기는 자신을 안은 새로운 사람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이내 적응이 됐는지 목걸이를 만지작거리고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려고 한다. 옆에 있던 내가 일어나서 자리를 비웠는데 신경도 안 쓴다. 가끔은 다른 사람이 아기를 안고 다른 곳으로 갈 때가 있다. 아기가 괜찮은지 확인하러 가면 아기는 되려 내게 무슨 일 있었냐고 반문하듯 말끔한 얼굴로 방실방실 웃는다.
아기는 생후 6개월부터 낯가림을 시작하고 주양육자와 애착관계를 형성한다. 그런데 어떻게 된 게 아기는 낯가림은 커녕 주양육자인 나보다 다른 사람을 더 좋아한다. 한번은 이모랑 놀다가 헤어질 때가 되니까 문 앞까지 쫓아가 서럽게 울기도 했다. 나와 아이 사이의 애착이 문제란 생각이 든 건 그때쯤이었다. 다른 주양육자들이 아기가 자신과 떨어지지 않으려고 해서 곤혹스러울 때 나는 정반대 고민을 했다. 처절한 인정투쟁의 시작이었다. 일부러 아기를 떨쳐놓고 밖에 나가는 척 하거나 다른 사람이 안으려고 하면 엄마 품이 좋았지란 의뭉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아기는 엄마의 절실한 바람과 다르게 사람들과 잘 어울리며 잘 지냈다.
그렇게 붕 뜬 애착을 유지하며 지내던 어느 날이었다. 다른 사람과 노는 아기 곁에 무심코 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내가 있는걸 확인하고 안심하는 아기를 봤다. 자세히 보니 내가 없는 곳에서는 ‘진짜 웃음’을 짓지 않고 행동도 조금 어색한게 눈에 띄었다. 엄마를 애타게 찾는 것만 애착이 아니라 어렴풋한 필요도 애착이란걸 조금씩 알게 됐다. 암, 울고불고 매달리는 것만 애착이면 내가 너무 한스럽지. 발달의 시기는 있지만 아기마다 차이가 있다는걸 매번 되새김해야만 한다. 뒤집기 시기가 늦다고 신경쓰다 때가 되니 아기 스스로 뒤집던게 얼마나 됐나고 말이다.
이렇게만 끝나면 기승전이 되는데 아직 결이 남았다. 앞에 글을 쓴 게 9월 즈음인데 돌이 다 되면서 조금씩 인지능력이 생기고 품안에 폭 안기기 시작한 아이는 맹렬하게 엄마를 찾는다. 놀다가 심심하면 음마음마, 조금 발을 삐끗해도 음마, 엄마가 안 보여도 음마, 계속 엄마를 찾는다. 화장실 문을 열고 소변을 보고 있어도 엄마를 찾는다. 숨바꼭질도 아닌데 계속 나를 찾고 아무것도 못하고 자기 옆에만 있으라고 한다. 자기 혼자 놀 때는 나를 껴주지도 않으면서 필요할 때는 곧 죽어도 꼭 옆에 있으란다. 흥칫뿡. 비로소? 애착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