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초기의 불편함과 기분 저하는 임신 중기의 '살만한 몸 상태'가 되면서 완화됐다. 임신 중기가 되면서 배가 조금씩 불러오는 것 말고 큰 변화가 없었다. 주변에서 이런저런 안부를 묻는 것 말고는 신경쓸 게 하나도 없는 거뜬한 상태랄까. 정체모를 무기력함이 아예 없어진 건 아니지만 속도 편해지고 태동을 느끼면서 맘도 많이 안정됐다. 임신 말기로 가면서 다양한 증상들이 나타났다. 골반이 조금씩 벌어져서 걸을 때 뒤뚱거린다거나 생리할 때처럼 가끔 배가 싸하게 아팠다. 아기가 점점 밑으로 내려가서 배 아랫부분이 묵직하고 신트림이 자주 나서 음식을 잘 먹지 못했다.

 

 

  예정일인 화요일이 지나도 본격적인 진통이 시작되지 않아 산부인과에서 유도분만 날을 정한 후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온 다음날부터 가진통이 시작됐다. 진짜 진통 같아 간격을 재가며 병원 갈 준비를 했는데 갑자기 진통이 뿅하고 사라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정도' 진통으로 아기를 낳는 건 어림도 없다는걸 알았어야 했는데 처음이라 알 수가 있나. 아기를 처음 낳는 초산인 경우 양수가 터지거나 진통이 5분 간격으로 짧아야 병원을 가란 얘기가 있다. 그만큼 자궁문이 열리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한다. 간헐적으로 진통을 하다 보니 진짜 진통을 해서 얼른 아이를 만나고 싶은 바람이 커졌다. 금요일 밤에 살살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그러다 말겠지 했는데 밤새 진통이 계속되고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느라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나중에 안 바로는 자연관장이라고 아이를 낳기 전에 몸이 미리 장을 비운다고 했다. 진통주기를 확인해보니 거의 3분대여서 진통이 그치지 않길 바라며 병원으로 갔다.

 

 

  새벽 6시, 병원에 도착했다. 잠이 덜 깬 간호사가 옷을 벗으라고 하더니 위생장갑을 끼고 질을 내진하고 2cm 정도 열렸다며 입원복으로 갈아입으라고 했다. 갑작스럽고 황망해서 뭐라 말도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분만할 때까지 이어졌다. 링겔을 맞으며 산부인과 출산 굴욕 3종세트라고 하는 제모와 관장을 했다. 나머지 하나는 회음부절개다. 30분마다 태아 심박수 체크를 하고 간호사들이 번갈아가며 예고도 없이 내진을 했다. 자궁문이 얼마나 열렸는지 확인하는 거라는데 질 속을 손으로 휘젓는 것 같은 통증이 둔하게 느껴졌다. 초음파 검사할 때와는 다르게 환한 형광등 불빛 아래서 시간차를 두고 내진을 하니 민망하기도 했다. 혹시 모를 수술에 대비해서 금식을 한 터라 입은 바짝 말라가고 진통은 계속됐다.

 

 

  언제 끝날지 모를 진통은 오후 12시를 기점으로 강도를 더해갔다. 그전의 진통이 그냥 커피라면 12시 이후는 TOP? 뭐라고 비유할 수 있을까. 누구는 큰 트럭이 배를 깔고 지나가는 것 같다고 하고, 다른 누구는 돌덩이를 얹어 놓은 것 같다고 했다. 익숙하지 않은 아픔이었다. 저 멀리서 기척을 내며 다가오는데 두통이라면 머리를 누르고 복통이라면 배를 움켜쥘텐데 이 진통은 아련하게 다가왔다 기세등등하게 존재감을 드러낸달까. 한번도 겪어보지 못해 낯설고 자궁 수축 때문에 오는 통증이란건 알겠는데 좀 막막했다. 신음소리가 절로 나고 신랑은 옆에서 골반과 등허리를 연신 문질러줬다. 그 전 진통이 아팠지만 견딜만 했다면 12시 이후에는 배 아래 근처에서 소용돌이치고 움찔거리며 통증이 시작됐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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