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민이가 엄마 마늘 까는데 바짝 붙어서 엄마 심심하지 말라고 이런저런 얘기를 종알댔다.

거실에 앉아서 가만히 지민이 얘기를 들었다.

 

- 엄마, 나는 통일이 빨리 됐으면 좋겠어.

- 왜?

- 사실 예전에는 통일 반대였거든. 우리가 행복하게 살면 북한이 싸움을 걸어서 전쟁이 일어나니까. (그럼 통일 찬성 아냐?란 질문은 생략)

- 그런데 왜 생각이 바뀌었어?

- 가만히 보니까 통일이 되면 우리나라가 일본이나 중국보다 잘 살 것 같더라구. 나는 우리나라가 잘 사는게 좋아.

 

 군인이 될거라고 했다가 요새는 엄마 따라서 요리사가 될거라는 민. 자신이 느끼는 그대로를 가감없이 털어놓는 지금 이때.

솔직하게나 소신있게란 말을 달고 살면서도 쉽게 속내를 털어놓지 못하는 어른들과 사뭇 다르다.

 

며칠 후, 지민이 엄마에게 다시 물었다.

- 그런데 엄마, 내가 내가 통일 되면 제일 하고 싶은 게 뭔줄 알아?

- 뭔데? (자못 궁금)

- 백두산에 가보고 싶어.

- 그건 이모도 가봤는데. (난 으쓱, 지민은 설마하는 표정)

- 그럼 금강산.

- 백두산은 통일 안 돼도 갈 수 있어.

- 그래? 그래도 통일돼서 갈거야.

 

 

 

  * 아침에 할머니들이 옹기종이 모여서 버스를 기다리고 계셨다. 할머니들은 미장원 아니면 병원을 가려고 새벽 첫차를 타는거다. 마을에 미장원이나 병원이 있으면 참 좋겠다 싶다. 할머니 말씀을 옆에서 가만히 엿듣고 있는데 김장 담그는 얘기가 나왔다. 으례 올 배추값이며 날씨 얘기를 하고 있는데 한분이 허리가 아파서 김치 버무리 힘들다는 얘기를 하셨다. 그러자 느닷없이 한분이 허리를 아주 리드미컬하고 유연하게 돌리며 '이렇게 허리로 버무리면 되지 않겠냐'고 하신다. 순간 깜짝 놀라면서 어찌나 웃었던지 살짝 민망해지고 말았다. 요새 마녀사냥 보고 '맞아, 맞아' 했는데 마성의 여자들이 이곳에 있었다.

 

 

 

  * 무슨 얘기를 하다 A가 '(쓰읍) 응? 오빠한테 자꾸 너너하고 그럴래?'하는거다. 장난으로 그러는거 알고,

"그래? 그럼 돈 줘. 오빠라고 부를게."

했더니

그럴거면 아예 '야 이 새끼야.'라고 부르라는거다.

오예~

이 새꺄, 저 새꺄. 나보다 나이 많은 성인 남성에게 막 그러다 그게 또 웃겨서 한참 정신 놓고 웃었다.

 

 

 

  * 한차례 눈이 왔지만 남쪽은 아직 단풍이 끝물이라 산책로를 거니는 맛이 났다. 차를 마시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빨강과 노랑에 홀려 사진을 찍었다. 뒤에서 누군가 뭐라고 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한테 하는 소린가?' 뒤를 돌아봤다. 츄리닝 차림의 한 남자가 내게 말을 하는 게 보였다.

 

- 왜 남의 사진을 찍고 그래요.

- 네? 저 나무랑 단풍 찍었는데요.

- 아니 아까 저기서부터 남을 막 찍고 그러면 돼요. 왜 그러는건데요.

내 목소리가 갑자기 커졌다. 의식하면서 의식하지 못한 목소리였다.

- 지금 나한테 시비거는거에요? (반말도 했던가?)

- 왜 내 사진을 찍는거냐고.

- 내가 지금 당신 사진을 안 찍었다고 말하잖아요. 카메라 확인해볼래요?

 

 남자는 계속 말하고 내 목소리는 더 커졌다. 쓰고 있던 모자를 벗고 큰소리로 말했다. 네가 자꾸 시비거는거면 경찰서 가서 확인해보자. 남자는 몇마디 더 하려다 뒤돌아 가버렸다.

 

 남자가 뒤돌아가는걸 확인하고나서야 긴장이 풀렸다. 그제야 다리가 저릿하고 숨이 가파왔다. 남자의 어눌한 말투와 왜소한 몸, 주변에서 산책하는 다른 사람들. 다른 상황이었다면 화가 나기 전에 '죄송합니다'란 말을 먼저 하고 알아서 자리를 피했을거다. 비겁한가? 아니. 비겁하지 않다. 이유없는 시비와 시선, 알아서 부자연스러운 행동을 보일 때가 더 비겁했을거다.

 

 오늘 나는 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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