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제가 구성원들에게 좀 더 높은 수준의 교양 지식을 요구했다면 태동하지 않았을 어떤 자의식이 생겨나는 것. 객관적인 자기 인식 없이 낭만화된 자기 긍정은 남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중2병'으로 향하는 지름길.

따라서 정말로 자신을 긍정하는 길은 자기 행위의 무의미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한윤형의 문제가 아니다. 그의 글과 내가 조우하는 순간이 첫페이지의 딱 이 부분밖에 없었다는 것이 문제. 새로운 언어를 재기발랄하게 설명하는걸 기대했던 탓도 크다. '은근 리얼 버라이어티 강남소녀'와 비슷한 느낌이다. 자기 얘기를 사회적 시류와 섞어 설명하는건데 일단 '자기 얘기'를 하는 당사자의 이야기가 흥미롭지 않다면 그 뒷 이야기에 포인트를 둘 수 없을 것 같다. '키보드 워리어'에서처럼 진영논리나 구태의연한 의견에 기대지 않은 점은 신선했지만 그 역시 아직 여물지 않은 느낌이 든다. 기존의 '말하는 입'과 다른점은 있지만 크게 다르진 않은 것 같다. 소문이 대단했던 '이별에도 예의가 필요하다' 역시 마찬가지. 존경받는 언론인 김선주의 세상이야기라는데 날카롭거나 깊지 않다. 사람은 좋을지 모르겠지만 책은 별로였다.

 

 생각을 쓴 글에는 비판적이면서 소설에는 관대한 이유는 뭘까.

 

  얼마 전 정희진 선생님의 '어떤 메모'를 보고 용서에 대해 다시 생각했는데 이 책에도 그와 비슷한 얘기가 나온다. 천지를 잃은 엄마가 화연 엄마에게 하는 말 중

 

사과하실 거면 하지 마세요. 말로 하는 사과는요, 용서가 가능할 때 하는 겁니다. 받을 수 없는 사과를 받으면 억장에 꽂힙니다. 더군다나 상대가 사과받을 생각이 전혀 없는데 일방적으로 하는 사과, 그거 저 숨을 구멍 슬쩍 파놓고 장난치는 거예요. 나는 사과했어, 그 여자가 안 받았지. 너무 비열하지 않나요?

 

 '완득이'에서 보여준 착한 사람들의 씩씩함, 뻔하지 않은 인물, 직유가 아닌 은유를 쉽고 간명하게 풀어내는 재주는 여전했다. 눈에 보이는 폭력 뿐 아니라 사람 맘 속에 있는 온갖 것들이 제각각 다른 이름으로 밖으로 표출될 때 생기는 긴장감을 잘 풀어냈다. 사람 사이의 미묘한 지점을 잘 짚어내는건 작가의 재능이다. 김려령은 그런 부분을 아주 잘 살린다.

 천지가 죽을 수 밖에 없는 수순이 좀 도식적이다. 요즘 세상은 자살이 전염병처럼 퍼진 마당이지만 작가로선 설명이 좀 필요했을 것 같다. 오랜만에 새벽까지 읽은 책. 아쉽게도 내 주위엔 책 좋아하는 사람 천진데 다들 완득이를 안 읽어봤단다.

 

 샐럽의 시크한 매력 운운하는 케이블 방송을 볼 때마다 선망 뒤에 항상 무시가 따라왔다. 그래봤자 난 시크함을 위해 노력하지 않을거야. 이러면서.

 

출근하면서 버스 터미널에서 흰머리를 쪽진 할머니를 봤다.

벤치에 앉아 다리 한쪽을 올려놓고선 할머니는 담배를 폈다.

이곳은 시골이고 누군가의 아내이거나 어머니인 그녀는, 혹은 그저 아무도 아닌 그녀는

그렇게 담배를 폈다.

셀럽의 시크함이 매체가 강요하고 주입한 정형화된 시크함이라면

흰머리 그녀는 그냥 멋진 사람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