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 폭탄 그리고 햄버거 - 전쟁과 포르노, 패스트푸드가 빚어낸 현대 과학기술의 역사
피터 노왁 지음, 이은진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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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의 선전효과를 위한 촬영기술과 통신장비의 발달은 섹스 산업의 기상천외한 소통도구와 영상을 발달시킨다. 전쟁의 물품 조달과 보급을 위해 이용된 기술은 대량 표준화 시스템으로 물건을 생산하는 방식을 도입시킨다. 패스트푸드 업체는 잠수함의 좁은 주방에서도 효율적으로 음식을 생산하는 방식에 착안해 분업형 조리과정을 시도한다. 


 심플롯의 감자튀김에서부터 패스트푸드의 질 나쁜 쇠고기를 대처하기 위해 공급업자를 획기적으로 줄인 사례, 반GMO나 동물권리 보호 운동가의 입장이 아니라 그 반대편에 놓인 사람들의 이야기,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생활용품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미국 경제의 종교적 신념이 GMO제조회사와 어떤 연관을 갖는지 등등. 책에는 흥미를 잡아끄는 구석이 많다. 게다가 제목과 표지마저 혹할만하다. 


 플레이보이의 휴 헤프너에 관한 부분도 재미있다.


 에스콰이어지 카피라이터 휴 헤프너. 청고도적인 가정에서 순결을 강요받으며 자란 헤프너는 성생활을 재정립하고 싶은 강한 욕구에 시달리다가 킨제이 보고서에서 크나큰 영감과 확신을 얻었다. 이 신예 저널리스트는 관습에서 벗어난 게걸스러운 성적 취향을 지닌 사람이 자기 혼자가 아닐 뿐더러 그런 욕구가 아주 흔하고 평범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매우 기뻐했다.


 그렇지만 지식백과적인 기술발전 이야기가 기술문명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그치진 않는다. 이 책은 현대 과학기술에 대한 가치 판단을 하지 않는다는 암시를 준다. 기술에 대해 말하면서 어떤 입장에 서지 않으며 그간의 논쟁과 기술발전에 대해서만 서술한다. 암시는 중립적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식품 가공 기술이 불러온 나쁜 영향을 좋은 가공 기술로 보완하는 움직임이 공식적으로 시작됐다'는 말처럼 기술의 폐해는 기술로 대체한다는 주장을 보면 꼭 중립적인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어떤 입장이 없다보니 책은 여러군데에서 머뭇거리는 듯 보인다. <갈등의 씨앗>에는 비타민이 들어있는 황금눈쌀의 연구자가 처음에는 모든 특허권을 갖고 있는 다국적 생명공학 회사가 공익을 목적으로 하는 자신의 연구에 훼방을 놓는다며 불만을 드러낸다. 연구 특허권을 허용받은 다음에는 유럽 쪽에서 반GMO 식품 규제가 심해 생산할 수 없다는 말로 끝맺는데 GMO의 안전성 검증은 물론 비타민이 함유된 것 말고 어떤 영양학적 가치가 있는지는 전혀 다루지 않는다. 그동안 GMO와 관련된 크고 작은 논란도 생략했다. GMO 책이 아니니 당연한거지만 예외적인 사례(예외적인 사례조차 다국적 종자회사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식량이 부족한, 혹은 문명의 혜택을 못받는 나라를 도와준다'는 식)를 통해 시장이 알아서 할 일을 이데올로기로 규제한다는 식의 기술문명 낙관주의는 좀 아닌 것 같다. 게다가 시장은 불공정하고 자본권력쪽으로 편중되어 있다. 


 저자는 사람을 살상하는 전쟁에 대해서도 건강을 해치는 패스트푸드에 대해서도 음탕한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포르노 산업에 대해서도, 일견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는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 오히려 저자의 전략과 의도는 어떤 태도를 드러냄을 통해 현대 과학기술에 대해 만연되어 있는 모종의 이데올로기에 강박되어버리는 것을 넘어서고자 하는 데 놓여있다. 이를 위한 시작점은 현실을 직시하고 인정하는 것이다. 그를 통해서만 인류에게 진정 필요한 그 어떤 종류의 실천적이고 생산적인 태도와 행동이 나올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 과정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중요한 건 기술이 결국 시장에 나온다는 점”을 깨닫는 것이다.  <알라딘 책소개>

 

 피터 노왁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그 기술을 발명하고 생산하는 사람들, 현대에 이르러선 대부분 다국적 기업에서 대부분 도맡은 부분을 짚지 않았다. 아니 책에서는 분명히 짚었다. 가치 중립적으로. 하지만 누가 기술을 개발하고 어떤 의도로 사용하는지, 어떤 가치 판단을 하는지도 중요한게 아닐까. 나쁜 기술이 어떻게 더 나쁘게 되었는지, 기술개발은 황금빛 미래를 약속하지만 세계는 더욱 불평등해지고 자원은 고갈되는 문제도 짚어야하지 않을까.  저자는 단지 어떻게 나쁜 기술이 현대 문명을 발전시켰는가를 보여주는데 책의 목적이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책을 넘어서는 오독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책소개에 나온 부분을 '기술은 시장에서 결정한다'로 잘못 읽었다. 어떻게 읽더라도 마찬가지다. 기술이 시장에 나오더라도 그 기술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마음가짐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지금처럼 기술을 위한 기술 예찬이 타당한지는 잘 모르겠다. GMO 뿐 아니라 각종 화학물질은 발암물질로 의심되고 화학물질 범벅 음식은 각종 질환을 발생시키고 있다. 이것 역시 현대 의학과 발전된 기술로 통제될 수 있다고 주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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