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체국
찰스 부코스키 지음, 박현주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2월
절판


다들 열성적으로 채웠다. 그러더니 번쩍 일어나서 다른 트레이를 잡았다. 현장 주임이 내 뒤로 걸어왔다.
-자
그는 나를 가리켰다.
- 이 사람은 벌써 생산량을 맞추고 있어. 두번째 트레이를 반이나 했잖아.
나는 아직 첫번째 트레이를 하는 중이었다. 현장 주임이 나한테 사기를 치려고 하는 건지 감이 오지는 않았지만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앞서 있다고 하니 느긋하게 하기로 했다.-86쪽

한편 조이스와 제라늄은 그대로였기 때문에 내가 버틸 수 있는 한 2백만 번은 해야했다. 조이스와 파리떼와 제라늄. 나는 야간 근무로 열두 시간을 일했고, 조이스는 낮 동안에 어떻게든 한번 하려고 나를 주물러 댔다. 그녀가 손으로 해주는 동안 나는 졸다가 깨다가 했다. 그러고 나서는 어떻게든 하긴 해야 했다. 이 불쌍한 여자는 미쳤으니까.-87쪽

새 두마리가 새장 문을 보았다. 저것들이 무슨 뜻인지 이해를 할까, 못할까. 저 조그만 머리들이 돌아가는 게 느껴졌다. 음식과 물이 여기 있긴 한테 저 열린 공간은 뭘까? 빨간 새는 훨씬 더 오래 망설였다. 새는 초조하게 새장 바닥을 거닐었다. 결정하려니 머리 터지겠지. 인간이건 새건 모든 것은 이런 결정을 해야 한다. 어려운 게임이다. 그래서 이 빨간 새는 서성거리며 골똘히 생각했다. 노란 햇빛, 윙윙나는 파리떼, 쳐다보고 있는 남자와 개, 무엇보다 하늘, 그 모든 하늘. 더 이상 버틸 수가 없다. 빨간 새는 철사 쪽으로 풀쩍 뛰어 올랐다.
3초.
휙!
새는 사라졌다.
피카소와 나는 빈 새장을 들고 집안으로 들어갔다.-잉꼬쪽

미국 전역 사무실에는 일종의 놀이가 있다는 거야. 사람들이 지겹거든. 뭘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그러니까 사무실에서 로맨스 놀이를 하는 거지. 대부분 시간 죽이는 것 말고는 별 의미가 없어. 가끔은 부수적으로 한두 번 붙어먹기도 하지. 하지만 그때도 볼링이나 텔레비전, 신년 파티처럼 되는 대로 여가를 즐기는 식이야. 그게 별다른 의미가 없다는 것을 이해해야 상처받지 않을 거야. 내 말 알겠어?-조이스에게쪽

그동안 잰코는 멈출 줄을 몰랐다.
이 자식은 나를 죽이고 있었지만 나는 빠져나갈 길을 찾지 못했다. 그때까지 거쳐 온 다른 직업들을 떠올려 보았다. 매번 미친놈들이 달라붙었다. 그들은 나를 좋아했다.-162쪽

그날은 무지막지하게 힘든 일요일이었다. 페이의 친구들 몇몇이 놀러왔는데, 소파에 앉아서는 자기들이 정말로 위대한 작가라는 둥, 이 나라에서 최고라는 둥 떠들어댔다. 그들 작품이 발표되지 않는 이유는 오직 작품을 투고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자기들 말로는 그랬다. 그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커피를 마시고 킥킥거리면서 도넛이나 뜯는 처지들이 생긴 대로 글을 쓴다면 작품을 보냈든 처박아 놓았든 별로 달라질 바가 없을 것이다.-184쪽

어쩌면 페이는 세상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나는 침착한 그녀가 자랑스러웠다. 더러운 접시를 씻지 않고 놔둔 것과 <뉴요커>나 보며 빈둥댄 것과 작가 워크숍이나 다닌 것 모두를 용서하기로 했다. 이 나이든 여자는 이 무관심한 세상에서 또 하나의 외로운 존재일 뿐이었다.-191쪽

<존스톤을 물에 빠뜨리자는 계획을 말하는 모토>
모토는 똥구멍부터 눈썹까지 활짝 웃었다.-231쪽

어쩌다 사람들이 그렇게 되는지는 모르겠다. 난 아이 양육비도 내야 하고, 술값, 집세, 신발, 양말 따위도 필요하다. 다른 사람들처럼 중고차라도 있어야 하고 입에 풀칠도 해야 하고 자질구레한 무형의 필수품도 필요하다.
여자들이라든가.
아니면 경마장에서 보내는 하루라든가.
그렇지만 모든 것이 위태롭고 빠져나갈 출구가 없으면 그런 생각조차도 들지 않는다. 우정 사업 본부 건너편 거리에 주차를 하고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렸다. 길을 건넜다. 회전문을 밀었다. 자석에 끌려가는 철 조각이 된 기분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2층이었다. 문을 열었더니 사람들이 있었다. 우정사업 본부 직원들. 한 여자는 불쌍하게도 팔이 하나밖에 없었다. 거기 영원히 있겠지. 나처럼 늙은 주정뱅이가 되는거나 다름없다. 뭐, 다른 동료들이 말하듯이 어디에서라도 일은 해야 하니까. 그래서 사람들은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였다. 그게 노예의 지혜였다.-232쪽

별로 달라진 기분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곧 깊은 바다에서 너무 빨리 나온 사람처럼 고통스러워하게 되리라는 것을 알았다. 특수한 유형의 잠수병이었다. 나는 조이스가 길렀던 빌어먹을 잉꼬들과 다를게 없었다. 새장 안에 갇혀 살다가 문이 열리자 날아 올랐던 것이다. 마치 천국으로 쏘아올린 총알처럼. 그런데 빠져나간들 천국일까?-사직 후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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