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청룡영화제에서 류승완 감독의 대리 수상 소감이 화제가 되고 있다. '세상의 모든 부당거래에 반대하고, 그런 의미에서 FTA를 반대한다.' 청룡영화제의 진심과 공정성엔 의심이 가지만 류승완 감독의 수상소감은 인상적이었다. 문화예술업에 종사하는 사람 중에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하긴 최효종을 고소한 강용석을 보니 국민여론이 끓어넘치게끔 군불을 때우는 작태가 곳곳에서 보이기는 한다. 

 주변 사람들은 한미 FTA 협상이 비준되면 농업은 망하겠지만 다른 분야에선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는 얘기들을 한다. 노동의 유연화, 노동 선택의 자유를 통해 우리에게 남은게 무엇인지 모르고 하는 소릴까. 우리 농산물은 아깝지만 소비자의 권리를 위해선 협상이 불가피하다란 입장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마트에서 다국적 기업이 가져다놓은 제품을 맘껏 고를 수 있는 자유란게 정말 이름 그대로 자유일까.

 예전에 통신판매로 데이터 요금제를 팔 때가 있었다. 전혀 필요도 없고 핸드폰으로 인터넷을 한다는 것 자체가 생경한 사람들에게 '고객에게 꼭 필요한' 것을 판다는 식으로 뻥을 친거였다. 데이터 요금제란게 필요한 소수를 제외한 사람들은 얼떨결에 가입을 해놓고 한참 후에 상품을 해지했다. 주민번호 인증이나 몇몇 과대 포장된 용어를 쓰지 못하게 하는 자체안전망도 있었지만 애초에 몇백명의 사람들을 TM으로 고용해 필요없는 요금제를 파는 것 자체가 문제였다.

 그때 그런 생각을 한적이 있다. '왜 이 사람들은 쓰지도 않고 필요도 없는 요금제를 가입해놓고 매달 그 돈을 지불하는걸까.' 실적이 안 나오고 맨날 팀장에게 끌려가 자신감과 열정 부족을 지적 받아도 나아지지 않는 성과 때문에 그 일을 그만 둔 후에도 그 질문은 잊혀지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간단한거였다. 사람들은 핸드폰 요금이 더 나오거나 덜 나오는 것 정도, 그렇게 신경쓰지 않는다는걸. 사람들은 아침에 일어나 회사에 출근하고 가사 노동을 하고 학교를 가는 일들, 옆자리에 앉은 누군가와 안 맞는 문제에 더 신경을 쓸 수 있다는 걸. 

  그래서 대개는 통신사가 알아서 자신의 요금을 계산해 청구할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한다.(물론 나처럼 신용카드 청구금액이 믿기지 않아 일일이 계산해보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 기대가 어긋났을 경우 소비자로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선택은 간단하다. 선택지가 얼마 없긴 하지만 통신사를 바꾸면 된다. 아니면 통신사 해당 게시판에 민원을 올리거나 관할 기관에 문의를 해서 계속 귀찮게 구는거다. 그런데 그건 너무 귀찮다. 그래서 통신사가 알아서 잘하겠거니 맡겨놓는거다.

 한미 FTA를 보는 대부분의 사람들 시각도 그렇지 않을까. 정부가 알아서 잘하겠지, 설마 독소조항이란걸 다 떠안고 이런 협상을 하겠어. 협상을 하는 사람들도 우리나라 사람인데. 헌데 어쩌나. 통신사가 자신들의 VVIP고객들에게도 버젓이 필요하지도 않은 요금제를 팔아먹는걸. 알아서 잘하라고 뽑아놓은 사람들이 알아서 잘 하지 못한다. 시위를 했더니 물대포를 쏜다. 다음해에 투표를 잘하자는 말은 허무할 정도로 막막하다. 한판 뒤집기도 아니고 맨날 이게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한미 FTA반대 문화집회를 하고 뒤풀이로 대포집에서 꼬막에 막걸리를 먹었다. 평소에 어패류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즈음의 꼬막은 너무나 맛있어서 달짝지근한 막걸리와 정말 잘 어울렸다. 물론 혼자서 꼬막에 막걸리였다면 맛도 재미도 없었을 것이다. 사람들과 어울려 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 그 분위기가 좋았으니 맛은 두말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때 나는 운동을 했다는 분에게 내가 알고 있는 쥐꼬리만한 얘기를 늘어놓고 있었다. 

 왜 아직도 구호를 외치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나요. 운동 방식이 투박한건 아닌가요. 몇년 전 그나마 상황이 좋았을 때 왜 제대로 하지 못했나요. 답이 안 나올게 뻔한데도 할말들이 자꾸 샘솟았다. 그분은 이런 얘기를 해주는게 참 고맙다고 했다. 답을 얻지 못했지만 나에게는 어떤 대안이 있는지를 생각해봤다. 기꺼이 헌신하고 누군가의 문제제기에는 열려있다. 그런 자세를 배워야하는걸까. 

 암암리에 미국산 소고기가 유통되고 있다. 호주산이 미국산으로 바뀌고 병원 가기 후덜거리는 세상이 와도 어떻게든 살 수는 있을 것이다. 밖보다 집이 더 춥지만 기름 보일러라 아끼는 지금처럼 그때도 민간화된 공과금을 어떻게든 견디면 될 것이다. 아마 그 후로도 어떻게든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왜 그렇게 살아야하는지, 삶을 살아가는게 아니라 견디고 참고 이겨내야만 그나마 살 수 있다는게 납득이 안 된다. 그게 참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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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27 23: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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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29 11:3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