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사에 의해 프로그래밍되어 연예 시장에 출시된 아이돌스타들은 태생적으로 기획 상품 이미지를 안고 갈 수밖에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출중한 기량을 갖고 있더라도 저평가되기 십상이다. 전성기를 마감한 뒤 홀로서기를 위해 눈물겹게 노력해도 그들을 폄하하는 시선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는다. 아이돌스타의 젊음을 예찬하다가도 조금만 인기가 시들하다 싶으면 바로 등을 돌린 채 연예계의 숨은 장인들을 찾아가는 예능 PD들과 팬들의 행보는 청년들을 따돌린 채 기성세대의 아성을 쌓아나가는 사회의 모습과 흡사하다. 젊은 우상들을 연예계 혹은 사회의 변방으로 내모는 장본인은 청춘 예찬과 과잉보호를 일삼으며 젊은이들을 기획 상품으로 길들여놓은 바로 그 어른들이다. 방송국 안에서도 밖에서도 우리 시대는 어린 세대의 나약함과 불완전함을 용인할 만큼 너그럽지 않다.

 여성 버라이어티 쇼. 기획 단계에서부터 습관적으로 끼어드는 매력 측정과 커플 강박증을 생각해보자. 공중파의 여자 버라이어티에 심판 역할의 남자 MC를 갖다 붙이는 관행은 놀랍지도 않다. ..‘골미다’는 모든 미션의 포상을 맞선으로 설정해 각개 경쟁을 부추겼는데, 어떤 남성 버라이어티에도 없었던 이러한 발상은 여성의 애인 없음을 공공연히 결핍 상태로 규정한다는 면에서 성차별적이다.
 여걸들이 싸워야 할 대상은 경쟁 시스템만이 아니다. 여성 예능인 집단을 불완전하고 깨지기 쉬운 것으로 여기는 편견도 그녀들의 입지를 위협한다. 물론 여성 예능인들에게도 책임이 없지 않다. 편의주의적 출연, 뜨고 나면 어려운 미션을 기피하는 안일주의, 자기계발과 성취에 이바지하지 못하는 과제 설정, 자극적인 토크 경쟁도 문제다. 
 아줌마들은 뭉치고 아가씨들은 대결하는 여걸 네트워크의 양상은 여전히 남성 중심으로 돌아가는 예능의 현실을 말해준다. 결혼과 출산으로 활동을 접었던 40대들은 조직력으로 지분을 넓혀야 하고, 경험과 역량이 부족한 20, 30대는 젊음과 매력을 내세워 살아남아야 한다. 예능이 골드미스, 영웅호걸 따위의 미명으로 아가씨들의 대결을 부추기는 현실은 안타깝고, 여걸들의 우정이 젊음과 아름다움을 포기한 뒤에야 실현된다는 사실은 서글프다. 양희은, 박미선, 송은이 캐스팅으로 여성들의 우정을 기분 좋게 묘사했던 여행 다큐 <행복한 수다 좋은 친구>와 같은 프로그램을 젊은 여걸들은 정녕 만날 수 없는가.

 예능에서 톱스타들이 존재감을 드러내는 방식은 예능활동으로 얼굴을 알려야 하는 직업 예능인이나 조연급 연예인들의 방식과 정반대다. 본업에서의 성취를 기반으로 톱스타가 된 이들에게 예능은 필수가 아니라 이미지메이킹을 위한 옵션이다. TV는 자기 작품을 홍보함과 동시에 소탈하고도 품위 있는 이미지를 대중에게 광범위하게 환기시킬 수 있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방송 노출을 최소화해 신비감을 극대화한 뒤 인기 프로그램이나 권위가 검증된 코너를 골라 출연함으로써 VIP로 대접받게 된다. 부재를 통해 역설적으로 존재감을 증폭시키는 행보는 공급을 제한함으로써 고객의 수요와 충성도를 끌어올리는 디마케팅의 전형이기도 하다.

 얼핏 보면 <우결>은 앞서나가는 연애담 같다. ‘결혼했어요’라는 과장법적 네이밍은 ‘살아보고 결혼하자’식의 진보론과 상통한다. 그러나 완벽한 연애를 향한 의욕은 진정성과 로맨티시즘에 대한 집착을 초래하며 <우결>을 보수적 판타지로 퇴행시킨다. 소녀시대 태연과 가상 부부였던 정형돈의 연인 공개에 대한 <우결> 팬들의 반발은 리얼을 가장한 드라마의 아킬레스건을 드러낸 사건이었다. .. 인위적 매칭의 부작용인 두 인격체의 충돌이 증발된 채 연인들의 소꿉놀이로 흘러가고 있다. .. 짖궂은 네티즌들이 인터넷의 <우결>관련 기사에 다는 “섹스하는 장면이 없다(그래서 가짜다)”는 댓글은 <우결>의 한계를 시사한다. 부부를 자처하는 닭살 커플들이 실제 연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진한 스킨십을 피하는 순간, <우결>은 착한 어른아이들의 순결 예찬이 되고 만다.

 중견 배우 윤미라는 한 인터뷰에서 천박한 배역을 맡게 되면 실감나는 연기를 위해 실제 모델들을 면밀히 관찰하지만 그 생활에 무작정 뛰어들지는 않는다고 했다. “배우는 무슨 역할을 맡든지 품위가 있어야 하는데, 실제로 천한 생활을 하면 사람 자체가 천해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수많은 채널과 기획사를 통해 프로그램과 방송 인력이 과잉 공급되면서, 소수의 고품격 프로그램과 톱스탈르 제외한 예능 제작자와 연예인들은 소비자의 시선을 붙잡기 위해 충격요법을 앞 다퉈 구사했다. 하지만 아무리 예능이 싼티와 자폭으로 진입장벽을 낮춰도 변하지 않는 사실이 있다. 소비자가 원하는 건 ‘세일’이지 ‘떨이’가 아니라는 것이다. 기획의 성실성과 최소한의 자존심마저 결여된 자기 비하는 상품의 신뢰성을 떨어뜨리는 하자 요인일 뿐이다.


  연예인이 무슨 공인이냐. 방송 자체가 국민의 세금과 간접지출(광고료)로 운영되는 공적 매체이고 연예인들의 활동 범위가 전적으로 시청자 여론에 따라 결정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들은 사실상 공인으로 취급될 뿐 아니라 정.재계 지도자들보다 훨씬 엄격한 도덕성을 요구받는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인 코드>의 저자 강준만은 한국형 평등주의의 이중성을 “자신과 대등한 타인에게는 엄격하되 직접 대항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권위에는 순종하거나 침묵하는 형태”를 설명했다. 유행의 창조자이며 고소득자인 연예인들이 공적 영역에서 대중과의 교감을 추구하며 유행을 창조하는 TV 예능 프로그램은 ‘대등한 타인’과 ‘강력한 권위’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다. 그렇기에 시청자와 여론의 이름으로 예능 프로그램과 예능은으르 비판하는 행위는 방송이라는 공적 영역에 대한 실력 행사로 귀결됨으로써 대중의 정의감을 충족시키는 수단이 된다.

 아마추어의 열정과 프로의 장인정신에 대한 열광이 진실한 인간관계에 대한 향수와 결합하면서, 근래의 서바이벌 쇼에는 하나의 뚜렷한 흐름이 보이기 시작했다. 한국형 오디션의 개성이라 해도 좋을 그 흐름은 나를 알아주는 참스승에 대한 그리움이다.


오늘날의 정보 쇼들이 예전보다 훨씬 실용적인 생활밀착형 내용을 다루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인포테인먼트 예능이 세상을 탐험하고 사회, 문화적 가치를 일깨웠던 진취성과 거시적 안목을 유보한 채 현대인의 불안과 자괴감이라는 네거티브 요소에 기대어 전문가 PR프로그램으로 기우는 것은 유감이다.

 시골 버라이어티. 삭막한 도시인과 푸근한 촌사람의 교류도 단골 플롯이다. 스타들과 현지 주민들 사이에는 젊은이들의 재롱과 어른들의 무조건적인 호나대라는 일정한 정서적 교환이 발생한다. 대학 입시와 취업 준비 양쪽의 부담감에서 해방된 1980, 90년대 대학생들의 나들이 같은 시골 체험은 농경사회의 기억, 치기에 가까운 청춘의 형기, 조건 없이 친밀한 관계에 대한 향수를 자극한다.
 농어촌이 자연과 낭만에 대한 도시인의 판타지를 충족시키는 수단으로 소모되는 현상과, 방송국 스튜디오에서 해도 무방했을 인위적 설정을 시골에서까지 고집하는 관성이 그것이다. 지금까지의 국가 정책이 도시인의 편의를 위해 농어촌을 희생시켜온 것처럼, 버라이어티 제작자와 시청자들도 농어촌을 언제든지 왔다 가면 그만인 일회용 관광지로 소모해온 것은 아닌지 반성할 때다.

 빈곤을 개인의 문제로 간주하는 무한경쟁 성공론의 확산도 방송 소재로서 가난의 소구력을 저하시키는 요인이 됐다. (지붕 뚫고 하이킥의 세경 자매의 궁핍함을 청승으로 받아들여 불쾌감을 표출한 네티즌들)


<등 토닥여주는 강호동과 서바이벌의 눈물>

 이유는 저마다 다르지만 울음의 기능은 똑같다. 눈물 흘림을 통해 그들은 자신이 따뜻한 마음을 가진 인간임을 확인한다. 심리적 상처와 회한을 눈물에 씻어냄으로써 패자는 실패의 상황을 받아들이고, 승자는 계속되는 경쟁의 법칙에 자신을 다시금 순응시킨다. 눈물로 정화된 자들은 더 이상 경쟁의 법칙에 저항하지 않는다. 눈물의 씻김굿을 통해 그들은 서바이어벌 전쟁터의 모범적인 전사로 살아갈 힘을 얻는다.
 예능 신파의 울음은-비록 창피하고 유치한 퇴행일지라도- 마음의 부정적인 감정을 안전하게 배설하는 행위다. 사람의 마음속에 질투, 분노, 자괴감 등의 악감정이 쌓일 때 그것을 해소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그런 상황을 막지 못한 자신을 탓하거나, 자신을 그렇게 만든 타인과 바깥세상을 공격하거나, 울음은 두말할 것 없이 전자에 속하는 행위로서, 비극으르 막지 못한 자신을 스스로 단죄하고 징벌한다는 점에서 대단히 현실 순응적인 반응이라고 할 수 있다.
 현실이 사람을 힘들게 할수록 마음속의 응어리는 커진다. 속에 쌓인 것이 많을수록 감정의 배설 행위는 빈번하고 격렬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요즘 감동과 휴머니즘을 핑계 삼아 거세지고 있는 예능 신파의 물결은, 거꾸로 보면 현대인의 정신건강과 자존감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음을 증언하는 징후가 아닐까?


 예능을 통해 세상을 보는 시선, 흥미를 유발하는 소제목, 분야를 망라하는 다양한 예능에 대한 접근은 이 책의 장점이지만  '좀 더 깊은 내용을 보고 싶은' 욕망을 충족할 수 없다는 점과 단순한 결론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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