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강정마을 청원 서명에 좀 더 힘을 보태려고 아는 분들에게 부탁을 했다. 내가 있는 부서에서는 반응이 시큰둥했는데 다른 부서에서는 꽤 호의적이었다. 누가 시켰냐고 묻더니 그냥 내가 하고 싶어서 한다니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다 서명을 해주시는거다. 내친김에 '종이컵 왠만하면 쓰지말지' 운동본부(그런게 있다면)에서 나온 팀장님과 깊은 대화를 나누며 시크릿식 '간절하게 바라면 이루어진다'란 강의까지 들을 수 있었다. 이 얘기는 좀 더 나중에 깊게 얘기할 기회가 생길 것 같다.
몇 사람의 서명을 받고 주소를 기입하고 우편번호를 찾고 있는데 심상치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우리과 팀장님이었다.
- 아치씨, 지금 뭐해.
- 강정마을이라고 있는데요. 거기에 해군기지를 만든대요. 그런데 그곳은 제주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에요. 그런데 주민 동의도 받지 않고 마구잡이로 공사를 밀어부치고 있거든요. 그리고......
- 자네. 여기 일하면서 정부주관 공사에 반대하면 되겠어?
- 그게......
- 여기 있는 사람들 멍청해서 가만히 있는거 아냐. 다들 똑똑하고 잘났지만 안 하는거야.(왜요?) 자네만 생각있고 할말 있는거 아니네.
평소 스타일이라면 조목조목 따지며 그 말이 왜 틀렸고 내가 왜 이렇게 할 수 밖에 없는지를 얘기했을 것이다. 물론 예나 지금이나 논리로도 감성으로도 누군가를 설득하거나 감동시키는 능력이 없으니 자기만족으로 지껄였을테지만. 하지만 이번엔 슬몃 웃었다. 다시 또 얘기를 꺼내길래 말끝을 흐리며 배시시 웃었다. 내가 하고 싶은 말만 하듯이 상대방 역시 하고 싶은 말만 할 것이다. 결국 그 순환을 벗어나려면 서로의 진심이 통해야하는데 일전에 팀장과 얘기한바로는 그분이나 나에게는 그럴만한 진정이 없다는걸 깨달았다. 결국 하고 싶은 말 대신 웃는게 최선이었다.
그리고 한참동안 고민. 민간인 사찰도 한다는데 서명한 사람들 조사해서 나뿐 아니라 서명을 해준 사람들에게 불이익이 생기진 않을까. 정말 똑똑한 사람 많은데 난 왜 시끄럽게 일을 만드는걸까. 고작 서명 하나인데 이게 뭐 그리 대수라고 이런 고민을 하고 앉았을까. 그런데 정말 이러다 짤리는거 아냐.
밖에 나오니 비가 퍼붓고 있었다. 조금밖에 걷지 않았는데 운동화가 흠뻑 젖었다. 바지도 축축하게 젖어버렸다. 그제서야 맘이 진정됐다. 진정됐지만 진정으로 내 맘을 다 알았는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등기로 보낸 우편물이 무사히 도착했음 좋겠다. (치니님, 혹시 보냈을 다른 분들의 서명도) 희망버스와 청문회가 한진중공업을 압박했듯이(그런데 왜 맘대로 협상을 해버린거에요.) 사람들의 희망과 간절한 바람이, 번거롭게 보내야했던 서명 우편이 절대보전지역 해제처분을 직권해제(너무 길다.)할 수 있는 작은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손바닥만한 걱정으로 그치는 일에도 이렇게 고민을 하는데 그분들은 어떨까. 그 맘에 가닿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