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느낌일까? 세계의 걸작 그림책 지크 65
나카야마 치나츠 지음, 장지현 옮김, 와다 마코토 그림 / 보림 / 200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서로 서로 다 친하지 않은 사람들과 밥을 먹은적이 있다. 건성으로라도 사람들 말을 거들고, 호응을 해줘야겠지만 그마저 귀찮아서 밍숭맹숭한 분위기에 묻어 가고 있는 중이었다. 소재가 떨어질 때 사람들은 다들 다음엔 무슨 말을 할지 머릿 속으로 그리는 것 같다. 김영하의 <포스트잇>에 보면 말풍선이란게 나온다. 만약 생각 풍선이 있다면 각자의 머리 옆으로 온갖 생각들이 적힐 수 있을텐데 그런게 존재할리가 없다. 가만히 앉아서 아무 말도 안 하니 심심하다, 말이 통하는 것만으로 얼마나 기분 좋은 것일까 따위의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음식이 들어왔다.

 분위기는 전보다 나아졌다. 고기를 굽고, 양파와 버섯과 마늘 굽는 시점이 언제가 좋을지로 한참 이야기를 나누고, 요새 상추값이 올라서 삼겹살에 상추를 싸먹는다느니(몇달은 잠자고 있던 리뷰였는데 요새 또 고기값이 올랐으니 어영부영 시의성이 맞다), 삼겹살은 우리나라에서만 먹는다더라, 식용풀로 비계랑 살을 붙인다더라, 그런데 아치는 왜 고기를 안 먹냐(안 먹는 이유를 아마 몇 번 설명했던 것 같은데 매번 까먹고 또 묻는다) 등등의 시답잖은 얘기를 나눴다. 하는 일 없이 손 짧은 누구 앞에 반찬을 놔주거나 마늘 구운걸 기름장에 찍어먹었다. 그런데 갑자기 사람들의 숨겨진 면들이 보였다.

 말을 조리있게 하고, 일처리가 깔끔한 누구는 얌체처럼 자기 먹을 것만 제 앞에다 놓고 오물오물 씹는다. 작은 일에도 괜히 놀라 별나게 봤던 누구는 고기 노래 부를 때는 까맣게 잊고 남들 입에 고기 들어가는 것만 봐도 배부른지 부지런히 집게와 가위를 놀린다. 평소 표정이 '난 뭐든 심각하게 받아들여'인 남자 사람은 표정만큼이나 밥도 꽤 심각하게 씹는다. 그것 하난 일관성이 있다. 아침부터 수영으로 시작해 고구마 몇알 다이어트를 몇주째 하고 있는 여자 사람은 어느새 허리띠가 풀려있다. 허리띠를 푼 김에 좀 더 맘을 연건지, 원래 그렇게 맘 씀씀이가 예쁜지 객지 생활하면 힘들거라며 나는 물론이고 사람들을 챙겨줬다.

 아마, 말을 하고 있었다면 보지 못했을 것이다.

 내 말에 도취되거나, 다음 말을 생각하거나, 끊임없이 머리로 생각을 정리하고, 상대의 이야기를 듣고, 말의 가닥을 잡으려고 애썼다면 나는 정말 이런 것들을 보지 못했을거다.

 나카야마 치나츠의 '어떤 느낌일까'란 책은 잠시 자신의 감각을 닫았을 때 다른 것이 보이는 순간을 얘기한다. 

 히로는 궁금한게 참 많다. 말을 할 수 없을 때, 보지 못할 때, 그리고 다른 감각을 쓸 수 없을 때 어떻게 느낄지 궁금하다. 히로는 친구들의 느낌을 가만히 상상해본다. 히로는 앞이 안 보이는 마리처럼 눈을 감고 어떤 느낌인지를 떠올린다. 히로는 마리에게 말한다. '보인다는 건 그런건가 봐. 조금밖에 들을 수 없는 건가 봐.' 귀가 안 들리면 어떨까. 엄마가 없다면 어떤 느낌일까. 히로의 친구가 히로를 보면서 그의 느낌을 이해하려는 순간, 히로를 관찰자로만 봤던 나는 바보 같은 기분이 들고 말았다. 

  과하지 않은 단순한 그림체는 현란한 그림들보다 많은걸 생각하게 한다. 이 책의 그림은 다음 장을 재촉하는게 아니라 히로와 같이 어떤 느낌인지를 떠올려 보게 한다. 말 많은 내가 잠시 말을 멈춘 순간처럼, 고요하게 말이다. 

 장애인이나 사회적 약자를 바라보는 감상적인 시선에는 곧 소거될 연민과 이유없는 죄책감이 있다. 그런 감정으로 그치기에 이 책이 주는 울림은 작지 않다. 검은비님 때문에 알게 된 책인데 조선인님과 아영엄마님의 리뷰도 참 따스하고 좋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