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그 혼란스러운 - 사랑을 믿는 이들을 위한 위험한 철학책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 지음, 박규호 옮김 / 21세기북스 / 2009년 11월
평점 :
품절


- 선사시대에 대한 무지 덕택에 진화생물학의 창의적인 판타지는 여전히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칠 수 있다.  
현대 인류를 과거의 한 지점에 고착된 '더 단순한' 형태로 환원시켜 설명하려는 시도는 대체로 다음의 네 가지 어려움에 부딪힌다.
1. 완전히 생물학적으로 설명될 수 있는가. 논리적 법칙은 자연의 속성이 아니라 인간의 사고 능력에 속한다.
2. 석기 시대 인간이 처했던 환경 조건에 관한 정확한 지식과 관련된 것을 확인할 수 없다.
3. 생물학적 행동과 문화적 행동을, 그것도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오래 전의 시공간 안에서 서로 분리시키는 것이 너무나 어려운 일이라는 점. 
4. 우리가 선천적으로 주어진 것으로 여기는 특징과 행동방식이 실제로는 석기시대의 환경에 적응한 결과로써 생겨난 것인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 남녀 심리 연애서의 문제점
-- 손쉽게 확고한 토대를 얻고자 하는 바람에 따라 의도적으로 단순화하고 조작하거나 습관적인 사고방식을 뒷받침해준다. 게다가 성의 화학작용을 설명하는 수많은 커플관계 지침서의 문제는 그것들이 하나같이 자신의 해석능력을 과대평가하여 수시로 월권행위를 한다는 데 있다.
 남녀 간에 호르몬 농도와 시상하부내 수용기가 실제로 차이를 보인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너무 성급한 결론을 내리도록 해서는 안 된다. 이런 차이는 사고방식의 원칙적인 차이를 증명하지 못하며, 누가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지에 대해 믿을 만한 진술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우리의 성격은 마치 온도계에서 온도를 읽어내듯 호르몬 수치를 통해 읽어낼 수 있으리라는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 생물학주의: 자연에 대한 지나치게 단순한 이해방식, 자연이란 인간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대상에 불과하다. 자연은 인간의 해석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가 아는 것은 우리가 자연에 대해 생각해낸 이미지가 다다. 이런 주장은 주장의 의도와는 다르게 페미니즘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해준다.
 생물학이 내놓은 모든 설명의 배후에서 개인적 해석과 문화적 패턴을 찾아내려는 운동은 어느 순간 불합리성의 영역으로 빠질 수 있다. 세계에 대한 모든 설명을 '말장난'으로 치부할 수 있다. (버틀러 같은 페미니스트들의 이론적 한계)
---> 인간이 본성적으로 성역할에 고정되어 있는지 여부는 사실 그렇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지 않을까.
 주어진 것은 생물학적인 성이다. 정체성은 '행위' 즉 습관, 감정, 자기 이해 등을 통해 생겨난다. 나의 성이 미리 결정된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실제로 '체화'하고 안 하고는 전적으로 나에게 달린 문제이다. 사회적 성이 단지 아주 느슨하게만 생물학적 성과 연결되어 있다는 주장도 마찬가지다. (다만 이런 성역할이 정치적으로 이용될 경우에는 충분히 문제될 수 있다고 본다) 성역할은 여러 먼에서 상대적인데, 그것은 언제자 '타인'의 시선 아래서 생겨나기 때문이다.

- 생물학에서 항상 어떤 효용을 찾아내려고 애쓰는 것은 무엇보다 신학의 유산이다. 신학은 자연에서 가능한 최선의 세계를 인식하기를 원한다. 이는 신의 존재에 대한 회의를 가라앉힐 수 있기 때문이다. 잘못 이해된 경제 이론들도 사람들이 걸핏하면 효용성을 부르짖는 데 한몫 했다. 

- 사랑의 생물학적인 유산은 아직 밝혀진바가 없다. 사랑은 유전적이고 신성한 번식의 사명에서 비로소 생겨난 것이 아니다. 옥시토신과 바소프레신은 사랑을 자극하는 중요한 재료다. 그러나 두개의 호르몬은 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복잡한 상태를 형성하기에는 한참 부족하다. 사랑은 호르몬 칵테일이 아니며, '사랑 호르몬' 같은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측면에서 본능은 도움과 교정이 필요하다. 내 본능과 행동 사이에는 커다란 심연이 가로놓여 있다. 사랑에서 아주 멋지고 안심이 되는 것은 그것이 본능을 훨씬 뛰어넘는다는 점이다. 사랑은 욕구이며 다양한 심상의 집합이다. 사랑은 필요를 통해 태어나고 경험을 통해 성장하고 각인되는 능력이다. 

- 우리 관심은 천편일률적으로 유전적이거나 이기적인 방식을 띠지 않는다. 우리는 파트너나 섹스 파트너와 사회적 게임을 즐기면서 상대의 시선에 자신을 투영한다. 우리 행위는 마치 당구공이 쿠션에 부딪혀 튕겨나오듯이 상대의 시선에 따라 반사된다. 우리의 삶, 성적 관심, 애착과 혐오, 자아상, 자존감 등은 이런 방식으로 '당구대'위를 구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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