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짝 심심했다. 병뚜껑을 갖고 노는 게 재미없어 앞에 있는 남자를 쭉 스캔해봤다. 조금만 크거나 작았으면 못났을 법한 이목구비가 아슬아슬하게 얼굴에 자리 잡은 남자가 거의 눕다시피 앉아 있었다. 오래 나왔던 배는 아니고 지난 연말을 기점으로 술 때문에 찐 듯한 뱃살이 보이고, 타이트한 면바지 때문에 사타구니가 불룩했다. 그때 왜 그 말을 했는지 모르겠다. 술을 먹은 것도 아니고, 정말 꼭 얘기하고 싶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저 단지 좀 심심했을 뿐. 아니면,

 남자가 뭘 자꾸 보냐고 물으며 나와 자신의 몸을 번갈아 봤다. 남자가 묻지만 않았어도 말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아니, 재차 확인만하지 않았어도 초면인 남자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남자도 심심했다. 이 남자 사람, 자꾸 졸랐다. 배가 나와서라고 말하자, 남자는 폴로 티셔츠를 정리하며 요새 배 안 나온 남자도 있냐며 거드름을 피웠다. 목 뒤쪽에서 악랄한 목소리가 재촉했다. 배 때문이 아니라고 얼른 말해.

 - 그 자세가 좀 도드라져 보여요.

 옷매무새를 가다듬던 남자가 내 눈을 바라봤다. 1초간의 정적. 남자가 자신의 사타구니 부근을 내려다본 후 다시 짧은 정적. 남자는 황급히 자세를 고쳐 앉았다. 아주 아주 불편한 S라인 자세로. 상대의 반응이 좀 귀엽다고 생각 했던 걸까. 좀 더 나가봤다.

 - 상상해봤어요. 그 윤곽은 어떤 모양일지.

 남자는 고민하는 눈치였다. 화를 내야할지, 웃으며 넘겨야할지, 나를 파렴치한으로 몰지. 재미있거나 대범한 성격은 아닌가보다. 이목구비가 아슬아슬한 남자는 내 몸의 흠집을 잡아내는 복수를 선택했다. 나로선 충분히 공감할만한 내용이라 적극적으로 수긍을 했다. 가슴은 작은 편이지만 예쁘다는 것만 살짝 고쳐주고. 김 빠지는 복수였다.

 술자리 농담을 빙자해 가슴 사이즈가 이러쿵 저러쿵 떠들어댈 때마다 '니 것보다 쓸 만하다'는 표정으로 넘겨왔다. 정색할 정도로 심각한 얘기가 아니란 분위기가 한 몫 했던 걸까. 크면 멍청해보이고, 작으면 섹시하지 않고. 가슴이 나와 봤어야 뭘 말해도 알아먹지. 정색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조금 은밀하고 재미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내가 재미있단 얘기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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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24 17: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25 00: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25 10: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뷰리풀말미잘 2010-10-03 2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치는 남자사람 고추 상상쟁이.

2010-10-04 19:0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