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갑제가 한국 저널리즘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다면 그곳엔 아마도 ‘사실 물신주의(fetishism of facts)’의 위험에 관한 평가가 올려져야 할 것이다. 또는 개개인의 ‘보는 눈(seeing eye)'의 입장에서 세계를 생각하는 시각주의의 함정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사회학자 로버트 머튼과 폴 라자스펠드는 ‘기술적 프로파간다’ 또는 ‘사실의 프로파간다’의 위험성을 경고한 바 있다. 토드 기틀린도 대중의 의식이 자질구레한 사실의 물신주의에 의해 압도되는 경향이 있다는 걸 지적한 바 있다.

사실 물신주의는 눈 중심의 관찰에 절대적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에 관찰자가 주로 어떤 환경에서 활동하느냐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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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기지 않겠지만, 조갑제에겐 <월간조선>에 전화를 걸고 편지를 보낼 사람들이 주로 어떤 사람들인가 하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에겐 오직 자신의 행동반경에서만 접촉하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조갑제가 자신은 늘 사실 중심일 뿐 이데올로기 편향적이지 않다고 주장하는건 일면 맞는 말이다. 그러나 동시에 분명히 지적되어야 할 것은 조갑제에게 자신에게 가해진 환경적 제약을 뛰어넘어 사실을 볼 마인드와 능력이 없었다는 점이다. 이데올로기 편향적이지 않다고 주장하는 건 안타깝긴 하지만 이해할 수는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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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갑제는 퇴임 후 인터뷰에선 10년을 더 늘려 80세까지 기자로 뛰겠다며 앞으로도 한 달에 한 권씩 책을 쓸 생각이라고 밝히면서 야구, 비행기 사고, 고래, 여행 등의 주제를 다룰 생각이라고 말했다. 조갑제가 부디 하루 빨리 야구, 비행기 사고, 고래, 여행 등의 주제에만 전념해주길 바라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한나라당은 보수로 위장한 친좌 정당”이라는 희소성 있는 발언에 열광할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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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25 11: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Arch 2010-06-25 11:06   좋아요 0 | URL
ㅋㅋ 그도 한때는 기자로선 최고라고 불렸다는게 의아했어요.
그런데 이 책 보고선 결국 환경이 일정 정도는 누군가의 시각을 제약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2010-06-25 12:4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