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찌는 방과 후 활동으로 미술을 한다. 시간이 안 맞을 것 같아 신청 안 한걸 자기가 직접 신청해서 학교 끝나고 그림을 그리고 온다. 옥찌가 방과 후 활동이 끝나서 집에 오는 시간은 대략 2시나 3시쯤이다. 옥찌는 단짝 친구인 A가 피아노 학원을 마칠 때까지 집에서 나랑 같이 숙제를 하거나 독서 일기를 쓴다. A가 피아노 학원에서 돌아오면 둘이 방정맞은 참새들마냥 지지배배거리며 방마다 들쑤시고 다닌다.
 
 오늘은 해가 좋아 속성으로 집 청소를 하려고 했다. 무조건 30분 안에 끝내는 속성 집 청소는 엄마에 의하면 그렇게 할거면 아예 하지 말라는 핀잔을 듣긴 하지만 나로선 적어도 발 디딜 틈은 있다는 점에서 안하는 것보다 낫다고 자부하는 청소법이다. 이불을 걷어서 털고, 청소기를 돌리고, 방바닥을 닦는다. 쓰레기통은 잽싸게 비우고, 재활용은 미친 듯한 속도로 분리한다. 대체 다 하고 남은 시간에 뭘 하려고 그렇게 서두르냐고 묻는다면, Nothing이랄 밖에. 판에 박힌 청소에 기념비적인 방법론을 제시했다는 썰렁한 농담보다는 깨끗함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취향이 반영된게 다이기 때문이다. 혹은 누가 어떤 취향을 갖고 있든 반복적인 집안일을 하게 됨으로써 둔해지는 감각을 여실히 보여주는게 다일지도.
 
 옥찌에게 걸레를 빨아줄테니 선반 위를 닦으라고 해놓고 이불을 털었다. 옥찌는 걸레에는 관심도 보이지 않고 진공 청소기를 끌고 오더니 자기가 해보면 안 되겠냐고, 포장된 선물 만지듯 청소기를 만지작거렸다. 두 번 일하는건 싫었지만 청소를 통해 아이의 적성과 흥미를 찾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 사용법을 알려줬다. 본건 있어서 구석 구석 청소기를 밀고 다니는 폼이 꽤 익숙해보인다.
 
 옥찌는 청소기를 가지고 청소를 하고 나는 말라비틀어진 걸레를 빠는데 누군가 자꾸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부웅거리는 청소기를 끌고 다니며 옥찌가 뭐는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혼잣말을 하고 있었다. 옥찌는 혼잣말을 하면서 흥얼거리고, 누군가에게 잔소리도 했다. 빙의된게 아닐까 살짝 걱정되다 애늙은이 같은 모습에 슬몃 웃음이 났다.
 
 초등학교 1학년이면 영어 과외도 받아야하고, 특기를 살릴 수 있는 학원 정도는 다녀야한다는데 이래도 될까 싶은 걱정이 없는건 아니다. 다른 애들 열심히 공부할 때 청소기 돌리다 혼자 뒤떨어지는건 아닐까란 핀트 안 맞는 생각도 해본다. 주위에 열혈 엄마가 없어서 그렇지 내가 좀 팔랑귀라 단순 공부 기계가 아니라 자아 성취를 위한 사교육 뭐 이런걸로 꼬여내면 안 넘어갈 자신도 없다. 그런데 오늘은 그냥 청소기 돌리는 옥찌에 만족하기로 했다.

 귀찮은게 가장 큰 이유고, 자기가 맘에 들고 꽂히면 뭔가 할텐데 굳이 설레발 쳐가며 정해주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그 과정에서 생활에 불편함 없을 정도의 괜찮은 습관 몇 개와 자기 일쯤은 거뜬히 할 수 있는 (이게 더 과한걸까) 배경만 만들어주고 싶다. 물론 자신이 한 일에는 알아서 책임지는 것도.

 A가 학원에서 돌아와 옥찌랑 오렌지배 독서 일기 빨리 쓰기 내기를 했다. 조금 후에 어린이집에서 돌아온 민도 합류해 셋 사이에는 미묘한 관계가 형성되었다. 일테면 민으로선 누나는 자기랑만 놀아야되는데 A에게 누나를 빼앗겼단 생각이 있고, A로선 쪼끄만한게 까불지만 자기 나와바리가 아닌 이상 세게 나갈 수 없어 눈치를 보는 것이다. 옥찌야 둘의 긴장관계를 즐긴달까. 물론 이건 순전히 말 만들기 좋아하는 내 추측일 뿐이다.

 아이들은 겨울 모자랑 장갑으로 잡기와 돌리기 놀이를 하며 싸우고 화해하며 거실을 한바탕 뒤집어놓았다. 어제는 블루마블 게임을 하다가 똥침하기, 안아주기, 뽀뽀하기, 엉덩이로 이름 오십 번 쓰기 등등의 벌칙을 정하기도 했다. 작은방으로 아이들을 보내놓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자기 주도적 학습이니 영어는 몇 살 때부터 습관을 들여라 등등의 말이 휙휙 머릿속을 스친다. 스치는건 스치는거고, 조용한 저쪽 방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궁금해서 엉덩이가 들썩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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