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릿크래프트씨는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에 사무용 건물을 짓는 공사장 앞을 지나게 되었다. 건물은 아직 골격만 있었다. 그때 빔인가 뭔가 하는 게 10층 정도 높이에서 떨어져서 플릿크래프트 앞의 보도를 박살냈다. 아주 가까운 거리였지만 플릿크래프트에게 직접 닿지는 않았다. 깨진 보도 조각이 튀어 올라 뺨을 강타했을 뿐이었다. 플릿크래프트는 당연히 머리가 쭈뼛 섰지만, 경악했다기보다는 충격을 받았다. 누군가 인생의 어두운 문을 열고 그 안을 보여 준 것 같았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플릿크래프트는 훌륭한 시민이자 좋은 남편이고 아버지였다. 그가 평범한 사람이었던건 외부의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냥 그렇게 주변 환경에 맞추어 사는 것이 편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런 식으로 교육을 받고 자랐다. 주변 사람들도 그와 같았다. 그가 아는 인생은 공평하고 정연하고 이성적이고 책임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철제 빔의 추락은 인생을 본래 그런 것과 아무 상관이 없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훌륭한 시민이자 남편이자 아버지인 그도 사무실에서 식당에 가다가 떨어지는 빔에 맞아 즉사할 수 있었다. 그 순간 그는 죽음은 그렇게 마구잡이로 찾아오며, 사람은 눈먼 운명이 허락하는 동안만 목숨을 부지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를 가장 괴롭힌 것은 그런 운명의 불공평함이 아니었다. 최초의 충격이 지난 뒤 그 점은 받아들였다. 그를 괴롭힌 것은 그가 영위해 온 정연한 일상이라는 게 인생의 본래의 길이 아니라 인생을 벗어난 길이라는 깨달음이었다. 그는 철제 빔이 추락한 장소에서 5미터도 가기 전에 이 새로운 발견에 따라 자기 인생을 변화시키지 않으면 다시 평화를 되찾지 못하리란 것을 확신했다. 그리고 점심 식사를 마쳤을 때 변화의 방법을 찾았다. 인생은 난데없는 빔의 추락으로 그 자리에서 끝날 수도 있으니 그 자신도 난데없이 살던 곳을 떠나서 인생을 바꾸겠다는 것이었다. 그도 남들만큼 가족을 사랑했다. 하지만 그 정도 재산을 남겨 주고 떠나면 생활에 문제가 없다는 걸 알았고, 그의 가족애는 결별을 못 견딜 만큼 남다른 것이 아니었다.

 그날 오후 그는 시애틀에 갔다. 거기서 배를 타고 샌프란시스코로 갔다. 그는 두 해 동안 정처 없이 떠돌다가 다시 북서부를 흘러든 뒤 스포케인에 정착해서 결혼을 했다. 두 번째 부인의 외모는 첫 부인과 달랐지만, 두 사람은 차이점보다는 같은 점이 더 많았다. 그 사람은 자신이 한 일을 후회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충분히 합리적인 일이었으니까. 그래서 자신이 결국 타코마에 두고 떠난 것과 똑같은 생활로 빠져 들었다는 사실도 모르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이 이야기를 좋아하는건 바로 그 때문이다. 그 사람은 철제 빔 사건 때문에 인생을 바꾸었다. 하지만 그 뒤로는 빔이 떨어지지 않았으니, 빔이 떨어지지 않는 생활에 인생을 맞춘 것이다.

<셰익스피어 배케이션>에서 김경은 이 이야기의 첫 부분을 읽고 인생의 의외성에 눈을 떴다고 했다. 그 뒤로 계속 몰타의 매를 읽고 싶었다. 추리소설이다. 게다가 반절이 넘었는데도 스페이드란 작자의 대범함만 기술될 뿐 사건의 전말이며 몰타의 매가 의미하는바에 대해 하나도 알려주지 않는다. 눈동자의 색과 표정으로 사람의 심리 상태를 여지없이 보여준다는 서술 역시 뭔가 마뜩치 않다. 그렇지만 주소를 잘못 기재한 우편물처럼 삽입된 이 부분은 정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