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많이 벌어서 평생 골프를 치고 싶다고한 남자가 있었다. 남자는 내게 골프를 왜 안 치냐고 물었다.

 그러고 보면 스키를 타본적도 없고, 해외여행을 한적도 없으며 명품백을 들어본적도 없다. 어쩐지 내 욕망은 주눅 든 아이처럼 길들여졌단 생각이 든다. 아이는 누군가로 인해 주눅든게 아니었다. 아이 스스로 원래 성격이 낭비란건 모른다고 덮어두거나 혹여 욕망의 사슬에 걸리면 자기 자체를 부정하게 될 것처럼 호들갑을 떨며 소비와는 담을 쌓는 생활을 해왔던 거다. 혹은 ‘저 포도는 너무 시어서 먹을 수 없다’는 여우처럼 골프를 친다거나 스키를 타는게 그렇게 재미있을리 만무하다는 반응을 보인 것일지도
  남자에게 골프는 환경을 오염시키고 운동효과도 별로 없고, 연고주의를 강화시켜 사회적인 의사소통의 비용을 크게 만든다는 대답을 했다. 말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얼굴이 벌개졌다. 남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궁색한 대답이라고 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내가 한 말은 골프에 대해 평소에 갖고 있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굳이 그 사람에게 그 말을 할 필요는 없었다. 게다가 이유들이 주렁주렁 달린 고구마처럼 물 밖으로 딸려나오자 정말 굉장히 치고 싶지만 형편이 안 돼서 못치는 것처럼 보일 것 같은 생각이 든거다. 말을 잘못했다기보다는 감기보다 더 빨리 눈치챌 수 있는 ‘나의 가난’을 대로변에 전시해놓았단 생각 말이다.
 가난을 부끄러워했을까? 그랬을지도. 어쩌면 부끄럽기보다는 낯선 상황에 대한 대처 능력이 좀 떨어졌다고 하는게 맞을 것 같기도 하고. 안 좋아한다, 재미없다면 넘어갔을 문제를 굳이 나 자신의 계급적 위치를 드러나게 할 수 있는 유형의 답변을 피한답시고 구구절절 설명하다보니 도리어 궁색해지고 만거다. 
 
 모두가 이 정도는 해줘야한다거나 여자인데 괜찮은 구두나 백 정도는 있어야 한다는 말보다 더 나를 곤혹스럽게 만드는 것은 '그렇게 살 수 있느냐' 혹은 '그래서 성격이 모났구나.'라는 거였다.  
- 골프 안 치고 살 수 있어? 그 돈으로 생활이 돼? 여유있는 사람들은 좀 편하거든. 그런데 없는 사람들은 악착같이 살아서 좀 팍팍한면이 있더라고. 
  사람들의 말이 불편한건 '잘 알지도 못하면서' 확신하거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안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혹은 그런 반응에 일일이 나 자신의 느낌을 분석하는 습관 때문인지도.

 가난한 사람 나름의 '서민적 행복'은 환상이라고 생각한다. 가난하면 모든 게 불편하다. 택시 한번 타기도 몇번씩 고심하며 어쩌다 한번 탈 때는 그 정도도 호사라며 자족하다가 이게 습관으로 굳어지면 큰일일테니 언제든 '지금이 마지막'이라며 못박아둔다. 가난한건 더 이상 빵을 사먹을 수 없어 자주 가는 빵집이 있는 골목을 지나치지 않는 것이다. 행여 주인이 빵을 사지 않는 자신을 보고 다른 집에서 빵을 사는줄 오해할까봐.  

 회사 일 때문에 중형차를 타고 다닌다. 기분이 색다르다. 행동 반경이 넓어진건 둘째치고 뭘 하나 해도 고급스러운 느낌이 든다. 자전거를 타고 다닐 때는 더운 날은 더운 날대로, 추운 날은 추운대로 뭔가 처절하고 지독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해는 곧장 이마 위에서 부서지고, 자동차들의 경적소리에 오르막길에서의 난감함까지. 이를 악물로 페달을 밟아야만하는 상황들이 더할나위없이 내 시간을 팍팍하게 만드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안다고 생각했다. 산에서 자전거를 타는 순간을 내가 얼마나 좋아하는지, 자동차를 몰고 다닐 경우의 비용부담에 대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짧은 호사에 맘이 혹하는거다. 간단하게 '사람 맘이 간사해서 그렇지.'가 다일 수 있다. 

 돈이 없어서 그랬지, 내게도 무언가를 맘껏 소비하려는 욕망 한둘쯤은 갖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자꾸 '자기 합리화'란 얘기가 떠오르는거다. 루저 의식이니, 열패감 등등을 소비하는 와중에도 소비가 곧 나를 증명하는 상황에서 버텨내가 힘드니까 자기 최면을 걸었던거다. 욕망을 막거나 자원낭비라며 둘러대지 않아도 될 것을 말이다.

 왼쪽편으로 갔던 동그란 은색 공이 다시 오른쪽으로 구른다. 오른쪽으로 갔던 공은 다시 왼쪽으로 구른다. 언제쯤 이 사이에서 균형을 맞출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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