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일한지 한달이 다 되어 간다. 그 사이 내 자리는 연필과 볼펜의 연필꽂이 서류함으로 채워졌다. 파티선엔 포스트잇과 업무 관련한 내용들이 핀으로 꽂혀 있고, 다이어리엔 이번 달 계획이 적혀 있다. 나는 내 자리에서 일하고 자고 알라딘을 들여다보는게 좋다.

 내가 일하고 있는 곳에서 어느 날 영문도 모르게 해고 당한다면 나는 어떻게 할까. 세상이 원래 가진 자들 논리로 움직이는거니까 체념하고선 다른 직장을 구해야할까, 노동부에 신고해서 떼인 월급을 받고 깔끔하게 정리해야할까. 월급을 받는 것만큼이나 곧 다른 일자리를 구하려고 하는 것도 중요하다. 아마 내가 쫓겨난다면 난 그렇게 할 것이다. 하지만 아마 그보다 먼저, 왜 내가 쫓겨나는지 이유를 알아내려 할 것이다. 이유가 합당하지 않다면 싸워서라도 내 자리를 지키려고 할 것이고. 내가 악독하거나 이해심이 없는게 아니라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회사에 고용됐지만 곧 나 역시 회사의 운명에 관여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철거민들에게 사람들은 말한다. 거기보다 더 좋은데 가서 살면 좋지 않냐고. 돈은 중요한 문제지만 그들이 떠날 수 없게 만드는 이유의 전부는 아니다. 그곳은 그들이 살았던 곳이며 앞으로 살아갈 곳이다. 잘 가는 슈퍼와 자주 보는 이웃들이 있다. 봄이면 눈을 맞추던 화단의 꽃이 있고, 골목의 좁고 들큰한 냄새가 몸 깊숙히 박혀 있다. 단지 오래됐다는 이유로 그곳에서 나가라고 하는건 정말 말도 안 된다. 그런데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글샘님의 서재에서 종잇장처럼 구겨지는 노동자들을 보았다. 비참했다. 마치 처음 알았다는 듯이 비참했다. 무기력해지는건 순간이었다. 손에 잡히는게 아무것도 없다.

 용산 참사에 대해 친구가 자신은 모른다고 말했을 때 난 속으로 생각했다. ‘어쩜, 그것도 모를 수가!’ 그런데 안다고 생각한 나 역시 모르고 있었다. 사실 관계뿐 아니라 그들이 느꼈을 감정에 대해서도 무지했다. 눈물이 나오고 맘이 답답하다.

 대한민국 희망 보고서 ‘유한킴벌리’를 읽었다. 아, 이토록 낯선 희망을 책은 태연하게 인용하는구나. 서로가 자극제가 되어 주고, 노동의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는 회사. 결정을 따르라는 통지가 아니라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몇일이고 노사간에 대화를 할 수 있는 회사. 평생 고용이 보장되는 회사. 노동조합의 활동이 무색할 정도로 노동자와 회사가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주는 회사. 희망이란 말은 참 아득했는데......

 책 속에만 있는 희망이 아니라 지금 현실에서도 희망이 좀 보였으면 좋겠다. 너무나도 안타까운 그들에게, 그들을 바라볼 용기가 안 나는 우리들에게도. 미디어법 반대 시위를 며칠 나갔다고 할 일 다 한 것처럼 방관했던 내게는 얄팍한 희망이라도.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기에 지금 대한민국은 곤혹스러운 것 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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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인 2009-08-06 1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느 순간에 희망을 얘기할 수 없는 나라가 되어 버렸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

순오기 2009-08-06 2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ㅜㅜ

Arch 2009-08-06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머큐리 2009-08-07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몇일... 할 수 있는것이라도 하자고 마음 먹고 있어요... 정말 할 말이 없어지는...에휴

Arch 2009-08-07 12:53   좋아요 0 | URL
으음... 힘내자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