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생은 선덕여왕을 볼때면 맥주를 꼭 마셔야 한단다. 긴장감 때문에 목이 탄다나 뭐라나. 술 먹는 핑계도 가지가지라고 했지만 한 캔 남은 맥주를 냉장고에서 꺼내 먹으면서 나도 선덕여왕 덕을 보는거라고, 선덕여왕은 후세의 아치까지 즐겁게 해주는구나란 생각을 잠깐 했다.  
  

* 김영하의 도쿄 여행자에 보면 고도의 집중력을 가지고 생맥주의 거품층을 만드는 내용이 나온다. 우리에게 맥주 거품이 술이 아닌 술을 사칭하는 '거품'에 불과하다면 일본에서는 맛의 풍미를 높여주는 하나의 잉여라는데, 그 잉여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일본인의 충만한 자의식을 볼 수 있다고 했다. '불필요할 정도로 과도한 숙련, 무가치한 초과, 장인은 그 모든 것의 '거품' 속에서 위태롭게 존재하는 눈부신 잉여이다.' 멋지다. 내가 마신 거품은 약간 쌉싸름했다.  

* 김영하의 책에서 본대로 사람들에게 생맥주와 일본의 상점에 대해서 그럴싸하게 귓뜸을 해주면 일본에 자주 다녀오냐는 반응을 접한다. 그럴때면 나는 짐짓 모른척 팔짱을 끼고 어떻게 말을 풀어볼까 생각하다 그냥 사실대로 말해준다. 왠지 상대방이 다녀온 일본과 내가 다른 누군가의 감각을 통해 접한 일본이 다르다면 그 간극에 대해서 설명해줘야할 것 같으니까. 거짓말을 잘 하지만 이어나가지는 못하고, 이어나간다고 하더라도 내것이 아니기 때문에 별로 재미있지 않다. 나는 내 이야기를 하는게 재미있다. 나를 콘텐츠화하는 것은 다른 것을 체계적이고 심도있게 풀어낼 재간이 없어서이기도 하다. 나처럼 남도 나를 재미있어 하지 않을까란 가끔씩 발작적으로 생기는 착각도 한몫한다. 

*  한잔의 맥주는 늦은 밤을 풍요롭게 한다. 

* 호가든을 처음 먹어봤을 때 달콤한 오렌지가 목 안쪽에서 퍼득거리면서 숨을 쉬는 것 같았다. 이건 뭐냐고 호가든을 권한 사람에게 눈짓으로 묻자, 상대방은 그럴줄 알았다며 어깨를 으쓱하고선 다른 맥주를 골라줬다. 나의 맥주 연대기는 그때 새로 시작했다. 

* 어제는 저녁도 든든히 먹은 주제에 앉은 자리에서 닭날개 다섯개를 먹어치웠다. 그 전날은 속이 더부룩하다면서 자정이 넘어 포장마차에서 사온 갈비와 소면을 양껏 먹었다. 오늘은 삼겹살로 배에 기름칠을 해놓고선(아, 이런 값싼 표현) 감자튀김이 무척 당긴다면서 말끔하게 다 먹어치우고. 그때의 술은 모두 맥주였다. 맥주는 먹을수록 배가 불러야 정상인데 얼음통에 담긴 맥주, 잔을 꽝꽝 얼린 곳에 따라 마시는 맥주, 집에서 간단하게 컬린스에 따라 마시는 맥주, 모두 기분만 좋게 하고 배를 부르게 하진 않았다.
 아, 어쩜 좋니. 배야 그렇다치고 얼굴 윤곽이 제멋대로 되는 것도 그렇다치고 여름이 다 가는데, 맥주가 그다지 맛있을 것 같지 않은 계절이 돌아오는데 어쩌면 좋니.(이건 반전이다라고 우기는 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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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큐리 2009-08-03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텨뷰가 너무 재미있던데요... 기대할께요 (이건 반전아님)

Arch 2009-08-03 15:12   좋아요 0 | URL
ㅋㅋ 머큐리님 그런거 좋아하시는구나. 감사합니다. 반전 아니길 바랄게요~
막 댓글 달다가 오늘 바람구두님이 올려놓으신 '착한 블로거'증후군이 떠올랐어요.
오늘만해도 벌써 세번째 알라딘에 들어와서 이러고 있는 아치. 무려 휴간데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