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묘한 색이었다. 다른 게들처럼 잿빛이거나 무채색이 아니라 발그레한 분홍과 연한 보라색이 합쳐진 몸체에 자꾸 건드리고 싶을 정도로 부드러운 파스텔톤의 다리. 조개 캐는 것도 잊고 난 자꾸 이 아이, 이름도 보르는 귀여운 게에 꽂혀서 갯벌에 코가 닿을 정도로 몸을 숙였다. 아가미인지 입인지 (생물 시간에 배운 것중에서 곤충은 머리, 가슴, 배가 다라는걸 아는 정도면 우수하다는 믿음을 갖고 있는 무지렁쟁이 Arch) 모를 조그만 구멍을 뻐끔거리며 숨을 쉬고 손을 대자 집게로 한번 건드려보는 이름 모를 게. 한낮의 갯벌은 그들의 숨결로 반짝이고 있었다.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정말. 

 이름을 제대로 아는게 없어 통틀어 조개인, 달팽이 모양을 닮은 무엇인, 지렁이류라고 짐작되는 역시 무엇인 생물들은 내 발과 손가락을 간지럽힌다. 갯벌 속에 숨고, 자기들끼리 할말이 있는지 한군데 모여서 웅성거리고 있다. 옥찌들을 따라온 부안 갯벌 체험에서 난 아이들보다 더 신이 났다. 신이 나면서도 자꾸 미안해져, 미안하면서도 혹 이곳까지 기름이 흘러들었던건 아닌지 의심이 생겨, 단순히 게만 보고 헤벌쭉 하며 웃을 수만은 없었다. 

 언론학 수업을 받을 때 지역 사안을 주제로 기사를 작성해오는 리포트가 있었다. 나는 새만금 사업에 대한 내용으로 리포트를 작성했다. 환경이 파괴되는건 동의하지 않지만 전라도 특히 전북이 갖고 있는 상대적 박탈감과 정치 논리로서 추진을 해야한다는 내용이었다.

 강준만 교수님도 '지방은 식민지다'에서 비슷한 논지의 말씀을 하셨다. (몇년 전 내 생각을 주장하기 위해 권위에 호소하는 오류를 범하는 중) 그땐 순전히 내가 갖고 있는 얕은 지식과 감정만을 내세운 주장에 다름 아니었다. 당시 좀 더 공부하고 그래서 제대로 알았다면 난 그런 터무니없는 주장을 레포트로까지 쓸 정도로 뻔뻔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난 너무 몰랐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으며, 웬만하면 크게 신경쓰고 싶지 않았던거다. 갯벌에서 한나절을 보내고 나서야 몇년 전에 단지 의견에 불과했던 그 생각이 얼마나 치명적이었는지 깨닫게 됐다. 내가 결정권자는 아니었지만,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힘이었을지도 몰랐는데 난 너무 안일했다. 햇볕 아래서 투닥거리며 살아가고 감미로운 색감으로 날 감동시킨, 아니아니, 내가 감동지 여부는 상관없다. 난 이 친구들에게 무슨 짓을 했던가. 우리도 발전해야한다며 그들 입과 몸을 차가운 콘크리트로 막은게 아닌가. 결국 '우리의 발전'-발전이란 말에 거부감이 들지만-보다는 가진 자들의 좀 더 다양한 투기지역 확보에 불과한 결과를 난 정녕 예상하지 못했을까. '우리의 발전'을 핑계로 이 친구들의 눈과 입을 막고, 근근히 살아가는 사람들을 다른 곳으로 몰아내는게 정당한걸까, 정당한걸 떠나서 가당키나 한 일일까. 

 지난번에 생태 기행을 가면서 만난 새만금 생태 조사를 하는 분의 얘기에 따르면 원래 만들어야할 세개의 둑 중에 예산 문제로 하나를 덜 만드는 바람에 예상보다 둑의 물 조절이 여의치 않아 조개들과 어패류들이 떼죽음을 당했다고 한다. 일 없이도 생명이 죽어나가는 판이다. 

 나는 이렇게 한나절, 따사로울 정도로 고맙고 행복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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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03 00: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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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03 00: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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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03 00: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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