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러면 왜 사귀나 싶은, 내가 아주 오래 전, 안달복달하며 이어보려고 했던 관계. 

남탓도 내탓도 누가 더 하자인지 우길 이유도 필요도 없다. 

- 니가 하는게 뭐 그렇지. 

 꽤 진실된 표정으로 이런 말을 건네는 남자는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정말 못생겼다. 아마 난 속으로 주제넘게 저런 말을 잘도 하는구나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웃을 때 주름이 자글자글해져서 이쁘네.'란 말에 시큰둥해지다가 다른 말들에 금세 웃어버리고, '너같은 애를 어디서 찾니'란 소리에 다시 샐쭉해서 입이 댓발로 나온 그녀, 그 여자. 우린 살아온 날도 달랐지만 어렴풋이 서로의 공통점을 느끼고 있었다. 지금의 그녀와 예전의 나는 모두, 봄햇살처럼 빛나는 순간을 잊지 못하는거다. 그래서 이게 아닌줄 뻔히 알면서도 미련하게 버티고 있는거다.

 잘 이용하지 않던 메일 계정에서 옛날에 만나던 친구의 편지를 발견했다. 손, 외투, 바닷가, 그리고 따뜻하게, 따뜻하게. 잊고 있거나 잃어버린게 아닌데 자꾸 그 말 하나하나에서 아련한 감흥이 감지됐다. 생각날 때마다 그 사람과의 연애를 반성하고, 다시는 연애에 들어선다고해서 맘을 놓지 말자고, 남자와 여자가 생각하는 연애관은 하늘과 땅처럼 넓으니까 좀 더 여우처럼 굴자 등등 반성의 가짓수는 많아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좀 맹할 정도로 다시 어딘가로 뛰어들 생각에 문득 문득 설레곤 한다. 설레임 중독 내지는 연애 돌입 전 증후군. 

 제목 때문에 내게는 별로 눈에 안 띄었던 '사랑도 흥정이 되나요.'라는 영화. 굳이 왜 이 영화에 출연했을까 싶게 겉도는 모니카 벨루치와 머리숱이 얼마 없는데도 꽤 섹시했던 남자배우가 나왔는데 그들 각각의 사정과 별개로 영화는 감독이 '몰라 몰라'라고 머리를 감싸며 찍었을게 분명할 정도로 막 만든티가 확연했다. 그렇지만 영화에서 잊혀지지 않는 대사가 있었으니, 

 남자 주인공의 친구가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가 유방암에 걸렸다는 얘기를  하는 부분이었다. 여자는 가슴을 절제해야하지만 살 수 있다는 친구의 말에 그럴 수는 없다라며 이렇게 말한다. 

- 언제 사랑에 빠질지 모르는데 그건 너무 가혹하잖아.(정확하진 않은거 같다. 아치가 그렇지 뭐.)

  사랑, 연애는 여자의 속성인가? 나는 왜 그토록 설레임과 자기연민에 번번히 빠지는가. 친구는 남자들도 연애 문제로 고민하지만 창피해서 겉으로 드러내놓지 않는다고 했고, 나 역시 빈번한 멤버 체인지와 여자다운 속성이라 일컬어지는 연애 문제에서 비껴나고 싶어 가까운 친구조차에게도 연애 고민을 토로하지 못했다. 그런데 글을 쓰거나 가만히 뭔가를 생각하고 있을때면 틀림없이 섹스든 연애든 사람 사이 관계의 이야기를 떠올리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연애만은 아니었다. 나는 사람으로부터 에너지를 얻고, 사람에게서 행복을 찾으며 마찬가지의 이유로 비통해한다. 사람 때문에 자지러지듯이 웃어제끼고, 펑펑 울어대고, 자책하고, 원망하고, 갈망하고, 배척한다. 온갖 감정들 사이에서 내가 아는 사람들이 자리해 있다. 연애뿐만은 아니었다. 연애가 좀 더 직접적이고 적나라한 방식으로 맺어진 관계였을 뿐이다. 이름 붙여지지 않은 사이와 조목조목 이름이 붙은 관계들 사이에도 분명히 내가 간과하거나 더 집중했을 감정의 웅덩이가 있을 것이다.  

 그럼, 아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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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06 09: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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