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어린이날이라고 사상 최고로 바빴다. 끊임없이 손님들이 밀려왔고, 난 로봇처럼 물잔을 내려놓고 음식을 나르고 테이블을 치웠다. 초반엔 이러다 살 빠지는거 아냐란 생각도 들었고, 다들 잘하고 있는데 나 혼자 힘든척 할 수 없다란 생각에 좀 더 오바해서 웃고 움직였던 것 같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손님들은 줄어들 기세를 안 보이고, 매장 안은 온통 사람들의 복작거림으로 터질 것만 같았다. 당연히 아무 생각도 안 났다. 가게가 포화 상태를 못이기고 터지기라도 했다면 아마 그 틈새로 빠져나간 사람들은 다른 가게로 들어가 그곳의 종업원들을 기계처럼 부리겠지. 아직, 터지지 않아서 다행이야. 무념무상의 상태로 서빙을 하다가 그릇이 부족한 비상사태를 핑계로 좀 더 정적인 워셔파트로 긴급 투입됐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 일이나 이 일이나 도찐 개찐이었다. 

 워셔, 말이 씻는다지 순전히 설겆이를 몸이 닳도록 해야하는 일은 디가 담당을 하고 있다. 디는 정신 장애가 있지만 야무지게 일을 잘해내는데다 우스개 소리와 춤에 일가견이 있다. 주방 안으로 들어가자  디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울고 있었다. 자칫 누군가 실수라도 하면 정신없이 상황이 악화될만한 일촉즉발의 순간, 디가 울면서 주문같은 말을 쏟아냈다. 평소에도 기분에 따라서 다른 사람들 신경쓰지 않고 같은 말을 반복하거나 큰소리를 내기는 했지만 디가 우는건 처음 봤다. 이렇게 바쁜게 디로써는 힘들고 답답했으리란게 느껴졌다. 디야, 울지 말고, 언니가 도와줄게. 내가 나타났잖아란 말을 하려고 미끄러운 바닥을 딛고 다가가는데, 해물 파스타를 만들던 트레일러가 별안간 들릴듯 말듯 욕을 했다. 

- 아, 씨발, 지금 뭐하자는거야. 

 잘못 들었겠지. 그래, 일하다 짜증나서 그런거겠지라고 생각하고 싶었지만 아니었다. 디가 다른 국면을 만들까 약간 눈치를 보며 디에게 직접적으로 하는 말. 평소에 점장이 디의 행동에 대해 약올리거나 업장 뒤쪽으로 불러 꼬집거나 '살짝' 때릴 때 느꼈던 불편함과 맞닿아 있는 폭력적인 언사는 여러가지 것들을 생각나게 했다. 

 씻고 닦고, 다시 씻고 닦는 단순한 일을 하면서 생각을 할 수 있는 머리가 있다는 것에 이따금 감사한다. 

 화나는 순간, 사람들에게서 감춰진 면이 드러난다는 것과 화를 낼 만한 상황과 화를 낼 수 있는 대상에 관한 이야기. 사람의 진면목은 도박과 여행, 술을 통해 알 수 있다고 하는건 의외의 상황 안에서 가둬진 욕망과 본성이 나올거란 예측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난 여기서 다시 지극히 개인적인 입장으로 돌아가 디를 보는 트레일러의 눈처럼 나도 옥찌를 보지 않았나란 생각을 해본다. 

 다시 화나는 순간. 디처럼 옥찌도 정신이 없었다. 옥찌가 정신이 없는만큼 나도 정신이 없었고, 어떻게 해야하냐며 나에게 묻는 옥찌에게 버럭 소리를 지른적이 있었다. 다른 사람에게라면 절대로 하지 못했을 말과 행동을 옥찌한테 얼마나 많이 했던지. 관찰 비디오라도 설치되어 있다면 지적받을 짓이 너무 많아 구석에 숨어서 아무것도 못할 정도로 문제가 많은 이모다. 내가 디를 대하는 사람들의 관습적인 태도를 비난하는 와중에 옥찌들을 떠올린건 비난은 고스란히 내게로 향한다는 것을 비교적 분명하게 알기 때문이다.  

 요 며칠 누군가를 만나면서 내가 이렇게 잔인한 사람이었나, 이렇게 깐깐했나, 이 정도도 못참을 정도로 예민했었나 싶은 작태를 사람들에게 많이 보여줬다. 왜 나만 그들을 보고 그들을 느끼고 그들에 대해 쓸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비난은 고스란히 내게도 향하는데. 내게로 향해서 비수처럼 꽂히지 않은건 그들이 어수룩하거나 덥수룩해서가 아니라 관심 부족과 잠 부족이 다일텐데 말이다.  

 '나라면' '나라도'에 감춰진 함정이 있는건 인정한다. 자기를 대입해서 '너라면 안 그럴 수 있겠냐'고 묻는건 우문이다. 그렇다고 옥찌에게 화내거나 디에게 욕을 한 트레일러의 입장까지 이해할 수는 없는 일이다. 마찬가지로 나 역시 제공했을 비난거리를 떠안고 있는 주제에 상대의 흠을 찾아내서 찧고 까부는 짓은 이제 그만 해야겠다.  

 디는 울음을 그쳤고, 옥찌는 지꼴리는대로 해대는 이모에게 가끔씩 편지를 보낸다. 젠장, 뒤끝없는 사람 제일 싫은데. 그럼 앞끝없는 사람 어쩌고의 농담이 떠오르긴 하지만 농담 안 해. 그 대신 꾀부리지 않고 디를 도와 접시를 닦았으며 옥찌에게 다시 또 화를 내면 서재 금지령이라도 내려야겠다란 생각을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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