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거 없었다. 그저 어제 브라질 총각인지, 아저씨인지, 혹은 미소년인지 모를(그 나라 기준으로)분께서 말을 걸어온 이야기를 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펄쩍 뛰며, '왜 그런 사람들과 말을 섞어.'라며 직접적으로 나를 타겟으로 삼지는 않았지만, 싸구려 운운하면서 가벼워 보일 수 있다란 충고를 한다.
그러면서 이곳의 치안 상태의 허술함과 다국적 인종들이 살기 때문에 위험하다는 얘기를 해준다.
- 밤에 말을 거는 사람들은 대개가 클럽에서 버려진 사람들이야. 그런 사람들이 말을 건다고 혹해선 안 돼. 그리고 메인 스트리트에서 hooker들이 사는 위쪽은 밤 10시가 넘으면 절대로 가면 안 돼. 그런 일을 당할지 몰라.
- 그런 일이 뭔대?
그녀는 말해주지 않는다. 그런 일을 입밖으로 내면 자신의 입이 더러워질새라 미리 질색하는 시늉을 보인다.
이럴땐 참 미묘하다. 나는 내가 가진 생각을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위험하더라도 그곳에 10시가 넘는 시간에 볼일이 있다면 갈 것이고, 한밤중이든 새벽이든 누군가가 말을 걸어오고 이 사람이 맘에 들면 얘기를 할 것이며, 내가 싼티나게 구는지 비싸게 구는지에 상관없이 행동할 것이다라고. 하지만 그럴때마다 그들은 냉담한 표정을 지어보이고 작은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다란 대답을 들려준다. 이럴땐 그저 한뼘쯤 그들 곁에서 떨어져 그들 말로는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이야기들에 귀를 기울일 따름이다. 가끔 맞장구를 쳐주고, 웃음을 짓고, 맘에도 없는 몸매에 대한 칭찬을 반갑게 들어줄 따름이다.
그녀는 미묘함과는 상관없는 얘기를 계속 해준다.
- 어제 온 손님은 목에 딱 힘을 주는데 그럴만 하더라고. L사 부사장이니까. (옆에 있던 사람이 와, 하는 소리를 내자 그녀는 자신이 마치 부사장이라도 된 듯이 어깨를 으쓱했다.) 와인 한병에 120만원인데 올때마다 먹어.
문득 바에서 한달에 천만원을 번다는 언니가 왜 아직도 고시원에 사는지가 궁금해졌다. 불편함을 못느낀다나, 그 돈으로 차라리 몸에 투자하는게 낫다나. 뭐, 그런거겠지. 그래, 당신 머리도 뭐 그런거겠지.
그녀의 이야기가 처음부터 별로였던건 아니었다. 처음엔 부럽기도 하고, 내가 여태껏 겪어오지 않은 삶에 대한 호기심도 있었다. 돈을 쓰는 재미란 뭘까, 호텔에서 브런치를 먹는건 어떤 기분일까, 훌륭한 선물을 받는다는건, 돈 한푼없이 누군가에게 연애감정을 어필해 여행을 다녀오는 것 등등. 그런데 내가 체험할 수 없는 것들을 간접적으로 그녀를 통해 접한지 얼마나 됐다고 난 벌써부터 싫증을 내고 있었다. 이게 내 태도의 득템인 체념에서 기인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럼 재미있을까란 생각이 먼저 들었다.
싼게 말야. 콧대 높은척 도도하게 굴다가 제대로 걸린 남자한테 몸과 맘을 내어주는게 당신이 말하는 비싼거라면 말야. 난 그냥 싼거 할래. 싼티나는 여자할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