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녘에 깨었다가 다시 잠들면 꼭 꿈을 꾸곤 하는데 오늘 꿈은 정말 다국적인데다 '대체 왜!'스러워서 한번 적어보려 한다. 물론 낮부터 꿈얘기를 한 미잘의 영향이 지대했다.
일이 끝난 후에 마트에 들렀다. 딱히 살 것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들어가서 얼마 안 있자 한무더기의 갱스터들이 마트 안으로 들어왔다. 현실에선 이런 상황이래도 늘 나와는 닿는점이 없었다. 풍경처럼 사람들이 있을 뿐이고, 말을 건네거나 나를 알아보는건 도인이나 종교인이 다였다. 그런데 그들은 어슬렁거리며 가게를 돌아다니다 곧장 내게로 다가왔다. 동양 사람을 처음 보는걸까? 설마 내게 오는건 아니겠지. 내쪽에 있는 물건을 보려는거야. 한발짝 뒤로 주춤거리며 움직이자 그들이 다가오는 속도가 빨라졌다. 억양이 센 영어로 그들은 내게 뭐라고 말을 했다. 그 중 몇몇은 내 물건이나 옷을 툭툭 치기 시작했다. 그때의 내 차림은 할리우드에서 저개발 나라의 사람을 등장시킬 때 고답적으로 코디하는 모습 그대로였다. 나는 계속 영어를 못하니까 놔주라고,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며 저항을 하며 그들을 피했다. 그리곤 간신히 빠져나왔다.
그리고는 다음 장면으로 점프. 내 꿈은 대개의 경우 별다른 연관없이 다음 장면이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예전에 살던 집에서 자려고 누웠는데 누군가 창문을 두드렸다. 문을 열고 보니 좀 전 장면에서 나왔던 무리들 중 한명이 다정한 미소를 보내고 있었다. 왜 좀 전에 나를 괴롭혔냐고 묻고 싶었지만, 영어가 안 됐다. 그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연인 사이이고, 밤마다 그는 창을 넘고 있었던 것쯤은 알 수 있었다. 섹스를 했던건 잘 떠오르지 않는다. (외국인과 섹스를 해봤어야 꿈이라도 뭐가 좀 떠오르지. 어흥?) 잠자코 그의 까만 피부에 얼굴을 파묻고 몸이 참 따뜻하다며 좋아하고 있는데 밖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기미를 살피니 아빠와 아빠의 친구들이 분명 여기에 그 녀석이 있을거라며 집을 들쑤시고 다니고 있는 것이다.
그 녀석이 바로 내 옆에 있는 사람인지는 확인 안 됐지만, 남자는 본능적으로 도망쳤다. 빛나는 까만 몸이 창문을 넘어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다. 아빠가 찾는 사람이 누구냐에 상관없이 한밤중에 다른 무리들이 내 방을 침범해 들쑤실게 분명한데 남자를 태연하게 내 옆에 둘 배짱이 없었다. 아마 그가 튀지 않았다면 내가 그에게 도망치라고 말했을 것이다.
내 방에 들어선 아빠와 친구들이었던 사람들이 친척들로 바뀌고, 누구를 잡는게 아니라 사냥을 한다는식으로 분위기는 다시 점프. 두꺼운 이불을 덮어놓은 여러개의 무덤 모양의 구조물이 마당에 있고, 누군가 그 중 하나를 겨냥했다. 그가 어디로 숨었는지는 몰랐지만 난 그의 안위가 걱정돼 엉성한 말들로 방아쇠를 당기는 시간을 늦췄다. 옆에 사람은 긴장을 주려고 너무 감질나게 하는거 아니냐고 농담을 던졌다. 난 옆에 있던 총을 뺏어서 입을 나불댄 사람을 쏘고 싶을 정도로 그 사람이 얄미웠다.
방아쇠는 당겨졌다. 사람들은 느릿느릿하게 걸어가 이불을 걷어냈다. 내가 걱정했던 남자가 아니었다. 아무도 아닌 사람, 혹은 우리 중의 누군가를 좋아했으나 실연당한 여자가 피철갑된채로 죽어있었다. 사람들이 경악해하며 대체 여기에 왜 사람이 있냐는 식으로 떠드는 틈을 타서 남자는 이불을 걷어내고 까만 점을 남기며 도망쳤다. 남자가 살아서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대체 이 여자는 이 늦은 밤 왜 이 청승을 떨다 결국 죽게되어버렸는지, 이불을 덮고 싶을 정도로 추운 날이었으면 그냥 집에 있지 싶어서 맘 한켠이 답답해졌다. 그런데 이 여자, 집은 있는거야?
사람들은 시체를 숨긴다거나 죽음을 은폐해야한다는 얘기를 하지 않았다. 죽어서 싸다느니, 재수가 없었다느니 등등의 아무런 말도 없이 계속 그녀 주위에서 웅성웅성거렸다. 그 소리는 꼭 내게 하는 소리인 것만 같았다.
꿈이 너무나도 버라이어티해서 늦잠을 잤고, 세수도 안 하고 일하러 나갔다. 세수야 가끔씩 안 한다지만, 대체 무슨 꿈이 이래. 개꿈이라면 개가 나와야하는게 아니냐고 어처구니 없는 소리를 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
프로이트, 거기 있는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