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내게 몇개의 처음을 선물한 남자다. 추파춥스 한통이 얼마나 무거운지, 받을땐 꽃처럼 미소지을 수 있지만, 몇개월에 걸쳐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일은 얼마나 버거운지 알게한 남자이며, 나를 누군가에게 소개할 때 똑똑한 녀석이라고 했던 사람이며, 노을을 바라보며 밝았던 하늘이 이렇게 소리없이 사라지는 것처럼 자신도 그러면 어떨까에 대해 생각해본적이 있다고 말한 사람이며, 처음으로 마술같은 모항을 알려준 남자였다.
그리고 그는 처음으로 내게 'NO'라고 말한 남자다.
바래다준다며 차를 끌고 나온 그는, 잠옷 바람이었다. 잠옷을 보자 난 단박에 잠이 생각났다. 그때나 지금이나 대책없이 무모했던지라
-같이 자고 싶어.
란 말을 내뱉었고 그는,
-다음에 같이 있자.
라고 말해줬다.
피곤하다거나 귀찮음, 쿨한체 하거나 거절당한 내가 자동차에 머릴 찧어대며 거절당한 여인네 연기를 펼칠까 에둘러 건넨 'NO'가 아니었다. 그냥 담백하게 지금은 아니야.
난 그게 참 산뜻했다.
거절은 은밀하게 과즙이 배어나오는 자두 씨앗을 핥듯 입맛을 동하게 한다. 그게 꼭 지금 자지 말고 나중에 연애 비스무레한거 하면서 단계를 밟잔식이거나 지금은 꼴리지 않는단 원초적인 감각 때문은 아닐 것이다.
자야할 때가 언제인지를 알긴 어렵다. 결국은 타이밍의 문제.
그때의 타이밍이 적확했음은 마술처럼 그가 내 맘을 읽었기 때문이었다.
혹은 떠보거나, 행여나 피곤한데, 그럼에도 부리는 억지.
나보다 그가 더 내 마음에 닿아있었다.
그 후로 오랫동안 그때의 그 분위기가 나를 사로잡았지만, 그렇다고 명백하게 모든 상황에서 흡족한 행태를 보인건 아니었다. 무려 몇 번씩이나 잘거냐고 물으며 구질구질하게 몸을 비틀어댄적도 있었으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상황모면의 발작이었거나 그야말로 저질스러운 짓이었다란 후회가 들기도 한다.
가슴이 뛰고 싶다면, 섹스를 지루한 의식으로 처박지 않으려면 환상범벅 사랑 사탕을 조금 더 입안에서 굴리고 싶다면 지금 여기에서 좀 더 멀어질 것.
존재의 품격은 적당한 외면에서 나온다. 예술계에 센세이셔널하게 데뷔했지만 체스에 빠져 지냈던 뒤샹의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