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눈은 기대감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이모는 산타 할아버지처럼 굴었고, 그럴수록 아이들은 애가 탔다. 산타 할아버지는 착한 아이들에게만 선물을 주신데요. 아이들은 사설이 길어도 언젠가 가방은 열릴테고, 이모란 작자가 분명 자신들의 기대에는 못미치는 선물을 꺼낼거란걸 알고 있었다. 기대에 못미치는 것과는 별개로 이모가 귀찮게 괜찮지않냐고 물어댈 것을 알기 때문에 자신들이 얼마쯤은 감동하고, 놀라워해야할지 미루어 짐작하고 있을 것이다.

이제 개봉만 남았는데,

갑자기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할머니가 어딜 나간다고 하더니 같이 오신 어른과 황급하게 신발을 신는 것이었다. 옥찌야 조금 컸으니 상관없었지만 민은 불안했다. 민으로선 느닷없이 나타나 선물을 준다고 으쓱대는 이모보다 어수룩하지만 자기 뜻 다 받아주는 할머니가 더 좋았다. 민은 자기도 같이 갈 생각으로 신발을 신으며 나갈 차비를 하는데 할머니만 나간 후 문이 쾅 닫혀버렸다. 그때부터 민은 방바닥을 뒹굴고 화를 참지 못하고 악악 소리를 질렀다.

이모는 현명한 인간이 아닌지라 민을 조금 달래다 바로 윽박질러버렸다. 평소처럼 이유없이 고집을 부리는거란 생각을 한 것이다. 옥찌는 옥찌대로 얼르다 안 되겠으니까 이모보고 이모가 좀 잘 해봐라, 그래도 안 되니까 시끄러우니 그만 울라며 동생을 타박했다. 민도 민이었지만 옥찌가 당황해하자 이모는 자신이라도 제대로 훈육해야겠다는 맘이 생겼는데, 그건 후일 돌이켜보건데 그때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다짐이었다.

급기야 이모가 장난감을 버려버린다고 협박하는데까지 이르자, 옥찌는 울먹이며 그건 아빠가 마지막 남은 돈으로 사주신거라고, 그건 아빠가 준거란 말을 했다. 이모는 안다. 아이들 아빠가 얼마 전에 일을 그만뒀고, 그가 앞으로 별다른 계획이 없다는 것을. 이모는 모든걸 다 아는데도 했던 말은 지킨다며 장난감을 버리는 시늉을 하고, 민은 민대로 사정없이 더 거세게 저항하며 울어버렸다.

가까스로 서로 타협점을 찾다 화가 나는 민의 맘을 잘 몰라 다시 뒤엉키다 울음도, 화남도, 실망감도, 애타는 맘까지 잦아들었다. 이건 우는게 아니라 기침이 나오는거라는 아이의 말을 들으며 상황이 끝나갔다.

숨겨놨던 장난감도 주고, 다시 아이들의 관심이 가방으로 쏠릴 즈음, 그 사람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렸을 때 떼쓰기 대장이었던 그 사람이 방금 전의 소요를 간단하게 정리해줬다.

- 정 떼려고 그러네.

우린 그렇게 정이 깊지 않았는걸? 그리고 큰 아이는 안 그러는데.

- 걘 컸잖아. 작은애는 아직 뭘 잘 모르고. 네가 갑자기 떠났으니까 배신감을 느꼈을거야. 그 앙금이 남아있는 상태에서 네가 다시 돌아오니까 낯선거지.

그런가? 전화를 끊고 민에게 물었다.

- 민, 아까 울었던게 이모랑 있기 싫어서였어?

- 응.

화가 덜 풀린 목소리로 씩씩대며 민이 말했다. 민망하다며 웃었지만 민망하기보다는 미안했다. 살을 부비고 티격태격할때나 이모지, 갑자기 나타나 이모 행세를 하려고 했으니 얼마나 거리감이 느껴졌을까. 그걸 작은 머리로 알 리가 없지.

산타 할아버지 흉내는 그만두고 조잡한 장난감들을 꺼냈다. 우린 옥찌들이 여전히 좋아하는 스티커를 가지고 놀았다. 하나 붙일 때마다 어떠냐고 물어오는 옥찌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동작을 보여주며 멋지단 얘기를 해줬다. 민은 옥찌가 준 멋쟁이 공주에게 예쁜 드레스를 입히고, 옥찌는 귀여운 여자 아이에게 옷을 입히며 이건 이모라고 해줬다. 옥찌의 맘에 어떤 것들이 스치고 다져졌는지 난 모른다. 다른 때 같으면 이건 누구야, 저건 누구야, 제일 예쁜건 이모할래란 말을 애써 갖다 붙이며 내가 어설프게 앙탈을 부렸을텐데 이제는 이 꼬마가 알아서 다 챙겨준다. 참 미안했다. 민도 이제 좀 내가 보였던지 자꾸 고모라고 부르던걸 이모라고 해주고, 그것도 꼭 '큰'자를 붙여 큰이모라고 하는데 왜 좀 더 보듬지 못했을까, 왜 내 성질대로 하려고 했을까, 난 '왜'란 말들 앞에서 할 말을 잃어버렸다.

아이들과 같은 공간에서 보송거리는 공기를 들이마시다보면 자꾸 아랫배가 따뜻해진다. 미안함과 다시 또 미안함이 겹쳐진 목소리로 민에게 물었다.

- 민, 아직도 이모랑 같이 있는게 싫어?

민은 아까 말했던걸 기억해내곤 쑥스럽게 웃으며 고개를 세차게 흔들어줬다.

이쁜 녀석,

할머니들이 아이들한테 하듯이

예쁜 사람. 예쁜 사람들이 내 옆에서 쿵쾅대며 나를 들었다 놨다 몸을 부딪쳐오며 신나게 놀고 있다. 신나게, 신나게 놀자, 응? 우리 신나게 놀면서 더 친해지자고! 전처럼 말고, 지금 이렇게 우왕좌왕하면서 이렇게 틈틈히 새어나오는 비밀들을 보듬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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