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전화
일디코 폰 퀴르티 지음, 박의춘 옮김 / 북하우스 / 2002년 3월
평점 :
절판


-그렇군요. 하지만 원래 제 이름은 호프만입니다. 닥터 호프만
- 네 그렇군요. 미안합니다. 저는 휩시입니다. 코라 휩시
-네 알고 있어요. 자료에 있어요.
-네 물론이죠. 미안합니다. 저는 에에 어떠세요. 제 말은, 다시 좋아지셨는지요? 물의를 일으켜 정말 미안합니다. 
 닥터 다니엘 호프만이 나를 바라보았다. 절대로 친절한 눈길이 아니었다. 오히려 희안하게 단단해진 직장을 바라보는 것 같았다.
-내가 계속 생각했던게 뭔지 알아요? 왜 바닷가재를 들고 화장실쪽으로 달려갔어요? 거기 분위기가 당신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아니면 화장실에서 바닷가재를 먹는게 신조인가요?
  맙소사! 그걸 어떻게 설명하란거야! 몇마디 말로.
 나는 죽도록 설명을 했다. 아니 그보다 더 심했다. 제기랄. 그 남자가 마음에 들었다. 어쨌든 나는 그의 성기와 접촉까지 한적이 있으니.
 나는 '버터바른 빵을 가진 청소부', '계급투쟁', '마르크스와 사회적 불평등'에 대해서 우물거리며 음미하듯이 천천히 그를 관찰했다.
 푸른 눈에 진한 색깔의 머리다. 그런 경우는 드물다. 그리고 손은! 그런 손으로 피아노를 연주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죄악이다. 몇가닥의 검은 털이 그의 흰 셔츠 칼라 안에서 밖을 빠끔히 내다보고 있었다. 결론적으로 가슴에 털이 나 있다는 증거다. 나는 가슴에 털이난 남자를 좋아한다. 배꼽 부분으로 갈수록 점점 가늘어지다가 그곳에서부터 다시 털이 많은 중요한 부분으로 넓어지는 이 가슴 위의 검은 성을...... 좌우간 그렇다. 
 - 어쨌든 대단히 미안해요.
 나는 내 어지러운 보고를 끝냈다.
 그가 나를 향해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그건 마치 정신병원에서 후견인에게 자신이 완전히 정상이라는 사실을 해명하려고 노력하는 위험한 정신병자를 바라보며 짓는 웃음과 같았다.
  

  몇가닥의 검을 털이 빠끔히 밖을 내다보다니. 이 구절을 보고서야 정신없이 이어지던 이토록 수다스럽고 사랑스러운 소설의 정체를 눈치채고야 말았다. 작가는 전화를 기다리는 여자 얘기를 할 것처럼 멍석을 깔아놨지만 실은 독자들이 코라 휩시라는 유머 감각있고, 생동감있는 여성을 사랑하게 만드려는 의도를 가졌다. 의도를 알아버렸는데도 책은 시시하지 않았다. 오히려 알듯 모를듯 감질맛 나는 닥터 호프만에 대해서도 궁금하고, 앞으로 이 두사람은 첫만남의 오해를 풀고 사랑하게 될까 역시 궁금해졌다. 그러니까 책을 손에 잡는 순간 순식간에 쉼없이 읽어내려갔다는거다. 속독의 반대편에 느림독, 잡다하게 여러권 읽기, 그중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읽지 못할 때가 부지기수인 독서 습관에 비춰봤을 때 손에 꼽을만한 몰입이었고, 몰입의 만족감은 컸다. 

 이 책에서 여자들은 대체 왜 전화를 기다리고,(직접하면 되잖아의 반대편에 상대방의 맘에 확신을 갖으려는 맘이 도사리고 있다) 왜 상대와의 첫 섹스 후 그 시기와 분위기, 오간 말들에 대해 분석을 하고, 분석의 와중에도 전화가 안 온다면 슈퍼 컴퓨터에 버금가는 속도로 낱낱히 다시 재분석에 들어가는지에 대해서 말해주지 않는다. 그저 나와 비슷한 코라를 통해 내가 병적인건 아니었구나 정도의 위안을 받을 수 있다. 위안은 아주 훌륭한 소통의 방식인지라 그녀에게서 위안을 받으며 금세 그녀의 행동에 응원을 보내고-그렇다고 먼저 전화하라고 부추기는 맘이 전혀 없는건 아니다.- 대체 이 미스터리한 호프만이란 작자의 말과 행동을 코라와 같이 분석을 하기 시작한다. 

 분석은 분석대로 감정이입의 완벽한 일치를 자아내고, 코라는 코라대로 나처럼 좌충우돌하며 그녀의 사랑 얘기의 첫장을 펼치게 된다. 전화만 오면 되는데가 애초의 갈등을 불러일으켰다면 갈등의 해소, 즉 전화가 온 것으로 책이 끝났느냐, 글쎄 그건 스포일러 전문인 나로서도 쉽게 밝힐 수가 없다. 어떻게 되는걸까, 그래서 어떻게 된다는거야, 소설을 읽으면서 누구나 한번쯤 책장을 움켜쥐고 애가 타는 그 순간을 어떻게 방해할 수가 있겠는가. 

 그런데 여기서 드는 의문 하나, 기다린다는 행위가 수동적인가?  굳이 사랑의 단상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기다리는 것 안에 잠재된 가공할만힌 고통과 흥분과 좌절의 정서를 모르는건 아니다. 그렇지만 사람 안에 갇힌 사랑의 에너지는 기다림마저도 황홀하게 할 수 있는 힘이 있다고 본다. 수동적이란 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관계의 양태만으로 섣불리 짐작할 수 없다. 게다가 능동적인 처신으로 코라가 먼저 전화를 했다면 이토록 감질나게 맛있는 소설이 나오지도 않았을 것 아닌가. 능동적인 것만이 수는 아니고, 수동적인 것이 무찌르자 뭐뭐류가 될 수 없는 것은 관계야말로 유동적으로 변하는 것이기 때문이 아닐까. 유동적으로 변모하는 코라와 호프만의 관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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