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녀석이 술이나 한잔 하자며 불러냈다. 시국 걱정과 신자유주의의 해결방안을 고민할리 없는 나는, 선뜻 나가겠다고 했다. 물론 어떤식의 분위기가 될지는 살짝 걱정이 됐다. 오랜만의 술자리인데 실마리도 보이지 않는 고민 퍼레이드가 되지는 않을지, 함께 자리한 누군가로 민망한 상황이 연출되진 않을런지... 에잇, 뭐 별로면 휙 오지.  

 술자리와 집은 가까울수록 좋은 법이다.


  녀석은 친구와 같이 있었다. 친구가 화장실 간 사이 그가 방금 여자친구랑 헤어져서 정신이 피폐해졌다는 정보를 흘린 녀석은 잘해보란 눈짓을 했다. 내가 무슨 잔반처리기도 아니고. 뭐, 요샌 아무나하고 갖다 붙인다. 나이 먹는게 이래서 약간 리들빗! 서러운건지도. 그런가보다 하고선 맥주를 홀짝이는데, 녀석의 친구라는 남자, 좀 수상했다. 혼자 기분이 업되더니 느닷없이 간다고 하는게 아닌가. 아무리 내가 천하의 썰렁한 인재라지만 이건 좀. 조금만 잘 생겼으면 더 있도록 억지를 부려봤을텐데, 나도 모르게 막 가라고 부추기게 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뒤태는 참 아담하고 귀엽다던 소견은 붙이게 되고.
 

 녀석의 친구가 가고 녀석과 나는 좀 더 조용한 자리로 이동했다. 시답잖은 얘기만 하다가 여자 친구 만들고 싶네 어쩌네 해서 얼마나 굶었는지 물었다. 그리곤 시작되는 섹슈얼한 이야기라고 지칭되는 질펀한 이야기들. 이 녀석이 평소에도 제법 말을 웃기게 하는데 야한 얘기엔 물만난 고기처럼 신이나서 어찌나 방방 뛰어대던지. 하마터면 웃겨서 틀니 빠질뻔했다.
 

 그 중에서 재미있었던 얘기를 하나 옮기자면,
 노상방뇨 얘기가 나왔었는데,
 어느 날, 애인이랑 즐겁게 술을 마시고 모텔에 가려고 길을 걷는데 여자가 갑자기 요의를 호소했단다. 늦은 시간이고, 화장실 문을 다 닫아놓는지라 들릴 곳이 마땅치 않았단다. 그래서 자기가 망을 봐주고 여자는 골목으로 들어가 야심찬 노상방뇨를 하려고 했단다. 잠시 후 야심한 밤의 정적을 홀딱 깨는 물소리가 들려왔다.
녀석이 표현하기론 아스팔트가 깨지는줄 알았단다. 평소에 이미지 관리에 능했던 그녀인지라 충격이 컸고, 그 다음부터는 더 이상의 내외 없이 모든 소리를 서라운드로 탐닉했단 뭐 그런 얘기.
 

 그렇게 깔깔대며 놈의 재치에 나의 맞장구까지 덧붙여 시간가는줄 몰랐는데 녀석이 계속 머리가 아프네 속이 울렁거리네라며 한마디씩 해댔다. 그 통에 이제는 우리가 집으로 가서 발닦고 잘 시간이란걸 알게 되었다.
 

 계산을 마치고 밖으로 나와서 택시를 잡았다. 어서 타라는 손짓을 보냈는데 좀 있다가 간단다. 지금 택시를 타면 속이 안 좋아 세차비 물어줘야한다나 뭐라나. 별로 먹지도 않은 주제에 엄살은!
 

 그래, 겨울날씨치곤 포근해 우리는 좀 걸었다. 그 밤에 목적지도 없고, 괜히 공원을 돌다 형님들한테 쥐어터질지도 몰라 큰길가를 끼고 어영부영 밤거리를 헤맸다. 그래서 이제 괜찮으면 들어가라고 했더니


 녀석은 뜬금없이
-야, 자러 가자.
 이러는거다. 무슨 잘만한 분위기도 아니고, 평소에 호감을 갖고 있었던 것도 아니고, 녀석 말대로 쿨하게(이거 정말 웃겨!) 할만한 자질이 되는 것도 아닌데, 이 무슨 뜬금없는 발언?

 

 아휴, 애들 앞에선 숭늉도 못먹는다는 말이 정말 딱 맞다. 그러는 넌 어른이고?  

 그러게 말이다.  (머리통에 물을 주며) 얼른 얘가 자라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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