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동색 비닐 잠바에 가장자리에 털이 달린 모자를 뒤집어쓴 여자와 잿빛 외투에 정체불명의 요란한 목도리를 두른 여자가 해물떡찜을 세상에서 제일 맛있게 한다는 집에 나란히 앉아 있다. 다른 테이블에서 광고의 한 장면처럼 북적대며 이야기꽃을 피우는데 두 여자는 아무 말이 없다.
목도리녀가 힘겹게 한마디를 꺼낸다.
-핸드폰은 왜 그러냐.
-술 처먹다 잃어버렸어요.
- ......
음식도 안 나오고, 읽을만한 것도 없어 둘은 이 음식점이 얼마나 방송매체에 많이 나왔었는지를 보여주는 선전물을 한자도 놓치면 안 될 기세로 읽기 시작했다. 잠시 후, 일주일동안 뭘 먹고 다녔고, 어디서 잤으며, 잘 때는 뭘 입고 잤는지를 빼곡이 보여주는 흰 패딩에 염소수염을 기른 남자가 그들의 맞은편에 앉았다.
- 시켰어?
- 네
셋은 다시 침묵 속에 빠져들었다. 이럴 때는 직장인용 겉도는 얘기 실용 교본이라도 출판되어야하지 않을까란 생각을 문득, 셋 중 하나는 예리한 감각으로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음식은 맵거나 달았다. 맛있는 해물 중에 굳이 맛이 살짝 간 오징어를 짚어내며 아쉽다면서 고사를 지내는 흰 패딩과 쿨피스를 먹어야는데 아무도 시키지 않자 조바심을 치는 목도리, 이게 웬 진수성찬이냐며 허겁지겁 먹는 털모자. 흰 패딩은 털모자와 목도리에게 연장자다운 위엄으로 게의 도톰한 살을 하사했고, 털모자는 그건 많이 먹었다며 안 먹겠다고 하고, 목도리는 그래도 준거니까 먹으라는 문제로 아주 잠깐 눈 부라림이 있었지만 그리 길지는 않았다.
지금은, 먹는 중이니까.
더치페이라는 합리적이나 살짝 어색한 방법을 놔두고 목도리가 계산을 했다. 털모자가 한번, 흰 패딩이 세 번 돈을 권했으나 목도리는 거절했다. 털모자는 돈을 주려고 할 때 목도리에게 무심코 팔짱을 끼었다가 그 추운 날 얼굴이 벌개질 정도로 민망해지고 말았다. 흰 패딩은 주차 문제로 두서없이 전화를 걸어대기 시작했고, 목도리는 어디 구석에 박혀 담배를 피웠다.
길이 막혀 무려 40분이나 차 안에 갇혀 발을 동동 굴리다 결국 먹게 된 해물떡찜. 셋 중의 하나는 분명 맛의 비밀 어쩌고는 조미료 맛 때문일거야라며 거길 가자고 드러누웠던 목도리를 의심했을 것이다. 목도리는 맛과 상관없이 매운 맛이 땡겼을 뿐이라고 덧붙일테지만.
흰, 목, 털은 돌아오는 길에도 여전히 아무 말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