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친구 A는 자신의 무직상태를 벌써 몇 개월째 애인에게 숨기고 있다. A는 변으로(시커멓다가 아니라) 좋아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서란 이유를 댔다. 그런 A는 가끔 치밀하게 머리를 써서 애인을 긴장시키고, 밀고 당기기의 잔재주를 구사한다. 그렇다고 마냥 줄다리기만 능한 것도 아닌게 총론의 사랑학에도 빠삭하여 시도때도 없이 애인을 감동시키고, 감동받고 웃기고 자빠진 연애질을 벌써 햇수로만 3년째 해오고 있다. 그 아이의 옆에서 기술의 조각보에 깁다 말은 조각이라도 하나 얻을라 쳐도 워낙에 구조 자체가 다른 인종이라 감히 엄두도 낼 수가 없다.
상대를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서 주고받은 말들이 서로를 더 끈끈하게 맺어주기도 하지만 때론 서로의 신비감을 없애는데 일조하는데 내 경우에는 그 격차가 미네르바와 검찰의 입장처럼 천지 차이이다. 멘토의 말에 의하면 나의 연애 기술 부족은 성장환경에서 기인한다고 하는데 분석의 귀재인 그의 말과는 다르게 난 내 문제가 뭔줄 너무 잘 안다.
뭐든 말로 다 알 수 있고, 느낄 수 있다는 과신과 공감능력의 부족. 장점보다는 단점을 더 쉽게 캐내는 살쾡이(살쾡이 미안) 근성. 상대의 상처에 대한 냉담함. 아마 아침이 다가올 때까지 능히 다 적을만치 기술보다는 인간성 부족에서 기인하는 문제들이 땅 속에 파묻은 쓰레기들처럼 부패돼서 순식간에 배 밖으로 나올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고 보니 A가 나를 몰아세우면며 '제발 감정이 없는 듯 행동 하지마.'란 말을 한거며, 누군가의 '날로 먹으려고 하느냐'도 다 내 경우에 해당된단 생각이 든다. 그 말을 들었을 때는 방바닥을 등짝으로 쓸고 다니며 발을 동동 굴리며 아니라고 떼를 썼는데, 어쩌나, 이제는 떼를 써도 안 먹히는 나이인걸.
이제는 기억의 뒤편으로 가버린 논쟁의 경우도 그렇다. 난 내가 걸어놓은 댓글에 책임을 지고 끝까지 얘기를 하던가, 아니면 제대로 된 해명이라도 했어야 했다. 한마디 거들고는 싶고 건드려 놓고나니 무섭기도 하고, 이러다 알라딘에서 추방되면 어쩌나 덜컥 겁도 나고, 그래서 이유랍시고 내민게 이 사람은 내가 계속 싸우는걸 원하니까 난 안 싸운다는거였는데 그건 참, 두고두고 어처구니없음 목록 상위권에 랭크될게 분명하다. 그 과정에서 가시장미님이 여러 페이퍼를 올린걸 보다가 주제도 모르는 나란 녀석은 나라면 엄두도 못내겠단식의 촌평만 해댔다. 가시장미님이 누누이 이건 논쟁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을 치유하고, 생각을 정리하는 거라고 했음에도, 그런 과정 자체가 미화된 성장이 아니라 상식적인 수준의 반응이었는데...... 늘 그랬듯이 회피는 수가 아니었다. 내가 봉인했다고 믿었던 것들은 순식간에 머리를 풀어헤치고 내게 덤벼들게 뻔했다. 그건 봉인이 아니라 눈속임이었고, 아주 잠깐의 시간을 붙잡아두는 것일 뿐이었다.
오랜만에 내가 책임을 지고 해야 하는 일이 생겼고, 일 덕분에 사람들에게 넉넉하게까지는 아니어도 그간 민폐를 갈음할만한 상황이 됐다. 그런데 난 지루하고 힘들어서 어떡하냐고, 이렇게 평생 일만 하면서 살아야하는 거라면 차라리 일이 없었을 때가 좋았겠다고 진상을 피우고 있다. 돈 문제만 나오면 얌체공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게 파닥거렸던 내가, 명함이란게 있으면 참 좋겠다고 꿈꾸던 내가, 막상 내 일이라는게 생기자 또 딴청을 피우고 있는거다. 어쩌면 나의 코드는 위악이 아니라 기만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요근래 많이 해본다.
올해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새해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책도 별로 읽지 않는다. 혼자 다니고, 서점에 주저앉아 조악한 그림을 그리고, 자기 전에는 괜히 코끝이 시큰거려 이불 속에 얼굴을 꽁꽁 파묻기도 한다. 걸을 때면 무릎 부근이 딱딱 소리가 나고, 가슴은 며칠째 단단해져 있다.
배가 조금 들어가 몸이 한결 가벼워질 때처럼, 샤갈의 그림처럼, 이문세의 노래처럼 조금만 기운이 났음 좋겠다. 조금만 눈이 반짝일만한 일이 움텄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