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옥찌가 부비적대며 기어선 내 방으로 들어와 누웠다. 문득 맘마미아에서 메릴 스트립이 딸을 안고 노래를 부르던 장면이 생각났다. 네 작은 손가락 사이로 세월이 흘렀다던가, 내 품에 꼭 안긴 작은 아이. 배밀이로 방을 기어다니고, 버둥거리기도 하고, 나도 덩달아 웃게 만들었던 지희의 웃는 얼굴, 아기 냄새. 그런 아이가 이만큼이나 자랐네.

  옥찌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화장실을 가는 사이 잠이 깬 민이 징징댔다. 민에게 가서 사과 먹을까, 우리 쉬아하고 사과 먹을까 하니까 요녀석, 금세 얼굴이 밝아졌다. 민의 보드란 손을 꼭 쥐고 화장실에 갔다가 식탁에 앉았다. 옥찌도 화장실에 갔다오더니 잠이 덜 깬 얼굴을 손으로 비비면서 식탁에 앉았다. 아침 6시, 아직은 해가 뜨지 않아 옥찌는 계속 왜 밤에 일어나는거냐고 묻고, 민은 해가 뜨든 말든 사과를 먹는다고 마냥 신나 있었다.

 사과를 먹고 사과 냄새 풀풀나는 입으로 제일 좋아하는게 뭐냐고 물어보는데, 지희는 할아버지가 말이 돼서 자기들을 태워줄때라고 했다. 할아버지 무릎 아프지 않을까, 평소에 엄살이 심하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옥찌는 문제없다는 표정으로 말이 빠르게 잘 달린다고 했다. 6살과 4살을 태우고 빨리 달리는 예순에 가까운 노인이라. 그림이 잘 그려지진 않지만 나만큼이나 다른 누군가도 아니, 나보다 더 옥찌들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게 사랑하는 방식이 사실 좀 낯선데도 고맙게 느껴지는게 보통 '말되기'가 아닌데서 기인하는건지 그저 조금 당황스러움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새벽 6시의 공기에서 느껴지는건 자, 이제 이모는 소가 되어보라고 의기양양하게 나를 바닥으로 데리고 가려는 옥찌의 완력 뿐.

 우리는 한참을 이불 위에서 뒹굴었다. 민이가 이모를 죽인다며 총을 쏘는 시늉을 하자, 지희도 덩달아 칼로 쓱쓱 쓸어야 한다며(대체 이런건 어디서 배우는지 흑흑) 자르는 척을 하고. 나는 나대로 이모를 죽이면 사과도 못깎아주고 어쩌고, 나 자신이 이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효용성에 대해 설명을 했다. 옥찌들은 그건 누구누구도 할 수 있잖아!. 아, 그렇지.

 이모가 죽으면 다시는 이모를 볼 수가 없어!

 그런데도 민은 사과총으로 나를 쏴죽이고 말았다. 윽윽 하면서 아무말도 안 하니까 민이 내 품에 파고들면서 '안 죽었지? 안 죽었지' 묻는다. 지희는 죽은척 하는거라며 민에게 저러면 계속 죽은척 한다고 그만 하란 소리를 한다. 아흑, 6살이란 이제 너무 다 알아버려서 더 이상 새로울 것도 없는 나이. 6살의 지희도 놀라라고 조금 더 가만 있었더니 옥찌가 '난 그래도 이모 죽어서 못보면 슬퍼. 그만 죽어' 한다. 앗싸아? 민은 나의 죽음을 그만 잊고선 장난감을 갖고 놀고. 얼음 상태에서 깬 나는 앞으론 이모 죽이면 안 된다고 다짐을 받아내본다. 아마도 녀석들은 앞으로도 몇번을 날 죽이는 장난을 치겠고, 나 역시 질세라 얼음 상태를 유지하다 몸의 다른 곳이 저려오면 다시 몸을 풀고선 없었던 일로 치겠지. 그때쯤이면 아이들은 죽음이 어떤건지 어렴풋이 느낄 수 있을까. 그렇다면 나에게는 죽음이 어떤 의미일까. 아이들에게 설명해준 것처럼 관계의 단절이 다일까? 아니면,  아, 아침 7시일 뿐인데.

  아이들이 얼굴 씻고 옷입고, 딩동댕 유치원 보면서 태권체조인가를 할 동안 나는 읽고 있던 책을 졸다 몇줄 읽고 다시 졸다가 한 페이지도 읽지 못하고 덮고야 말았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니 하루가 긴데다 쏠쏠한 재미가 있군.

 짧은 한줄 혹은 등등의 것들을 적고 싶다. 상황묘사에만 그치는게 아니라. 가끔씩은 아침에 일어났다는 것에 덤으로 이런 욕심도 생겨나고. 그런데 우리 옥찌들 지금쯤 졸고 있는게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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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HIN 2008-11-22 0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문의 사진과 같은 분위기를 좋아합니다. 직접 찍으신겁니까? ^ㅡ^

괜히 저도 시간 이야기 하고 싶어지네요. 지금은 오전 6시 38분.
역시 하루 중 새벽이 제일 추운 듯.

Arch 2008-11-24 01:56   좋아요 0 | URL
^^ 네, 혼자 뻘짓해가면서 찍은거에요.
저도 다시 시간 얘기를 하자면 한시 오십오분이군요^^ 이렇게 추운데도 모기가 있는건 정말 모기가 미쳤다고 할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