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대회를 끝나고 교장이 준 반비가 있었다. 이 돈을 회식에 쓸 것이냐 곧 있을 시험을 보러가는데 교통비로 쓸 것이냔 것으로 의견이 분분했다. 애초에는 교통비로 쓰고 나머지는 반비로 하자는데 의견이 모였지만 갑자기 회식을 하자는둥, 교통비를 쓴 후 남은 돈을 시험 안 보러가는 사람들에게 나눠주라는둥, 잡음이 끊이질 않았다. 게다가 걔중에는 시험 안 보러가는 사람에게 주는 돈이 교통비 대비 사람수에게 지급되는 돈액수와 맞지 않다는걸 문제제기한 사람도 있었다. 논란의 중심에 있는 반장이 시험을 안 보러가는 자신과 소수의 입장에 맞는 형평성을 맞춘다며 독단적으로 결정을 내려버리자 서로 목소리가 높아지고야 말았다.

 언성이 높아지다 곧 모두가 동의하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어차피 시험을 모두 보기로 했는데 개인 사정으로 빠진 사람이 있는거니까 회식을 할 때처럼 교통비로 쓰고 나머지는 반비로 하자는 쪽으로 얘기가 정리가 된거다. 그 과정에서 난 사람들이 무슨 문제가 생길 때 어떤식으로 해결하는지에 대한 단면을 봤다. 어떤분은 이런저런 이야기 필요없이 그 돈은 기부하고 그냥 돈 걷어서 교통비를 하자고 했고(이건 전혀 문제에 근접한 해결방법이 아니었다.) 다른 분은 회식할 때 빠진 사람에게 돈을 따로 나눠주지 않는단 말을 뱉어내며 의기양양해 했고, 또 다른분은 이렇게 싸우지말고 잘 지내자며 좀 뻔한 얘기만 늘어놨다. 나로 말하자면 이건 싸우는게 아니라, 공금을 어떻게 사용해야할지 의견을 모으는거라고 말은 했지만 나 역시 그 돈으로 교통비를 하고 나머진 통닭이나 같이 먹자란 의견이 있었다. 나 역시 입장표명이 불분명했다. 내 경우는 분위기 봐가며였고, 대부분의 사람도 그런식이었다. 그 과정에서 반장은 질려버렸다며 집에 가버렸고, 개인사정으로 시험 안 보는 친구들은 소외당하는게 아닌가란 의견이 불거지기도 했고, 자기돈 안 들이고 반비로 교통비를 충당한 다수의 사람들은 뒤끝이 찜찜해지고 말았다.

 어디서든 사람 사이에선 논쟁이 생기고 분열이 일어난다지만 돈과 관련해선 무척 예민하고 신경질적으로 보여지기 쉽상이다. 자신의 대범함을 강조하려고 선을 넘는 한턱을 쏘기도 하고, 쪼잔한 면모를 들키지 않으려고 무리한 제안을 해버린다든지 아니면 작은 소비에는 너그럽다가 자기가 정해놓은 선을 넘어서면 경직되는 면이 있다던가. 얼마 전 읽은 최순덕 성령충만기(이기호 작)의 한 단편에선 어떤 연출자에 대해 설명하면서 '작은 소비에는 집착하지만 큰 액수에는 자신이 돈에 구애받지 않는다는걸 보여주려고 부러 대범하게 처리해 실속이 없는' 얘기가 나왔다. 난 이 부분을 보면서 큰 돈을 쓸일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 같은데 부러 통 큰 척을 하다가 빈곳에선 푼돈에 연연하는 내 입장이 느껴져서 뜨끔했다.

 요는 속내를 누가 얼마나 세련되고 상식적으로 감추느냐의 문제인데 웬일인지 나이 들수록, 잃을게 없다고 자인할수록 바닥을 드러내는건 시간문제가 되고마니 잃을게 어느 정도 있는 삶이 인간답다고나 해야할까? 사실 이건 터무니없는 궤변이다. 어쩌면 합리적인 소비를 할만한 토대가 안 된 상태에서 계속 선택을 해야한다는 문제이거나 이도저도 아닌 그저 한 사람만 상처받아 떠나버린 후의 얘기인지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반장은 집에 가서 자신의 의견과 반대된 사람들을 욕하고 있을까. 나는 지금 어떻게든 되겠지라며 막무가내로 떠들던 입을 자책하는 대신 이렇게 두리뭉실하게 얘기를 끝내버리려고 하는걸까?

 모두가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단 주문은 사실 나는 좀 덜 상처받고 싶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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