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귀는거 비슷하게 만나던 사람과 파트너쉽을 유지하기로 했다. 분리불안 증세에 시달리는 우리에게 필요한건 몰입이 아니라 적당한 긴장감과 다른 방식의 관계모색이었다. 혼자 있는 시간이 우릴 구원했다.

 사람은 필요에 의해서 상대를 만나기 시작한다. 필요라는 말에 반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결핍이 없는 상태에서 사랑이 생겨날 일은 없을테니까.

 그 당시 난 회사가 끝나고 뭔가를 해야하는데 할게 없었다. 그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우린 만나서 영화를 먹고 밥을 먹고 산책을 했다. 그렇게 계속 만났다.

 우린 서로에게 끌렸을까? 자석같은 접촉 전에 호감이 있었다. 프루스트를 읽는다는 공통점. -나중엔 둘 다 잘 보이고 싶어서 읽은 권수를 과장했단게 드러났다.- 말싸움에서 절대로 지지 않으려는 고집. 수동적인 취미의 달인들. 아마 그의 말많음이 약간 거슬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처음에는 신경의 날실들은 저렴하게 포진해있기 마련이다.

 만남을 시작한데 결정적인 이유가 없듯이 헤어짐에도 이유가 없었다. 헤어짐에서 이유를 찾으려는건 실날같긴 하지만 이게 영원한 사랑을 하려는 거였다는 증거를 대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그를 만나면서 다른 사람을 만나기도 했고, 그를 속이기도 했고, 나를 억누르며 상황을 통제해보기도 했다. 그는 나를 색다른 경험의 세계로 인도했다. 사실 그가 인도했다기 보다는 내가 자진해서 빠져들었다. RPG게임을 하듯이 캐릭터를 매일 재창조하는 작업은 신기하긴 했지만 계속 바꾼다는 행위 자체의 관성 때문에 쉽게 지치기 마련이었다.

 인정하긴 싫지만 난 일부일처제의 달콤한 안락을 사랑해왔다. 그 안에 편입되면 잡생각은 조금 덜어내고 체제 안에선 행복할지 모르겠단 생각을 해왔다. 내가 바람 안 피는 중요한 이유가 상대방도 그렇지 않기를 바란 것처럼 사는거나 연애나 약간 맹추같은 구석이 있었다. 그걸 무슨 수로 믿는단 말인가. 신뢰감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애초에 신뢰에 대한 정의가 다르다면? 관계 안에서 정의를 새로 세우는 것부터 시작해야할 일이다.

 그에게 전부를 걸지 않아서 좋았다. 그렇다고 애착이 사라지진 않았다. 사랑 느낌이라 불리는 몽실거리는 감각이 옅어진 것도 아니다. 다만 그가 떨어져 있다고 해서 불안하고, 헤어질 생각을 하고 나면 온몸에 힘이 쭉 빠질 정도로 에너지가 사라지진 않았다. 그렇게 난 일센티미터 정도 자랐다.

 이건 통상적으로 보면 내가 그를 덜 사랑해서라고 할 수 있다.

 그럼 더 사랑하는건 뭘까.

 클리셰처럼 떠오르는 장면. 비오는 날, 그 혹은 그녀의 집 앞에서 처절하게 기다리는 것? 열정을 희생을 관능을 몰입을 친밀감을 서로만의 언어를 자아발견을 정략을 수단을 사랑의 형태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각자의 사랑방식이 있는거란 소리다.

 정치적인 입장이란게 있긴 하지만 애정관계의 큰 틀은 두 사람이 알아서 할 문제다. 다만 사랑을 종교처럼 어떤 고통을 겪어내고 성취하는, 아프고 힘든 것만이 절대적인 사랑이라는 믿음에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랑은 고통을 이겨내고 성취하는게 아니다. 물론 아주 진한 추억은 될 수 있겠지만 그게 사랑의 결과를 보장하진 않는다. 사랑의 결과는 누가 보장해주는게 아니다. 회피가 수는 아니겠지만 때론 전환점이 필요한 법이다. 자신이 정해놓은 틀을 고수하다간 그 밥의 그 나물처럼 지겨워진다.

 

* 싱글즈 통산 5번째 보다가 느꼈다. 정준의 애인처럼 이거. 이젠 젊지도 않은 몸뚱아리로 거래를 하고 있는게 아닌가란. 어떤 틀이 유용할때도 있지만 발목을 붙잡는 경우가 더 많다.

 * 생각을 정리하다보면 누군가 아주 오래전에 했던 얘기 같다는 느낌이 든다. 스탈당의 연애론이 그 전에는 그리스 로마 신화가 있었을 것이고, 사회상이나 역사가 있었을 것이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말들은 아주 오래전에 있어왔던 것처럼 뻔한 수작으로 느껴진다. 이곳의 말과 말을 듣는 귀가 익숙하지 않을 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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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7-04 1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니에님 글 참 잘 써요~~ 말이 없는 듯한데 글발은 굉장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