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집회에 나가고, 후원할데가 있으면 코묻은 돈 탈탈 털어서 모금함에 넣고, 내가 할 수 있는건 이것 밖에 없다는게 부끄러울 정도로 전 사회 운동 초보입니다.

 누군가 선전 구호를 외치고, 운동에 동참하라고 할때는 정말 몰랐습니다. 어차피 세상은 바뀌지 않고, 나 하나 빠진다고 뭐 달라지겠냔 맘이 있었으니까요. 나는 내 삶의 무게를 감당하고, 우리 가족의 굳건한 기대를 등에 짊어져야한다는 부담감. 운동은 어떤 성향의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자의적인 판단. 나는 나대로 부지런히 행복하게 살면 어차피 깃발 아래 모이지 않아도 전체적인 행복지수는 높아질거란 낙관.

  아직은 쑥쓰러워 촛불 들고 구호 외치고, 어딘가에 내 의견을 말하는게 참 어색합니다. 쟁쟁한 논리력에 막혀 정말 제가 바라는바를 소신있게 밝히기도 어렵습니다. 이 물결에 휩쓸려 주관없이 휘둘리는건 아닌가란 자성도 해봅니다. 아침 신문에 시민의 힘으로 조중동의 언론같지 않은 행태를 몰아내자고 할때 탄압이라며 권력의 힘으로 언론을 보호해줘야한다는 홍준표 의원의 발언을 접할때는 절망스럽기까지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촛불을 들기 시작하면서 제 삶이 조금씩 재편성 되는걸 느끼고 있습니다.

 전에는 한번도 관심을 갖지 않던 이웃의 곤궁한 삶이 눈에 들어오고(이건 절대로 제가 그들보다 낫다는 우위에 선 시선이 아닙니다.) 나 혼자가 아니라 우리가 같이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보게 됩니다. 감상형 인간의 자세로 세상을 관조만 해오던 시선을 인문서나 사회과학서로 단련시키기도 합니다.  놀이터에 있는 쓰레기를 보면 옥찌들과 같이 주우려고 하고, 오지랖 넓게 나를 필요로하는 곳에 있으려고 노렵합니다. 내가 필요해서 누군가를 찾고, 혹여 누군가의 부탁에 마지못해 응해주는 것보다 오지랖형 인간으로 사는건(지나친 간섭은 조심해야겠죠!) 훨씬 즐겁습니다.

  아파트라는 벽을 마주보고 10년을 살았어도 변변한 이웃 한명 있지 않았는데 이번 달 들어서만 옥찌들을 매개로 벌써 두분의 할머니와 친하게 되었습니다. 옥찌들처럼 지나가는 사람마다 인사하고 싶고, 비오는 날이면 부침개를 푸지게 부쳐 맛있게 나눠먹고 싶습니다. 조선인님의 페이퍼에서 본 정류장 도서관을 구상하면서 혼자 빙긋 웃기도 하고, 비오는 수요일이면 장미 한다발을 사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나눠주고도 싶습니다. 이런 에너지들과 상상이 뭉글뭉글 피어오르는 요즘은 정말 행복한 일 투성입니다.

 촛불은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촛불을 들면서 그 작은 쑥쓰러움과 내게만 향했던 연민과 방어기제들이 한꺼번에 해체되고 물컹해져버렸습니다. 하기 싫은 모든 일들에 '세상이 원래 그래'로 체념하기 전에 원래 그런 세상의 판을 바꾸고싶은 마음. 그 마음 하나 하나가 모여 우리가 사는 세상을 좀 더 살기좋게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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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6-20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용히 깨진 유리조각을 주웠던 페스탈로치가 존경스러웠던 건, 날마다 오르내리는 학교 계단의 휴지 조각을 외면하고서야 느꼈답니다. 날마다 새로이 마음을 다지는 건 작은 것에서 시작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래서 지금은 그냥 지나치지 않고 허리를 굽혀 줍는답니다. 저도 이런 말하기 좀 쑥쓰러워요. ^^

Arch 2008-06-20 11:43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쑥쓰러우면서도 좀 자랑도 하고싶고, 그런거 있죠! 허리 운동도 되고 좀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