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당신과 자지 않았어요
나딘 고디머 외 지음, 최선희 옮김 / 거송미디어 / 2006년 8월
평점 :
품절



 이책, 노벨 문학상을 받은 도리스 레싱의 단편이 실려서 집어든 책이다. 물론 제목에서 풍기는 야릇함이 한몫하긴 했다. 제목이야 나 같은 독자를 위한 출판사의 계략임이 단번에 적중됐다. 계략이든 음모든 그래서 좋다면야 상관없다. 네거티브 마케팅도 한다는데 출판사에서 귀여운 재치를 발휘하는 정도는 문제가 되지 않으니까. 그런데 이건 정말 아니었다.

 책에는 8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어느 병사의 모험'은 이탈로 칼비노의 다른 작품을 찾아보고 싶을만큼 긴장되고 재미있었다. 물론 그때부터 이거 뭔가 이상하단 느낌이 들긴 했다. 설마, 기우이겠지. 아냐, 이거 뭔가 이상해. 그래서 책을 읽다말고 역자 후기로 직행했다.
 

 그럼 이제 우리는 <첫사랑>을 읽고 그의 글에 대해 따져보아야 한다. 이게 무슨 사랑이야기일까? 아니다. 이건 사랑이야기다. 그것도 아주 슬픈 사랑이야기다.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또한 공간 배경은 전쟁이 한창 진행 중이고 온통 삶과 죽음이 별 차이 없이 공존한다. 주인공은 아버지의 죽음으로 살던 집에서 쫓겨 묘지에서 배회하다 창녀를 만나 그녀와 동거를 하면서 아이를 갖고 다시 결혼이란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도망치는 일단의 줄거리를 생각해 보면, 이 남자의 무능함과 현실 부적응에 안타까움이 우선 든다. 그리고 이런 무능함을 우린 아주 신랄하게 비난해야 한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성공지향적인 시대에는 하등 쓸모없는 존재처럼 보이니까. 그러나 그래도 그 사내가 가엾다.

 번역자 약력에 버젓이 (사무엘 베게트 연구)를 옮겼다고 적어놓고선 그의 작품에 왜 이런 감상평 밖에 달지 못했을까? 게다가 이건 나보다 더 심한 비문의 향연이다. 대체 교정은 본걸까? 도리스 레싱의 노벨상 때문에 '급'출판을 한걸까? 무슨 배짱으로 이런걸까. 극장의 첫주를 노리는 전략처럼 나 같은 눈먼 독자를 꼬이려는 속셈이었을까. 번역한 사람은 출판된 책을 확인은 해봤을까.

 추측이 난무하는 가운데 한번 잡은 책은 웬만해선 내려놓지 않는 고질병 때문에 다음 작품을 읽기 시작했다. 뭐, 이건 읽혀야 말이지. 그동안 번역된 작품들을 읽으면서 '내 독해력이 부족한거야. 외국어가 원래 이렇게 좀 난해한 구석이 있는거야'라며 추스렸던 불만까지 죄다 튀어나왔다. 대체 이걸 출판한 의도가 뭘까. 만우절 특집인가? 이런식이라면 차라리 이문열식 감상평은 제쳐두고 그가 선집한 세계명작산책을 보는게 나을뻔했다. -그럼에도 양보 안 되는건 사내들만의 미학 부분이지만.- 작품의 주제도 사랑이라고 했는데 대체 남자와 여자만 나오면 사랑이냐는 정의는 또 어디서 나온건지.

 그래도 지병 탓에 원래는 이런 내용이겠거니 상상하면서 끝까지 책을 읽었다. 사실 명백하게 번역이 잘못된거라고 말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역자 후기에서 아니다 맞다에 그치는 작품평에 놀라 오바를 한걸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자신의 이름으로 번역된 책이라면 작품을 이해는 해야하지 않을까? 번역자 스스로가 이해 안 되는 작품을 번역해놓고, 독자가 스스로의 독해 능력을 의심하게 하는거야 말로 책을 팔기 위해 자기 멋대로 제목 바꾸기보다 더 치졸한 방식이 아닐까 생각한다. 더군다나 웬지 두껍고 관념어로 무장된 책을 읽으면 밥 먹는 것보다 더 포만감을 느끼는 나 같은 독자에겐 이 얼마나 몹쓸 짓인가.

 잤느냐 안 잤느냐의 진실을 가리는 문제보다 더 중요한건 원작의 숨소리를 따라 가다가 결국은 번역자의 숨결을 느끼는 독자들이 다음번에도 옮긴이를 신뢰할 수 있는가의 여부라고 생각한다. 물론 번역만 해서 돈벌이도 안 되고, 별다른 사명감도 없다면 패스다. 그리고 정말 자기가 지은 것처럼 정성을 들이고, 애를 쓰며 번역하는 다른 많은 분들에게도 이 얘기는 패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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