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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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알츠하이머에 걸린 살인자의 기록.

 읽으면서 술술 잘 읽혀서 놀랬고, 소설 창작의 기법이 눈에 들어올 때면 반가웠고, 얼마 전에 읽은 '내 목소리가 들려'의 책과 너무 다른 문체와 문장에 신기해하면서 읽었다.

 문장이 더욱 깔끔해졌고, 문장을 설명하기 위한 수식어들의 사용이 줄어서 단문이 많았다.

그래서 읽기 쉬운 것도 있었지만, 호기심을 자극하는 전개는 최고였다.

어떻게 전개될까 궁금해하면서 읽다 보면 어느샌가 페이지가 휙휙 넘어가 있는 게 아쉬울 정도였다.

 번역 서적을 읽다 보면 분명 작가의 초기작과 근래에 출간된 작품이라면 문장의 차이가 있을 법도 한데 그런 점들이 잘 느껴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저 구성적인 면에서 더욱 탄탄해졌다고 느끼는 경우는 많지만 말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작가의 기술법이 달라지는 맛이 느껴져서 너무 좋았다.

화자가 바뀌면 서술하는 방법도 바뀌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너무 과한 욕심인가?

 한 작가의 작품을 읽고 흥미가 생겨 다른 작품들을 찾아 읽으면, 이런 사소한 재미를 발견하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참 좋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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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꽃 - 개정판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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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1905년 조선을 떠나 멕시코로 향하던 이들이 있었다.

자신의 땅을 가지지 못하고 제 한 몸 건사할 방도가 없었던 그들은 나름의 목표와 꿈을 가지고 조선을 떠났다.

 한 작가의 작품을 찾아서 연달아 읽은 것은 정말 오랜만의 일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들이 떠올랐지만 그중에서 가장 마음에 걸렸던 것은 나 자신의 고정관념이다.

왜 흑인과 인디언들이 받아야만 했던 핍박과 고통을 그들만의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아니, 더 깊게 이야기하지만 그 사실들을 어떻게 지나간 과거로 기록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지나간 역사가 아닌 누군가의 삶의 일부분이라는 생각을 왜 하지를 못 했을까.

나아가 그것이 바로 우리들의 일이었음을 왜 눈치채지 못했을까.

 나는 그저 눈을 돌리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현실에 눈을 돌리고 행복하고 즐거운 것들에 대해서만 누리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현실 또한 누군가가 누리고 싶어 했던 꿈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그리고 전쟁이든 현실이든 어떤 시대였든 간에 가장 힘들어야 했고 고생을 했야만 했던 것이 누구인가를 다시금 확인하게 해 주었다.

현실과 타협한다는 것. 그것은 때로는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치러야 할 대가일 뿐이라는 것.

그것에는 옳고 그름이 없다고 생각한다.

살아남은 자만이 후세에 목소리를 남길 수 있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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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 인 캐빈 10
루스 웨어 지음, 유혜인 옮김 / 예담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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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완벽하게 가질 수 없는 화자를 따라 떠나는 크루즈 여행 .

  로는 그 배에 합류하기 직전 집에 강도가 든 경험을 한다. 그 경험은 그녀의 감각을 더욱 예리하게 만든 동시에 공포에 잠식당하지 않도록 자신을 다독여야 할 정도의 충격을 안긴다. 여행기자로서 자신의 커리어를 위해 탑승한 크루즈. 그곳에는 자신과 같은 직업군에 종사하는 사람들과 크루즈 여행을 즐길 수 있는 자산을 가진 거부들이 있었다. 그곳에서 그녀는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살인사건을 경험한다. 자신이 경험한 끔찍한 두려움과 공포를 느꼈을 그녀를 돕고 싶다고 생각한 로는 범인을 밝혀 내야 한다고 생각하며 사건에 다가간다. 사건에 대한 정보를 모으고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사실 속에서 실마리를 찾는 동안 로는 끊임없이 자기 자신과의 두려움과 맞서 싸웠다. 그녀를 돕고 싶다는 마음이 어쩌면 자신을 옥 쬐어오는 두려움에 지지 않기 위한 발버둥은 아니었을까.

하루하루 그녀가 경험한 날에 대한 고백을 듣고 나면 이 사건과 관련된 기사나 메일, sns가 교차로 배치되어 있는데 그 기록들을 읽는 순간 상상 속에서 사건에 대한 추측은 다채로운 양상을 띄게 된다.

  서두를 읽고 빠른 속도로 읽어 나갔다. 발췌독임 아닌 진지한 마음으로 속도감 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을 만난 것은 참 오랜만의 일이라 설레는 마음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로의 시선으로 상황을 살피며, 그녀의 목소리에 따라 사건을 들으면서 진행되는 과정들에 대한 묘사나 서술이 소름 끼칠 정도였다. 어떻게 보면 설명이 많다고 볼 수도 있을 만한 문장이지만 그 문장을 따라 읽으며 그녀가 느끼고 있을 불안과 공포를 생생히 체험할 수 있었다.

영화 한 번을 제대로 읽은 느낌이었다. 실제로 영화화된다고 하니 어떻게 표현했을까 사뭇 기대된다.

어서 빨리 시간적인 여유가 생겨 원서를 음미하듯 읽고 싶다는 욕망이 강해졌다.

 꿈에서 그녀는 표류하고 있었다. 갈매기가 우는 하늘과 부서지는 파도 아래, 햇빛 하나 들지 않는 차가운 북해 속으로 깊이, 더 깊이 빨려 들어간다. 웃음기 어렸던 눈을 허옇게 빛을 잃고 바닷물에 퉁퉁 불었다. 새하얀 피부는 쭈글쭈글하게 변했고 거친 바위에 찢긴 옷은 누더기가 되었다.

변하지 않은 것은 길고 까만 머리뿐. 검은 해초 같은 머리카락이 바다를 이리저리 떠다니다 조개껍데기와 고기잡이 그물에 엉킨 채 해변으로 쓸려 내려와 낡은 밧줄처럼 축 늘어졌다. 자갈에 부딪히는 파도 소리가 귀청을 울린다.

 

 

  In my dream, the girl was drifting, far, far below the crashing waves and the cries of the gulls, in the cold, sun-less depths of the North Sea. Her laughing eyes were white and bloated with salt water, her pale skin was wrinkled, her clothes ripped by jagged rocks and disintegrating into rags.

Only her long, block hair remained, floating through the water like fronds of dark seaweed, tangling in shells and fishing nets, washing up on the shore in hanks like frayed rope, where it lay, limp, the roar of the crashing waves against the shingle fulling my 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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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
김민철.김승은 외 지음, 민족문제연구소 기획 / 생각정원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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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함도만이 아닌 우리가 기억하고 관심을 가져야 하는 우리의 역사적 사실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무엇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가슴이 아렸던 것은 이 진실들이 여전히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이 책을 읽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서 일본에 여행을 갈 일이 있었다.

그 행선지 중에는 나가사키도 있었다. 뉴스에서 언론에서 언급되고 있는 것처럼 그들은 정말로 그 진실들을 없었던 일로 치부하고 하시마섬과 나가사키의 유적들을 홍보하고 있었다. 진실을 호소해서 그들에게 양심 어린 사과를 받아내는 것에는 앞으로도 더 오랜 싸움을 필요로 할지도 모른다.

  일본 정부나 기업의 행보와 달리 양심의 울림에 따라 행동하는 일본인분들도 있다. 이 책에서도 나와 있듯이 자료에 대한 확보와 그 내용을 확인하고 소송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그분들의 도움은 큰 힘이 되었다. 그들의 용기 있는 행보에 감사드립니다.

  시간이 흘렀다고 과거의 일로 넘겨서는 안 된다. 관심을 가져야만 한다.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서 적어도 기억하기 위한 노력은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렇지 않는다면 그들의 바람대로 이 진실들이 시간의 흐름 속에 묻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돼버릴지도 모른다. 그들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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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소음
줄리언 반스 지음, 송은주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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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미트리 드미트리예비치 쇼스타코비치의 삶으로 통해 정치적인 상황 속의 예술가의 위치, 그가 겪어야 했던 사회적인 갈등 및 내재적인 혼돈을 소설로 표현한 작품이다.

  회화, 음악, 소설, 시, 조각, 건축.... 어떤 분야를 망론하고 예술인의 삶은 자신을 후원해 주는 후원자, 때로는 자신을 지지하는 민중의 눈을 외면할 수가 없다. 자신의 내적인 욕망에 따라 표현하고자 하더라도 그 예술을 소비하는 주체의 눈을 피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극소수의 천재들만이 그 굴레를 벗어던질 수 있는 영광을 얻게 되지만, 그와 동시에 언제든 역사 속에서 사장될지도 모른다는 잠재적인 위험이 그들을 노리고 있다.

아침마다 그는 기도 대신 옙투셴코의 시 두 편을 암송했다. 하나는 권력층의 그림자 아래에서 살아가는 삶이 어떤 것인지 묘사한 <경력>이었다.

갈릴레오의 시대에, 한 동료 과학자

갈릴레오 못지않게 어리석었다.

지구가 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도 먹여 살아야 할 대가족이 있었다.

그것은 양심과 인내에 관한 시였다.

그러나 시대마다 과시하는 방식이 있다.

가장 고집 센 자들이 가장 똑똑하다.

그게 사실일까? 그는 알 수가 없었다. 시는 야심과 예술가의 진실함 사이의 차이를 보여주면서 끝났다.

그러니 나는 내 일을 하련다.

하나를 좇지 않음으로써.

  이런 시들은 그를 위로해 주는 동시에 의문을 던져주었다. 그는 불안과 두려움과 레닌 그라드 식의 공손함을 지녔지만, 근본적으로는 음악에서 자신이 보았던 대로의 진실을 좇으려 하는 고집스러운 사람이었다.

그러나 <경력>은 본질적으로 양심에 관한 시였고, 그의 양심이 그를 비난했다. 빈 곳을 찾으려 이를 더듬는 혀처럼, 나약한, 이중성, 자기만의 영역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양심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그가 입안에 뭔가 문제가 있다고 늘 의심하면서도 두 달에 한 번씩 치과의사를 찾는다면, 양심에 대해서는 자기 영환에 뭔가 문제가 있지 않나 늘 의심하면서 매일같이 자신의 양심을 살폈다. 그를 비난하는 것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타협하느라고 건너뛰고 기대에 못 미쳤던 행동들, 카이사르에게 치른 동전. 때때로 그는 자신을 갈릴레오이면서 그 동료 과학자, 먹여 살릴 식구들을 거느린 자로 보았다. 그는 타고난 천성이 허락하는 만큼은 용감했지만, 양심은 항상 더 많은 용기를 보여줄 수도 있었을 거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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