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 - 노희준 장편소설
노희준 지음 / 민음사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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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과연 내가 나라는 존재로 살아가는 것을 증명하는 명확한 증거를 얼마나 가지고 있는가.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에는 무슨 내용인지 이해하기 위해서 최대한 노력해서 집중하지 않으면 안 되었을 정도였다.

그 정도로 흥미를 유발하는 가벼운 읽을거리에 익숙해져 있었을 시기에 이 책을 읽었었다. 그동안은 머리를 써서 문장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는 것이겠지.

 그래서 이 책은 읽어 나가는 것이 쉽지 않았다.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 읽어가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증거를 찾아가면서 머릿속에서 그림을 그려가면서 읽어야 했다.

  추리소설만을 골라서 읽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 느낀 것은 어차피 독자는 작가가 주는 힌트에 의해서 누가 범인인지를 추리할 수밖에 없으며, 작가는 때때로 독자의 혼란을 가중시키기 위해서 일부러 범인이 아닌 사람부터 범인인 것처럼 의심을 해가면서 서술을 이어나가는 구나 였다.

 결국 아무리 추리를 해서 읽어나간다고 해도 결코 독자로서는 범인이 누군인지에 대한 명확한 증거를 찾을 수가 없다고 스스로 결론을 내린 것이다. 범인은 이미 정해져 있고, 작가는 최대한 주변 사람들이 범인인 것처럼 몰고 가다 마지막에 깨달았다는 듯이 줄줄 범인에 대한 증거들을 늘어 놓는다. 그래서 나는 누가 범인이지에 대해 생각할 필요 없이 그저 작가가 주는 실마리를 따라 읽으며 즐기면 될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책은 누가 누구인지 분간을 하면서 읽어야 해서 다른 의미로 신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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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여행처럼 - 지금 이곳에서 오늘을 충만하게 사는 법
이지상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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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일본 워킹홀리데이를 떠나기 위해 일본어 스터디분들과 마지막 인사를 하던 날 선물로 받았다.

그때의 나는 아직 정체성이 확립되지 않은 아이와 다를 바가 없었다.

  2008년 대학을 졸업하고 나는 2개의 기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었다. 기사 자격증 덕분에 입사한 중소기업에서는 고작 3개월을 버티지 못했다. 재입사한 곳에서도 3개월을 못 버텼다. 그리고 시작된 인턴, 계약직 생활들... 차라리 계약직으로 있는 생활이 나에게는 편했다.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는다는 것이 나에게는 불안감이 아닌 자유로움으로 느껴질 정도로 삶이 버거웠다. 사회생활은 현실이었고, 그 현실을 받아들을 준비가 나는 아직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때에는 몰랐다. 사회생활을 한다는 것, 직장 생활을 한다는 것은 자신의 삶을 많은 부분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적어도 한국 사회에서는 그래야만 한다는 것을 나는 알지 못했다. 그리고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도망가는 것을 선택했다.

  도망가기 위해 여러 나라를 고려했다. 한 번도 홀로 서 본 적이 없는 아이는 그나마 가깝고 외견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일본을 선택했다. 관심에도 없던 일본어를 공부하기 시작했고,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저금을 했고,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신청했다.

2011년 지진으로 인해 쓰나미로 많은 인명피해가 있었고 후쿠시마에서는 원전이 폭발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엔화는 1500원대까지 치솟았고 자국민들을 대피시키는 해외 다른 나라들의 행보를 보면서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않는 한국 정부에 실망했다. 재력이 있는 일본인들도 해외로 떠난다는 말이 들려왔고, 한국으로 돌아온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여진은 계속되었고, 방사능에 대한 위험성은 개인이 조심해야 하는 정도의 것으로 치부되었다.

불안하고 무섭고 두렵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가 겪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리고 내 남은 생, 내 건강을 위협하는 결정이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일본으로 가는 결정을 보류하지 않았다. 그만큼 나는 한국이 싫었다. 내 현실이 지긋지긋했고, 벗어나고만 싶었다.

  이 책은 그때의 어린 나에게 힘을 주었다.

  이 책에 따르면

  우리가 위험한 지역, 위험한 인생으로 뛰어드는 것은 바로 통과의례를 원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신화학자 조지스 캠벨에 의하면, 인간은 두 번 태어난다. 한 번은 몸이 태어나고 두 번째로 영혼이 태어나는데, 모험과 통과의례는 영혼이 태어나는 과정이다. 새가 알을 깨고 나와 날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근대 사회에서는 위협이 없기 때문에 스스로가 그 위협적인 상황을 만들어 극복함으로써 자기 존재를 확인한다는 것은 내 머리를 뒤흔들어 놓을 만큼의 충격을 주었다.

  일본으로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정도로 긴장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적응하며 살아가는 과정이 다 행복하고 즐거웠던 순간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라면 하지 않아도 될 중노동을 했고, 한국에서라면 받지 않아도 될 무시와 멸시를 받기도 했다. 그런데 그 과정들이 나에 가는 다 통과의례였다는 것을 지금에서야 깨달았다.

  일본에서 돌아와서 한동안은 힘들었다. 그곳에서의 나는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자유로운 개인이었지만, 한국에서의 나는 내가 아니었다. 방황을 또 시작되었고, 계속 떠날 것만 생각했다. 떠나기 위해서 준비를 계속했고, 결국 나는 안주하는 것을 선택해야만 했다. 그러고서도 미련을 끊어내지 못하고 언제든지 떠날 수 있는 사람인 것처럼 행동했다.

  나의 그런 문제에 대해서도 이 책은 답을 찾는 실마리를 주었다.

  마페졸리에 의하면 '역동적 뿌리내리기'가 절실해진다. 마페졸리에 의하면 '역동적 뿌리내리기'는 뿌리를 내리면서도 그것을 거부하고 떠돌면서도 또한 동시에 뿌리내리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이곳에서든 저곳에든 뿌리를 내려야 한다. 뿌리를 내린다 함은 관계를 맺고, 그 관계를 통해 정체성을 만들고, 돈을 벌며, 보람과 의미를 찾으며 생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렇게 뿌리를 내리는 만큼 여행자들은 뿌리를 벗어나고자 하는 욕구에 시달린다. 이것이 존재의 비극이다.

  그래서 나는 내 현실에서 여행을 하기로 결심했다. 벌려놓은 일을 정리하면서 다음 목표를 설정했다. 그리고 그 목표 지점에 도달하기까지의 여정을 그때그때 조정해 가면서 살아가고 있다. 때로는 경비가 모자라서 마시고 싶은 커피를 꾹 참아야 할 때도 있고, 분에 넘치게 비싸지는 않지만 관광지 한곳을 들리는 것을 포기하고 친구들에게 식사를 대접하기도 한다. 내 사람이 항상 만나는 사람들과 일상적인 것으로 멈추지 않도록 여행 경로를 이탈하기도 하고 쉬어가기도 하면서 그렇게 나는 내 현실이라는 여행지에서 삶이라는 여행을 계속하고 있다.

  내 삶의 마지막을 맞이하는 그날까지 매 순간이 다시는 들르지 못할 여행지를 방문한 것처럼 절실하게 살아갈 것이다.

  해방과 자유는 무조건 돌아다닌다고 찾는 것이 아니다. 무한의 세계는 저 멀리 하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코앞에도 있다. 스스로 문을 상상하고, 문을 만들고, 문을 열고 닫는 행위에 의해 우리는 자유를 느낄 수 있다. 그것은 사소한 일상, 평범한 행위 속에서도 찾을 수 있다. 그것을 현재, 여기서 맛보는 사람은 떠나든 떠나지 않든, 또 어딜 가든 늘 사소한 것에서 기쁨을 맛볼 수 있다. 그것을 맛보려면 끊임없이 역동적으로 흔들려야 한다. '역동적 뿌리내리기'라는 어떤 목표 지점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끝없이 흔들리며 타자와 소통하는 가운데 존재를 싱싱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니 내 삶을 살자. 남의 삶 못지않게 내 삶도 지루하지만, 그 안에서 나는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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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
이철환 글.그림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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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로가 필요하다는 말에 좋아하는 언니가 책을 빌려줬다. 본인이 힘든 시기에 지인에서 받은 책이라며, 많은 위로가 되었다는 말과 함께....

겉으로 보이는 것만으로 그 사람이 행복한지 아닌지 알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다수의 사람들은 힘든 것을 참고 인내하면서 사람들 앞에서 웃고 있다는 걸 안다면 조금을 타인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피터와 그가 만난 숲속 친구들의 말은 어느 정도의 철학적 깊이가 실린 말이라 인생의 단면을 알려주는 글이라 생각하며 읽었다.

  사람마다 다 추구하는 가치가 다른 만큼 어떤 삶이 행복한 삶인지, 만족스러운 삶인지 말하기는 힘들겠지.

다만 모두 다 각자의 방식으로 힘들고 위로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타이핑을 하는 내내 들었던 생각은.... 각자가 받은 상처가 다르기에 위로를 받는 것도 치유를 받는 것도 다른 방식 다른 부분에서 이겠다는 생각이었다. 언니가 위안 받은 부분과 내가 위로를 받은 부분은 다르겠지. 같은 문장이라도 다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었겠지.

사람은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밖에 없으니까. 나 역시 그럴 수밖에 없고...

  비록 내가 공감한 부분과 언니가 위로를 받은 대목이 다르다고 할지라도 어루만져졌다는 사실만은 같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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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고맙다
전승환 지음 / 허밍버드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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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성비를 따져서 책을 고른다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와 같은 책 고르는 기준을 가진 나라면 절대로 구입하지 않을 책.

 사진이 많고 활자가 적어서 읽는 재미가 떨어지는 이런 종류의 책을 잘 구입하지 않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선택한 것은 그만큼 지금 내가 많이 지쳐있기 때문이겠지.

 언제나 나는 자신만만한 얼굴로 나는 괜찮아라고 말하고 다닌다. 그 뒤에는 지쳐 혼자 쓰러져 회복을 기다릴지언정 절대로 사람들 앞에서 내색을 하지 않아야 한다고 믿고 살았다. 한 번이라도 힘들다 귀찮다 피곤하다 하기 싫다는 말이 나오면 그대로 모든 것을 던져버리고 도망칠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것이 내가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었다.

그런 내 성향은 완벽해야 한다는 생각과 결합되었을 때 더욱 무시무시한 결과물을 나타내기도 한다.

주말 내내 동굴에서 혼자 낑낑거리거나 가위가 눌린 채 뻗어있는 한이 있더라고 주어진 일은 반드시 해 냈으니까.

 그런데 문득 무엇을 위해서 나는 이렇게까지 하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만족? 타인의 인정? 그것도 아니면 그런 행위들이 나에게 금전적인 보상이나 내 이름을 드높이는 역할이라도 한다는 근거 없는 믿음?

 그저 나는 내가 세운 틀에 맞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뿐이었다.

그 누구도 나에게 그렇게 하라고 말하지 않았는데... 나조차도 그렇게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못하고 홀로 낑낑거리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서 참... 불쌍하고 안타깝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나에게 선물을 한 책이 활자가 많고 정보가 많거나 내용이 풍부한 책이 아닌, 생각할 여지를 많이 주는 그런 책이 아닌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열심히 달리다가 걷고 싶은 순간이 생기기도 하고 때로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쉬어가는 것이 인생이니까.

  고맙다고 말하자. 선물을 하지만 말고 나에게도 선물을 하자. 꽃다발도 안겨주고 잘했다고 칭찬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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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피크닉
온다 리쿠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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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모두 함께 밤에 걷는다. 단지 그것뿐인데 말이야.

어째서 그것뿐인 것이, 이렇게 특별한 걸까.

 밤새 80킬로를 걷는 ‘야간보행제’ 북고의 학생들은 일 년에 한번 있는 그 행사를 시작하려 하고 있다. 그 속에는 이복남매인 것을 숨기고 있는 고다 다카코와 니시와키 도오루가 있다.

 서로를 무시하면서도 그 누구보다도 강하게 서로를 의식하고 있는 두 사람.

이 두 사람의 입장에서 온다 리쿠는 야간보행제와 그들 주변의 친구들과의 사연, 그리고 청춘에 대해 풀어내고 있다.

 고다 다카토는 이 ‘야간보행제’ 중에 자신과 작은 내기를 한다. 그에게 말을 걸어, 대답을 듣는 것. 이 작은 내기가 과연 이루어질까? 이루어진다면 어떤 상황으로 전개될까에 초점을 맞춰 읽다 보면 어느새 다른 흥미를 자극하는 이야기들이 등장한다.

 다카토의 친구이자 니시와키를 짝사랑하는 안나. 미국으로 간 안나에게서 온 엽서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 아마, 나도 함께 걷고 있을 거야. 작년에, 주문을 걸어두었거든. 다카코네의 고민이 해결되어서 무사히 골인할 수 있도록 뉴욕에서 기도하고 있을게.

주문은 또 무엇이고, 작년에 언제 어떻게 걸어 놓았다는 것일까? 그리고 고민? 무슨 고민을 말하는 것일까?

 니시와키의 친구인 도다 시노부, 다카코는 도다 시노부와 문제의 여학생이 같이 있었던 것을 기억해 낸다. 그 여학생의 사촌은 이 야간보행제를 통해 그녀가 낙태하게 만든 문제의 남자를 찾고 있다. 그렇다면…….

 작년 그 어느 반에서도 존재를 확인할 수 없었던 검은 야구모자를 쓴 소년. 그는 대체 누구였을까? 과연 올해도 등장할까?

 야간보행제 기간에 니시와키에게 고백하기로 결정한 우치보리 료코. 그 소문은 야간보행제가 계속되는 동안 모두에게 화젯거리가 되고 있다. 과연 그녀가 준비한 선물은 무엇일까? 니시와키는 그 고백을 받아들일까?

 

 그들이 걷고 있는 길과 주변 풍경에 대한 묘사를 읽으며, 그들의 생각을 듣고 있다 보면 어느새 나도 같이 그들과 야간보행제를 참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 몰래 도다 다카코의 뒤를 따라 걷다 니시와키가 있는 곳까지 내달려 뛰면서 아니라니까. 다카코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아. 라는 조바심을 내게 만든다. 조잘조잘 이야기를 하며 걷는 친구들. 피곤에 지쳐서 어느새 말을 잃어버리고 걷는 데만 열중하기도 하고, 주변 풍경을 돌아보며 야간보행제가 끝나는 것을 아까워하기도 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어느새 나는 내 청춘의 시기에 대해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그들 만큼 무언가를 고민해 본 적이 있었던가? 맞아. 우리 때는 이런 행사를 했었어. 그때 나는 뭘 하고 있었지?

 기록을 남긴다는 것, 일기를 남긴다는 것은 사라져가는 추억을 붙잡을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매일매일 새로울 수 있었던 시기를 넘긴 지금에서야 후회를 하다니……. 바래져가는 기억을 되살리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지난 기록을 훔쳐보는 것이 아닐까. 아쉽게도 나에게는 그런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이제 와서 어쩌겠는가. 찬찬히 기억의 조각들을 살피고 있자니 추억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이 슬며시 떠오른다. 그런 기억을 찾아낼 때마다 입가에 피어나는 미소와 반대로 눈가가 시리는 것은 왜일까. 아마. 나에게도 청춘이라 부를 수 있는 그 시기가 있었다는 흐뭇함과 더는 그 시기로 돌아갈 수 없다는 아쉬움 때문이겠지.

 

해는 옛날에 저물었다. 그러나 수평선을 밝았다.

하늘도 바다도 완전히 밤의 소굴인데 수평선만이 어렴풋이 보이는 것이다. 분명 바다 저편에 광원(光源)이 되는 뭔가가 있다.

세 사람은 홀린 듯이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곳에 뭔가가 있다.

마치 수평선이 이 세상을 가로질러 금이라고 그어 놓은 것 같았다. 창호지인지 무엇인지가 그곳만 얇아져서 건너편 세계의 빛이 새어 나오는 것 같다.

그러나 위아래에서 밤이 공격하고 있었다. 조금 시선을 올렸다 내렸다 하면, 칠흑 같은 밤과 파도가 수평선을 향해 밀려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금, 저 수평선만이 낮의 마지막 아성인 것이다. - P106

캄캄한 양배추밭이 길게 이어지는 경치 좋은 길이다. 학생들이 들고 있는 회중전등 불빛이 깜박깜박 옅은 빛의 행렬을 지어 움직인다. 대단한 빛은 아닌 듯이 보이는데, 떨어진 곳에서 보고 있으면 직선의 빛이 하늘의 구름에 반사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볼 수 있다.

"신비롭다."

"구름까지 닿아 있어."

"빛이란 직진하는 거 맞구나."

그런 사소한 발견이 기쁘다. 어두운 곳을 걷는 데도 익숙해져서 호흡과 보조가 어둠에 녹아들고 있는 것에 편안함을 느끼게 되었다. - P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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