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남자가 일하기에는 아주 좋다. 남자가 일감을 가져오는 집은, 말끔히 청소가 되어 있고 일하기에 딱 좋도록 남자 중심으로 새로 배치할 수도 있다. 남자에게는 일이 있다는 걸 누구나 알아준다. 따라서 으레 전화를 받는 일도, 어디 두었는지 모를 물건을 찾는 일도, 아이들이 왜 우는지 알아보는 일도, 고양이 먹이를 주는 일도 기대하지 않는다, 방문을 닫아 걸어도 무방하다, 방문이 닫혀 있고 그 방 안에 엄마가 있다는 걸 아이들이 안다고 생각해 보라.(생각해 보라고 남편에게 말했다.) 왜냐, 아이들은 그런 생각을 하는 자체도 용납하기 어려울 테니까. 여자가 허공을 응시한 채, 남편도 자식도 없는 엉뚱한 곳을 바라보는 건 자연의 섭리를 저버린 것과 마찬가지라고 여길 테니까. 그러니 여자에게 집이란 남자와 같은 곳이 아니다. 여자는 누구들처럼 집에 들어와서 이용하고 마음대로 다시 나가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여자는 곧 집이다. 떼려야 뗄 수 없다.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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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이 여러 번 바뀌었고 사신의 임무를 계속 수행하면서 마르코는 타타르 족의 언어와 각 나라의 수많은 고유어들과 각 부족의 말을 익혔다. 이제 그의 이야기는 칸이 원하는 대로 더욱 정확해지고 상세해져서 칸이 어떤 질문을 하든 혹은 어떤 호기심을 보이든 다 대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떤 장소에 대한 새로운 소식을 들을 때마다 황제는 예전에 마르코가 그곳을 묘사할 때 보여주었던 몸짓과 물건 들을 떠올리곤 했다. 새로운 정보는 그런 몸짓과 물건의 상징으로부터 의미를 부여 받는 동시에 그 상징에 새로운 의미를 보태기도 했다. 쿠빌라이는, 어쩌면 제국은 머릿속의 환영들로 이뤄진 황도 십이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칸은 마르코에게 물었다.

"내가 상징을 모두 알게 되는 날, 그 날엔 마침내 내가 내 제국을 소유할 수 있게 되지 않겠는가?"

 그러자 베네치아인이 대답했다.

 "폐하, 그렇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되는 날에는 폐하 본인이 상징들 속의 상징이 되실 겁니다."34

 

 

"다른 곳은 현실과 반대의 모습이 보이는 거울입니다. 여행자는 자신이 가지지 못했고 앞으로도 가질 수 없는 수많은 것들을 발견함으로써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하게 됩니다" 40

 

그러나 쿠빌라이가 소중하게 생각한 것은 의미를 분명하게 전할 수 없는 보고자가 전해주는 모든 사실이나 정보 주위 남아 있는 공간, 말로는 채울 수 없는 여백이었다. 마르코 폴로가 자신이 방문한 도시를 보여주는 묘사는 이런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 머릿속으로 그 도시 한복판을 돌아다닐 수도 있었고 거기서 길을 잃기도 하고 걸음을 멈추고 신선한 공기를 들이켤 수도, 혹은 달음박질로 달아날 수도 있었다.52

 

쿠빌라이 칸은 마르코 폴로의 도시들이 서로서로를 닮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치 이런저런 도시의 풍경은 여행이 아니라 기본 요소들의 교환과 관련이 있는 것 같았다. 이제 칸은 머릿속으로 마르코가 그에게 묘사했던 모든 도시에서부터 자기 나름대로 출발했다. 그래서 도시를 조각조각 분해하고, 그 재료를 다른 것으로 대체하고 옮기고 뒤바꾸면서 전혀 다른 방식으로 도시를 다시 건설했다. 57

 

음란한 떨림이, 도시 중에서도 가장 순결한 도시 클로에를 계속 움직입니다. 남자와 여자들이 계속 부질없는 그들의 꿈을 키워나가기 시작한다면, 모든 유령이 사람이 되어 추적, 거짓, 오해, 충돌, 억압의 역사를 시작할 것이고 환상의 회전목마는 멈추게 될 겁니다. 68

 

거울은 사물들의 가치를 높이기도 하고 부정하기도 합니다. 거울에 비쳐졌다 해서 모든 게 다 가치 있어 보이는 것은 아닙니다. 발드라다에 존재하는 것, 혹은 일어나는 일들 중 그 어떤 것도 좌우 대칭을 이루지 않기 때문에 쌍둥이 도시는 동일하지 않습니다. 모든 얼굴과 행동이 거울에서는 정확히 뒤집어진 얼굴과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두 개의 발드라다는 계속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서로를 위해 살아가지만 상대방을 사랑하지는 않습니다. 70

 

그 도시는 존재하며 단순한 비밀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도시는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떠나는 것만을 알고 있을 뿐입니다. 72

 

에우트로피아 주민들이 주체할 수 없이 피로를 느껴 모두를 자기 직업이나 친지, 집과 거리, 의무, 인사해야 할 사람, 혹은 인사를 해오는 사람 전부를 참을 수 없는 날이 찾아 옵니다. 그러면 시민들은 모두 새로운 도시로, 텅 빈 상태로 그들을 기다리는 옆 도시로 옮겨 가기로 결정합니다, 그 도시에서 그들은 각자 새 직업을 구하고 다른 아내를 얻으며, 열힌 창문으로 다른 풍경을 보게 됩니다, 밤마다 다른 친구들과 어울려 다른 여가를 즐기고 다른 수다를 떨 수 있습니다. 그렇게 그들의 삶은, 위치 혹은 경사나 물의 흐름이나 바람들 때문에 다른 도시들과 약간의 차이를 보이는 여러 도시들로 이리저리 이사를 다니면서 새로워집니다. 83

 

바우치를 향해 숲 쪽으로 칠 일을 걸어도, 여행자는 도시를 볼 수 없습니다. 그대도 그는 도착한 것입니다. 서로 멀찌감치 떨어져 있으며 땅에서 우뚝 솟아 구름 속으로 사라지는 가느다란 지주들이 도시를 지탱해 줍니다. 그 위로 올라갈 때는 조그만 사다리를 탑니다. 주민들이 땅위를 돌아다니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이미 위에서 필요한 것은 모두 다 갖추고 있어서 내려오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을 떠받치고 있는 그 긴 다리들과, 맑고 화창한 날이면 나뭇잎 위에 그림을 그리는 구멍 뚫리고 각이 진 그림자를 제외하고는 도시의 그 어떤 것도 땅을 디디지 않습니다.

 바우치의 주민들에 관해 세 가지 가정을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땅을 증오하는 사람이다.' '땅을 너무나 존중해서 땅과의 모든 접촉을 피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태어나기 이전 상태의 땅을 사랑해서 아래로 향하게 고정시켜 놓은 망원경과 쌍안경으로 나뭇잎, 돌, 개미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자신들의 부재를 황홀하게 바라본다.'는 겁니다. 101 

 

기억 속의 이미지들은 한 번 말로 고정되고 나면 지워지고 맙니다. 저는 어쩌면, 베네치아에 대해 말을 함으로써 영원히 그 도시를 잃어버릴까 봐 두려웠는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다른 도시들을 말하면서 이미 조금씩 잃어버렸는지도 모릅니다. 113

 

혹은 연기가 입에서 나가자마자 자욱하게 모이면서 천천히 멈춰버렸고 다른 광경을 만들어냈다. 그 광경은 대도시의 지붕 위에 고여 있는 증기들, 흩어지지 않는 불투명한 연기, 아스팔트 거리 위로 무거운 유독가스를 내뿜는 굴뚝 같은 것이었다. 금방 사라지고 마는 기억 속의 안개나 건조하고 불투명한 공기가 아니라 도시의 상처에 딱지를 앉게 하는, 불타버린 삶에서 타고 남은 찌꺼기,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생명체에 의해 부풀어 오른 스펀지, 움직이고 있다는 환영 속에 빠진 화석화된 존재들을 가로막는 과거와 현재, 미래의 뒤범벅 같은 것이다. 당신이 여행의 끝에서 만나게 될 것들은 바로 이러한 것들이다.

 

완벽함을 쌓아가는 일에 너무나 몰두한 나머지, 베르셰바는 스스로의 텅 빈 항아리를 다시 채우는 데 골몰하는 우울한 열정을 미덕으로 여깁니다. 편안하게 긴장이 완화되는 유일한 순간들은 바로 스스로에게서 분리되어 그것을 떠나 보내고 스스로 확장되어 나가게 하는 순간들임을 도시는 알지 못합니다. 여전히 베르셰바의 천정에서는 빛나는 천체가 중력의 작용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 천체는 감자 껍질, 부서진 우산, 구멍 난 양말, 반짝이는 유리 조각, 떨어진 단추, 초콜릿 포장지가 펄럭이고 기차표와 잘라버린 손톱과 티눈, 달걀 껍질로 뒤덮인 행성입니다. 이것이 천상의 도시입니다. 그리고 꼬리 긴 별똥별이 그 하늘을 날아갑니다. 배설을 할 때에만 탐욕스럽고 타산있는 단 하나의 자유롭고 행복한 행동에 희해 공간을 날아 갈 수 있게 된 별똥별들입니다. 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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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린 날씨, 안개가 끼고 계절은 가을로 가고 있다. 술은 고요하고 곳곳에 숨은 마을들... 산도 계절을 걷고 있다. 새벽 꿈속에서 중요한 비밀을 듣지 못했다. 그래서 비워지지 않는 안타까움. 꿈도 삶도 원하는 것을 다 주지는 않는다. 그래서 늘 남아 있는 허기. 그 허기 때문에 계절 위를 걷는지 모르겠다.

 

떠나오면 혼자가 되어도, 혼자서 걸어도 마냥 행복하다. 새벽녘의 음산한 웃음소리도,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도 두렵지 않다. 세상 그 누구와 공유할 수 없어도 괜찮다. 백 퍼센트의 나를 만나기 위해 걷는다.

 

갈대가 한창이다. 흔들림도, 멈춤도 아픔이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밝은 갈대가 웃음 같다. 갈대가 선명한 하늘 같고, 풍성한 수국 같다. 근심이 자리할 곳이 없다. 돌길을 걸으며, 여유를 걸으며 그렇게 길을 묻고 있다. 12

 

사람, 책, 음악 등 무언가를 만나서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세상으로 가게 되는 일이 있다.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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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천이 궁금해서 나갔다 두 시간 걷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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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5-11-15 18:03   좋아요 0 | URL
매번 볼 때마다 생각하게 됩니다,
풍경도 좋지만, 사진을 참 잘 찍으세요^^
쑥님, 편안한 주말 보내세요^^

2015-11-16 12: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알맹이 2015-12-21 01:36   좋아요 0 | URL
언니 사진 넘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