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늘에 걸쳐 <포트노이의 불평>을 읽었다. 만약 <포트노이의 불평>이 첫 책이었다면 나는 아마도 필립 로스를 읽지 않았을 것 같다.
고백을 단숨에 계속 듣기에 숨이 가빠 중간 중간 인터뷰 기사나, 리뷰들도 읽어보고 다른 책도 읽다가 그랬다. 이 책이 야하다고 소문난 책이라는 것은 책을 읽던 중간에 리뷰들을 보고 알았다. 다 읽고 난 소회는 야한 걸 기대하고 읽는다면 실망할 책이다,이다. 표현의 수위나 몰랐던 어떤 세계들에 대한 수위에 대한 실망이 아니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야함 그 자체가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느껴졌다. 고백, 억압,강박이라는 측면에서 미시마 유키오의 <가면의 고백>이 생각나기도 했다. 이러구러 이 책도 <가면의 고백>도 다시 읽는다면 더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포트노이의 불평>이 아니더라도 원색적인 단어와 표현, 성적인 것에의 집착 같은 것은 일부 로스 작품의 특징적인 면인데, 그러한 것은 읽다보면 개의치 않아 진다. 예전 같으면 이래서 읽기 싫었어 라고 말했음직한데, 신기하게도 그런 것들이 이야기 속에 함몰되어 도드라지지 않는다. 상상력에도 현실에도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는 나같은 독자가 읽어도 세상과 인간이 다 읽어지는 것은, 직설적으로 바로 이야기해주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포트노이의 불평>을 로스의 첫책으로 읽었다면, 완독도 좀 어려웠지 않나 싶다. 지금은 애정을 가진 상태에서 읽어 주기 때문에 이면을 보려고 노력하고 관계와 심리를 읽어가는 과정에서 재미를 느끼고 읽어 갈 수 있는 동력이 되었다.
로스 입덕은 <전락>이었다. 여행 간 친구 집에서 잠자기 전 책으로 빼들은 후, 그 밤에 <전락>을 다 읽고, 다음 날 <죽어가는 짐승>과 <미국의 목가1,2>를 내처 읽었다. 책읽기에도 타이밍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 타이밍의 배경이 개인의 배경지식이든, 그 때 그 때의 물리적 환경이든, 책과 사람이 인연이 닿는 시기가 따로 있는 것 같다. <유령퇴장>을 작년 연초에 두 번이나 빌렸던데, 책장도 못 펼치고 반납한 기억이. <전락>과 <죽어가는 짐승>은 얇기도 하고 주인공도 비슷한 설정이어서 이제는 줄거리도 헷갈리는데, 어쨌든 이런 감상은 남아 있다. 한 5년 전에만 읽었어도 싫어 했을 수도 있겠구나.
무라카미 하루키를 대학 시절에 한 권 읽고 그 후 오랫 동안 쳐다 보지 않은 것처럼, 그리고 비교적 최근에야 겨우 에세이를 시작으로 소설까지 읽게 된 것 처럼, 타이밍이 안 맞았다면 그렇게 밀어 놓고 한참 동안은 멀리 했을 것 같은 필립 로스의 책들. 이후로 <네메시스>,<유령퇴장>,<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를 단숨에 읽었다. 한 작가의 책이 좋아서 그 다음 책을 계속 빼든 것은 밀란 쿤데라 이후 처음이다. 그 사이 한 작가의 책을 두 권 정도 까지는 읽었어도, 내친 김에 라며 이렇게 가열차게 전진한 것은 음..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쿤데라 책은 옮겨 적고 싶은 부분이 많아서 진도 나가면서 읽기가 힘들었다, 로스는 옮겨 적고 싶은 부분이 많은 작가는 아니었기에 이렇게 죽죽 읽어 나갈 수 있었던 것 같다. 쿤데라의 책은 책이 나를 읽어준다는 느낌 때문에 거의 황홀경에 빠지다시피, 세상에 이런 책도 있구나 이런 작가도 있구나 하며 빠져서 읽었다. 쿤데라의 작품들이 예술적이고 우아하다면, 로스의 책들은 예술적이지도 우아하지도 않고, 한 편 부박하다고 할 만큼 현실적이고 거침없다.
<전락>과 <죽어가는 짐승>은 노년의 정서에 상실감에 깊이 공감했다. <미국의 목가1,2>는 구세대와 세대의 갈등, 현재 거기 있음과 어쩔 수 없음의 가족 관계에 공감했다. <네메시스>는 읽을 때는 여느 작품에 비해 임펙트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두고 두고 생각나는 작품이다. 상황 속에서의 인간의 선택과 선택에 상관 없이 주어지는 상황에 대해.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는 가장 과격한 작중인물에 동일시되는 나를 보고 흠칫 놀랐다. 아, 나 이런 사람이었나, 이렇게 살았어야 했나할 정도로 며칠 동안 자꾸 그 '공산주의자'가 생각났다. 마치 내가 그 사람이 된 듯 심정이 복잡했다. <유령퇴장>은 <전락>과 <죽어가는 짐승>과 비슷한 느낌으로 읽었던 것 같다. 지금 잠깐 줄거리가 생각나지 않아 당황했는데, 세 작품을 놓고 보았을 때 가장 문학적인 향기가 나는 작품이었다. 영화 같기도 하고 세련되고. 어떻게 끝이 났더라. 그러고 보니 다들 결말 부분이 생각나지 않는다. 두 번 읽는 다는 기분으로 처음은 훅 읽어서이도 하고 너무 달려서이기도 하리라. 리뷰는 안써도 처음과 끝의 몇 단락은 적어 두어야 겠다.
<에브리 맨>,<울분>,<굿바이 콜럼버스><휴먼 스테인1.2.> 이 작품들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