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을 하고 들어 오는 길

언제 그랬냐는 듯 하늘이 말개졌다.

 

읽던 책을 마저 읽는다.

<오키나와에서 헌책방을 열었습니다>

 

재작년 겨울 끝에 친구들과 다녀 온 오키나와가 넘 좋았어서

이후로 오키나와라는 제목만 들어가면 무조건 손이 간다.

이 책도 예외가 아니어서 북바이북에서 산 책은 친구에게 선물하고

오늘 도서관에 있길래  빌려왔다.

 

어느 날은 계산대에 앉아 있는데 고객이 <홋카이도 멋진 여행 연구실>12호를 내밀었다. 사실 나는 이 책이 우리 서점에 있는지도 몰랐다. 오키나와와 홋카이도 사이에는 비행기 직항편이 없는데, 오키나와에서 홋카이도 여행서가 팔릴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오키나와 소재 서점 중에 이 책을 비치한 곳은 우리 서점이 처음이었을 것이다. 새로운 서점은 새로운 지역으로 통하는 문이 될 수 있다. 26쪽

 

오키나와에서 책은 특별한 물건이 아니었다. 망고, 산신, 빈가타처럼, 오키나와만의 특별한 풍토가 키운 하나의 특산물처럼 여겨졌다. 책도 살고 서점도 살아남는 방법이 아닐까.31쪽

2010년 5월 말에는 <1Q84>1,2권이 발매되었다. 어느 서점에서는 하루 만에 책이 품절되었다는 뉴스가 연일 전파를 탔다. 오키나와에는 입고도 되지 않았는데....1년이 지난 후 발매된 3권은 다행히도 본토와 같은 발매일에 도착했다.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작가의 힘이었다. 1,2권의 반응이 좋자, 오키나와 판매분을 미리 보내는 특별한 조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2013년 4월에 발매된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는 다른 책들처럼 늦게 오키나와에 도착했다. 오키나와 신문들은 불평을 늘어놨다. 33쪽

 

사실 인용문 뒤에 나오는 글들이 진짜인데, 옮겨 적자면 한 편을 다 옮겨야 해서..이정도에서 멈춘다. 이 책, 읽기 전엔 오키나와 예쁜 카페 소개 책 정도의 기분이 아닐까 했는데, 그 느낌 보다 훨씬 재미있다. 나하, 국제거리, 뭐 추억 어린 장소의 이름들이 나와서 더 눈을 똥그랗게 뜨고 보고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우리나라로 치자면 교보문고 직원이 제주점에 발령받았다가 제주에 눌러 앉아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그 책방 주인이 좋아하던 시인이 오키나와에 살고 있었고, 우연히 그 시인의 모임에 끼게 되었는데, 엉거주춤 이후로 얼렁뚱땅 시를 써서 그 회원들과 함께 하게 되었다는 에피소드는 완전 꿀잼. 책방 주인이 좋아했다는 시는 이런 거다.

 

할아버지 몸에는

더 이상 봄이 오지 않겠군요.

괜찮아요.

그래도 좋아요.

 

하하..이런 시를 좋아하는 사람이 오키나와에서 헌책방을 하고 있는 거다. 책도 가볍고 조그맣다. 여행 배낭에 넣어 다니면서 아무데서나 꺼내 읽어도 여행 기분 제대로 나겠다. 오키나와 하면 남쪽나라 섬, 바다, 이런 이미지가 떠오르는데, 정작 내가 가장 좋았던 것은 나무와, 꽃, 돌길이었다. 이제부턴 헌책방 울랄라도 같이 떠오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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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ony 2016-02-28 23:38   좋아요 0 | URL
사진이 참 좋습니다.
눈과 등불과 꽃, 그리고 돌틈을 비집고 나오는 잎

세실 2016-02-29 15:28   좋아요 0 | URL
아하 좋아요^^
전 오키나와에 아직 가보지 못했지만 다음 여행지는 오키나와랍니다.
두근두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