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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먹어도 배고픈 사람 ㅣ 0100 갤러리 2
스타시스 에이드리게리치우스 그림, 쿠어트 바우만 글, 이옥용 옮김 / 마루벌 / 2003년 4월
평점 :
절판
아무리 먹어도 배고픈 사람
제목에서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다. 주위 몇 사람들에게 보여줬더니 그들 역시 제목만으로도 호기심을 가졌다. 사실 우리는(우리는 이라고 하자) 모두들 이런 느낌들을 가지고 일상을 살고 있으니까. 내가 흔히 쓰는 표현중에 '성에 안찬다'라는 말이 있다. 요즘 말로 바꾸면 '2%부족하다'고나 할까. 어떤 일을 해도 맛있는 것을 먹어도 그것이 백프로 만족감을 줄 때는 거의 없다. 그것은 나의 눈높이와 관련된 일일 수도 있고 실제 혜택 받은 어떤 것의 퀄러티에 관련된 문제일수도 있다. 그리고 아예 백프로는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론 숀텐의 빨간나무를 읽으며 느꼈던 감동은 없었다. 그러나 나는 책이나 그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에게서 위로받거나 위로하는 것을 좋아한다. 배고픈 사람은 두 가지 경우에 다 해당되었다. 배고픈 사람을 통해 내가 위로 받기도 하고 내가 그를 위로하기도 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행복한 청소부에 나오는 눈동자를 가졌는데 그 눈빛은 채워지지 않는 욕구의 허망한 눈빛이라는 것, 한 페이지 한 페이지 같은 사람이 다른 가면을 가진 것으로 보이지만 실은 낱낱의 인간들의 모습이 투영 된다는 것 그래서 단순한 구성이지만 해석의 여지가 많았다.
어른들이 읽으면 각자의 아무리 먹어도 배고픈 부분에 대해서 생각할 것이고 아이에게 그런 여지를 줄여주기 위해 노력하지 않을까. 배고픈 사람이 결국 허기를 못 채우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는 것은 인간은 무엇인가를 끊임 없이 열망해도 결국은 그 욕구를 채우지 못한 채 사라지는 존재라는 것을 자각하게 해준다. 물론 이 부분은 반대의 해석이 가능하다. 인간은 이런 나약한 존재니까 서로 사랑하고 자기를 낮추고 더 남을 사랑해야한다는.
사랑 받고 싶었는데, 버림을 받았고 후에 나타나 복수의 차원에서 사람을 먹어버리는 것으로 표현되어 있지만 그것은 글의 줄거리 속에서 상징적으로 이해 될 수 있는 부분이기에 특히 잔인하다거나 그래서 아이들에게 적합하지 않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아이에게 권해주고 안해주고는 어른의 마음이지만 이 책은 어린이 서가에 꽂혀 있을 만하다. 그로테스크한 분위기가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할 만한 독특한 일러스트가 돋보이는 '그림책'이기 때문에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