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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헌의 백가기행 ㅣ 조용헌의 백가기행 1
조용헌 지음 / 디자인하우스 / 2010년 9월
평점 :
품절
집안에서 찾은 휴식과 위안
《조용헌의 백가기행》(디자인하우스, 2010)은 '집이란 무엇인가?'란 질문을 시작으로 한국에 있는 다양한 집을 소개한다. 동양학자이자 칼럼니스트인 조용헌은 웅장하고 고급스러운 집이 아닌 자신이 평소에 가지고 있는 가내구원(家内救援) 즉, 집안에 위로와 휴식이 있다는 생각에 따라 선택한 집을 소개한다.
해운대 바다를 볼 수 있는 다실 '이기정'부터 한옥의 멋스러움을 느끼게 해주는 고택과 울창한 대나무 숲을 뒷마당 삼아 자리한 진주에 석가현, 장성 축령산에 한 도공이 지은 오두막집, 지하에 지은 건축가 조병수 씨의 집,
다실과 갤러리에 온 것처럼 꾸민 아파트, 성북동에 전망 좋은 집까지 책에 담긴 22채의 집들에선 고즈넉함과
평온함이 느껴진다. 그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집은 장성 축령산에
도공이 지은 한 칸 오두막집이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에 있는 오두막이 그려지는 이 집은 도공 김형규 씨가
20일 동안 지은 흙집이다. 자급자족한 자재로 지은터라 건축 비용은 못값 2만 8천 원, 가재도구 비용은 시장에서 구매한 쇠 솥 가격 3만 5천 원이
전부였다고 한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사회적 집'이 아니라, 인간의 생명을 유지하는 데 문제가 없는 최소한도의 시설만 갖춘 '존재적 집'이 가능하다면
바로 전남 장성군 축령산 자락에 있는 희뫼 김형규 씨의 한 칸 오두막집일 것이다. 한 사람이 다리 뻗고 두 팔 벌리고 누워 있으면 꽉 차는 작은
공간이다 보니 물건을 쌓아둘 공간이 없고 자연스레 물건에 대한 욕심이 줄어드는 집이다. 그러다 보니 집주인은 집 안을 채우고 꾸미기 위해 돈을 버느라
바쁘고 부산하게 살 필요도 없다.
소박한 집이 주는 또 다른 이점을 작가는 이렇게 적고 있다.
"방이 작으니까 밖의 하늘과 별과 달을 자주 쳐다보게 된다. 생각이 하늘로 향하는 것이다. 방문을 열면 앞의 대나무 숲과 그 너머의 산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방이 크면 방 안의 공간에 생각이 머무는데, 방이 작으니까 방 밖의 풍경에 눈이 가고 생각이 간다. 또 하나의 장점이 있다.
방이 작으면 자기 내면에 몰입할 수 있다는 점이다." (125쪽)
집주인의 손때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부엌도 좋았지만, 서재가 유독 마음에 오래 남았다. 방 한편에 자리 잡은 앉은뱅이책상과 그 아래 쌓아둔 책 몇 권이 전부인 이 서재는 이미 수천 권의 책을 품고 있는 듯했다.
《월든》, 《무소유》, 《작은 것이 아름답다》와 같은 책들 옆에 두고서도,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물건들을 수북이 쌓아놓고
여전히 욕심을 부리는 내 서재는 부끄러운 나의 소유욕만 드러낼 뿐이다. 읽기만 하지 실천하지 못하는 내 삶을 반영한다. 언젠가, 기약 없는 날을 위해 버리지도 나눠주지도 않고 이동할 때마다 이고 지고 다닌 수많은 책과 물건들. 이삿짐을 꾸릴 때마다 '이런 것도 있었구나', '이건 왜 샀지?' 혼잣말을 늘어놓고, 간소하고 소박하게 살자, 수없이 되뇌며 마음을 다잡지만, 그때뿐이다. 언제쯤이면, 어떤 경지에 이르면 나도 저렇게 살 수 있을까?
도공 김형규 씨의 한 평 조금 넘는 오두막집 다음으로 인상 깊었던 집은 지리산을
등지고 자리 잡은 시인 박남준의 오두막집이다. 한 달 생활비 30만 원이면 충분하다는 이 집에는 저금통이 하나 있는데 "질병과 가난으로 인해 고통받는 세계의 아이들과 북한 어린이를 위한 모금함이다."
집의 크기와 마음 씀씀이는 비례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언제부턴가 집이 부의 상징으로, 부의 수단으로 여겨져 사는 지역이 아파트의
이름이 중요하게 여겨졌고 편히 쉬기 위한 공간이 아니라 보여주기 위한 수단으로 변해버렸는데. 이 책에 소개된 집들을 보며 집주인들의 이야기를 읽다 보니,
이 모든 게 욕심에서 비롯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박남준 시인은
"어떤 삶이 바람직한가?" 란 질문에 "돈을 쓰지 않는 삶이 바람직하다. 돈을 적게 쓰면 돈을 적게 벌어도 된다.
돈을 적게 벌면 시간이 남는다. 남는 시간에 인생을 즐겨야 한다."고 답했고. "어떻게 인생을 즐긴단 말인가?" 란
질문엔 "나무, 꽃, 돌, 물고기, 구름, 석양, 한가롭게 흩어져 가는 연기를 보면서 즐겨야 한다. 이런 것이 다 나를 즐겁게 해준다.
쾌락의 근원인 셈이다."이라고 했다. 책을 읽고 나니, 집은 부와 신분을 가늠하는 척도가 아니라 그곳에 사는 사람의 '삶의 방식'을 보여주는
지표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