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기욤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 1880-1918)를 미술평론가로, 인간의 상상에 자유를 부여해야 한다는 ‘초현실주의'라는 말을 만든 사람으로 먼저 알았다. 그의 가장 큰 업적으로 꼽히는 ‘칼리그람(calligramme)’을 본 건 그 후다. 아폴리네르는 당대 예술가들, 특히 입체파 화가들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며 이들 예술을 변호하는 글을 쓰면서 이름을 알렸는데, 실제 마르크 샤갈, 앙드레 드랭, 모리스 드 블라맹크, 파블로 피카소 같은 화가들뿐만 아니라 에릭 사티와 장 콕토, 막스 자코브 같은 음악가와 작가들과도 친했다고 전해진다. 시쳇말로 그는 황금인맥을 자랑하는 인맥 부자였다. 이 뿐만 아니라 그는 화가 마리 로랑생의 연인이기도 했다. 아폴리네르의 시를 처음 접한 것도 그가 마리 로랑생을 위해 쓴 시 <미라보 다리>와 <선물>을 통해서였다.
그의 시집은 《알코올》(열린 책들)을 통해 처음 읽었는데, 잘 읽히지 않았다. 시집을 번역한 불문학자 황현산 교수의 해설과 주석을 건너뛰고 읽다가, 다시 해설을 찾아가며 읽어야 했다. 그만큼 이 시집은 내게 너무 난해했다. 《알코올》에 실린 50여 편 중, 절반도 이해 못 했다. 그리스 신화 속 인물과 지명이 종종 등장하는데 배경지식이 없어서 사전 찾아가며 봤다. 그래도 이해되지 않는 구절이 많아 이렇게 어려운 시를 왜 읽고 있나 싶고 그냥 시집을 덮어버릴까 싶었지만, “울면서 두드리는 이 문을 열어 주오// 인생은 에우리포스만큼 잘도 변화는 것// 그대는 바라보았지 외로운 여객선과 함께/ 미래의 열기를 향해 내려가는 구름장을/ 그리고 이 모든 아쉬움 이 모든 회환을/ 그대 기억하는가"로 시작하는 <나그네> 같은 시나, "사랑과 멸시 사이에/ 우울이 잠든// 우리 그림자도 거기 들어와/ 밤이 되면 사라지리라/ 그림자를 어둡게 하는 태양도/ 함께 사라지리라" 는 <클로틸드>의 구절을 읽다 보면 또 계속 읽게 된다. 난 <죽은자들의 집>, <행렬>, <집시여인>, <약혼시절>이 가장 좋았다. 어차피 시를 다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아서, 주석과 해설은 읽다 말았다. 대신, 르네 마그리트의 다른 그림을 표지로 썼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단 쓸데없는 생각을 했다. 예를 들면, <The Mysteries of the Horizon>이나 <A freind of order> 같은. 아폴리네르의 칼리그람도 실렸으면 하는 아쉬움도 같이. 너무 늦었어요산 여자가 대답했다단념하세요 그 금지된 사랑을 단념하세요저는 결혼한 몸이지요이 반지가 반짝이는 걸 보세요손이 떨리네요눈물이 나네요 죽고 싶어요(…)이윽고 나만 혼자 이 죽은자들과 함께 남았다묘지를 향해그들은 곧장 걸어갔다아케이드 아래단정한 차림에움직임도 없이창유리 뒤에서 무덤을 기다리며누워 있는그들을 내가 만났던그 자리로무슨 일이 벌어졌는지죽은자들은 생각지도 않지만산자들은 그 추억을 간직했다그것은 예기치도 않았던 행복이고그리도 확실해서그들은 혹시라도 그 행복을 잃어버릴까 봐 염려하지 않았다그들은 그렇게도 고결하게 살았기에전날까지도죽은자들을 자기와 동등한 것으로어쩌면 자기보다 못한 어떤 것으로도 여기던 사람들이그들의 힘을 그들의 풍요를 그들의 천재를이제는 찬양했다죽은 남자나 죽은 여자를 사랑했던 것만큼이나우리를 드높이는 것이 어디 있겠는가그들은 이제 그렇게도 순수해져기억의 빙하 속에서추억과 하나로 녹아들기에 이른다삶에 강건해져이제 더는 다른 누구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죽은 자들의 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