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부르는 숲 - 미국 애팔래치아 산길 2,100마일에서 만난 우정과 대자연, 최신개정판
빌 브라이슨 지음, 홍은택 옮김 / 동아일보사 / 200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친구를 얻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내 첫 여행은 어릴 적 가족과 함께였다. 정확히는 부모님이 친구들이나 친척들을 만나는 자리에 따라간 거였다. 고등학교 때부터는 가족이 아닌 친구들과 있는 게 더 즐거웠고 내 여행 상대도 가족에서 친구로 바뀌었다. 그러다 점점 졸업과 취직준비로 시간을 비우기도, 맞추기도 어려워졌고 각자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다. 이제는 하나둘씩 결혼해서 누군가의 아내, 남편이 그리고 엄마, 아빠가 되었다. 때때로 안부를 물어오며 놀러 갈 테니 같이 여행 다니자고 하지만 그러지 않으리라는 걸 안다. 그날이 오기까지는 아주 오래 걸릴 것이다. 우정이 얕아서가 아니라 주어진 삶을 살아내기에 바쁘고 고단해서라는 걸 알기에 내 버킷리스트에 '친구와 함께 배낭여행 하기'는 여전히 미래진행형이다.  


그래서 유독 《나를 부르는 숲》(동아일보사, 2008)을 아끼고 좋아한다. 이 책은 빌 브라이슨의 오랜 고향 친구지만, 25년 동안 몇 번 마주친 게 전부였던 '이름만 친구로 남아 있을 뿐'인 스티븐 카츠와 함께 애팔레치아 트레일을 여행하는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20년간 해외에서 생활하다가 미국으로 돌아온 그는 조국과 친해지고자 대장정을 결심한다. 놀라운 속도로 사라지는 나무들이 더 사라지기 전에, 숲이 초원으로 바뀌기 전에 말이다. "애팔래치아 산맥의 독특한 아름다움을 경험하려면 지금이 적기다." 


하지만 숲 속에서 혼자 여행하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어떻게 될지는 모르는 일이다. 갑자기 맹장이 터질 수도, 곰의 공격을 받을 수도 있고 독사에 물릴 수도 있으며 눈보라나 안개 속에서 길을 잃거나 척추가 부러지거나 미끈미끈한 돌다리를 건너다 미끄러져 뇌진탕을 일으킬 수도 있으니까. "10센티미터의 얕은 물에 코를 박고 죽을 수도 있는 게 사람의 일이다. 어떻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그래서 작가는 제발 트레일의 일부분이라도 같이 갈 수 없겠느냐고 사장하는 문구를 넣어 수없이 많은 카드를 지인에게 보냈다. 그리고 1996년 3월 9일, 빌 브라이슨은 친구 카츠와 함께 3천 520킬로미터 애팔래치아 트레일 종주를 위해 길을 나선다. 


각자의 삶을 살다보니 어느새 마흔이 넘었고, 평소 운동으로 체력을 다진 것도 하이킹을 떠나 본 적도 없지만 함께 여행을 떠난다. 고된 여정에 짜증을 부리고 다투기도 하지만, 자연속에서 다져가는 이들의 우정에 괜히 내 가슴이 벅차 올랐다. 특히, 카츠가 다시 술에 입을 대기 시작한 걸 알고 싸운 뒤 화해하는 장면은 아…. 


"그는 잠시 앉아 있다가 스니커즈를 꺼내 반으로 쪼갠 뒤 절반을 내게 주었다. 내게도 스니커즈가 있고 그가 그걸 알고 있는데 그렇게 한다는 건 이상한 일이었다. (...) "지난번에는 미안했어." 카츠가 말했다. "나도 그래."" (p. 390)


그럴 때가 있다. 어떻게 사과를 해야 할지 알 수 없을 때 말이다. 왜 짜증을 냈는지, 하지 않아도 될 말로 상처를 줬는지 후회하면서도 '미안하다'는 말을 입 밖으로 내기가 어렵다. 그래도 친구이기에 서로에 대한 애정과 이해로 왜 그랬냐고 다그치지 않고, 탓하지 않으며 상대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준다. 


내가 버지니아를 떠나 디모인으로 돌아가 집 짓는 공사판에서 일할 때 동료들은 일이 끝나면 거리를 가로질러 선술집으로 가곤했지그들은 항상 나보고 같이 가자고 했지만나는 이렇게 말했어.” 그는 두 손을 들어 권위 있고 강직한 목소리도 바꾸었다

“ ‘안 돼친구들나 술 끊었어라고그런 뒤 내 작은 아파트로 돌아가 ‘TV디너라는 냉동 식품을 데우고 나면 내가 응당 해야 할 일을 한 것처럼 고결해진 느낌이 들었지그런데 매일 밤마다 그런 일을 되풀이하게 되면뭐 풍요롭고 흥미로운 인생을 살고 있다고 스스로 납득하기 어렵게 되거든만약 인생의 재미를 측정하는 기계가 있다면 TV디너를 먹고 있는데 바늘이 오르가슴 구역으로 훌쩍  올라가지는 않을 거 아냐무슨 말인지 알겠니?” 그가 흘끗 쳐다보며 내가 고개를 끄덕이는 걸 확인했다

그래서 어쨌든어느 날 일이 끝난 뒤 그들이 아마 골백번은 나보고 같이 가자고 했을 때였을 거야생각했지. ‘그래제기랄다른 사람들이 가는 선술집에 내가 가지 못하도록 금하는 법이 있냐.’ 그래서 들어가 다이어트 코카콜라를 마셨지괜찮았어내 말은 그냥 집 말고 밖에 있는 게 좋았다고하지만 긴 하루 끝에 마시는 맥주가 얼마나 좋은지 알고 있잖아그런데 드웨인이라는 바보가 이봐맥주 한잔이라고마시고 싶을 거 아냐한 병 마신다고 해서 해로울 게 없잖아. 3년 동안 안 마셨는데 이제 통제할 수 있을 거야라며 끊임없이 재촉했어.” (…) 

하지만 나는 술을 좋아하거든어쩔 수가 없어내 말은브라이슨나는 그걸 사랑해그 맛을 사랑하고 2병을 마셨을 때 취하는 기분을 사랑하고냄새와 선술집의 분위기를 사랑해나는 음담패설과 주변 당구대에서 공이 부딪히는 소리밤에 술집의 어둠침침하면서 푸른빛 도는 분위기를 그리워했어.” (pp. 391-392)


학창시절 우린 쌍둥이처럼 닮았다며, 서로 좋아하는 것을 같이 나누며 친해진 친구들이 어느 순간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가끔은 우리가 어떻게 친구가 된 건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 나이가 들면서는 다름에 허전함보다 연민이, 동질감이 느껴졌다. 카츠의 이야기에 가슴이 아려온 것도 이 때문이다. 일을 마치고 캄캄한 집에 불을 켜고 들어가 냉동실에서 TV디너를 꺼낸 뒤, 전자레인지에 넣고 기다리는 카츠의 모습이 그려졌다. 아무도 없는 빈집에서 전자레인지 돌아가는 소리는 더 크게 들렸을 테고 적막함에 습관처럼 티브이를 켰고, 그걸 빛으로 삼아 혼자 저녁을 먹었을 것이다.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고, 취기가 오르며 좋아지는 기분과 술집의 분위기를 사랑한다는 카츠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이 장면을 가장 좋아하는데 빌 브라이슨의 입담과 글솜씨가 빛나는 부분이기도 하고 작가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키드득 웃다가도 가슴이 아파 잠시 멍해지고 그러다 다시 킥킥 거리게 된다.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된 줄 아니?" 그는 갑자기 목청을 돋우면서 말했다. "지금은, TV디너를 먹을 수 있다면 살인이라도 저지를 기분이야. 정말 살인을 할 수 있다고." (...) "그런 뒤 그는 눈가를 훔치면서 제기랄.”이라고 말하고는 버량 끝으로 오줌을 누러 갔다나는 그가 가는 것을 지켜보았다늙고 지쳐 보였다잠시도대체 우리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지 회의가 들었다 – 우린 더 이상 어린아이들이 아니다." (pp. 393-394) 


여행의 목적은 얼마를 많은 나라를 여행하고 많은 것을 봤느냐가 아니다. 산을 오를 때도 마찬가지다. 종주가 목적이 아니다. 


"나는 전에는 미처 몰랐지만, 세계의 웅장한 규모를 이해하게 되었다. 전에는 있는 줄 몰랐던 인내심과 용기도 발견했다.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아직도 모르고 있는 아메리카를 발견했다. 친구를 얻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왔다."(p.416) 


새로운 세상을 이해하게 됐고 친구를 얻었으며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으면 그걸로 충분하고 난 생각한다. 밴프와 레이스 루이스로 하이킹을 떠날 예정이다. 한국에 있는 친구들에게 이곳의 멋진 자연을 소개해주고 싶어 언제 꼭 같이 가자 말해왔었는데…. 이제 나도 친분을 떠나, 지인들에게 아니면 SNS에 올려볼까 한다. 제발, 나와 같이 가자고 말이다. 캐나다 브리티시 콜롬비아(BC)와 알버타(AB)여행을 생각 계획 중인 분이 있다면 연락 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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