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운 문을 여니까

겨울이 와 있었다.

사방에서는 반가운 눈이 내리고

눈송이 사이의 바람들은

빈 나무를 목숨처럼 감싸 안았다.

우리들의 인연도 그렇게 왔다.(이하 생략)

마종기 시인의 신간 산문집 <아름다움, 그 숨은 숨결>을 읽고 있습니다.

마종기 시인의 산문집으로 몇권째 읽는 셈입니다.

초판 사인본을 수집하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저는 작가들의 사인본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헌책 같은 느낌이 들어서요.

더구나 책이 많이 팔리는 유명작가가 육필로 사인을 하지 않고 인쇄한 사인본은 경멸합니다.

그것은 누가 되었건 독자를 우롱하는 셈이니까요.

그런데 이번에 구입한 마종기 산문집을 펼치니까

시인이 쓴 손글씨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혹 예의 인쇄된 글씨인가 확인하려 한참 들여다보았습니다.

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잊지마,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을.

            2021 년 봄

                       마 종 기

오늘 산문집을 읽다가 위의 마종기 시인의 글씨가 '바람의 말'이라는 시의

마지막 구절인 것을 알았습니다.

길지만 시를 전재해봅니다.

바람의 말

우리가 모두 떠난 뒤

내 영혼이 당신 옆을 스치면

설마라도 봄 나뭇가지 흔드는

바람이라고 생각지는 마.

나 오늘 그대 알았던

땅 그림자 한 모서리에

꽃나무 하나 심어 놓으려니

그 꽃나무 자라서 꽃 피우면

우리가 알아서 얻은 모든 괴로움이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릴 거야.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린다.

참을 수 없게 아득하고 헛된 일이지만

어쩌면 세상의 모든 일을

지척의 자로만 재고 살 건가.

가끔 바람 부는 쪽으로 귀 기울이면

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잊지 마.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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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03 15: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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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10 04: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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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05 15:3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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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06 17:3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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