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우리 집에 처음 찾아온 사람들은 종종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사온 지 얼마 안되셨나 봐요?”라거나 “언제 이사 가세요?”라고 묻곤 했다. 정리정돈을 할래야 할 수 없을 만큼 어질러진 책들 때문이었다. 마루건 안방이건 부엌이건 우리 형제들이 쓰던 작은 방이건, 창문과 문 자리만 아니면 책장이 들어가 있었다. 책들은 책장 속에 무질서하게, 더러는 세로로 가지런히 꽂혀 있고, 꽂힌 책들 위에 가로로 놓여 있고, 책이 꽂히고 남은 선반의 여백에도 쌓여 있었다. 그것도 모자라 책장들 앞으로도 겹겹이 어린아이의 키만큼씩 탑을 이루고 있었다. 어렸을 때, 나는 책이란 원래 그렇게 무더기로 아무렇게나 놓으면 되는 것인 줄 알았다. 물처럼 많은 것, 어디선가 계속 생겨나서 차츰차츰 빈 공간을 없애며 넘쳐오는 것인 줄 알았다.





 

초등학교 때는 전학을 많이 다녀서, 새로운 학교에 적응하고 친구를 사귈 때까지는 집에서 오후 내내 뒹굴며 시간을 보냈다. 학원도 학습지도 흔치 않던 그때, 시간 역시 물처럼 넘쳐나는 것이었다. 물론 친구들과 고무줄 놀이며 땅 따먹기를 하느라 해지는 줄 모르는 날들이 더 많았지만, 문득 날이 어두워져 더 이상 책이 읽어지지 않는 걸 깨닫고 불을 켜던 저녁도 꽤 되었다.

부모님이 100권씩, 50권씩 전집으로 들여주셨던―형편이 그리 풍족하지 않았는데, 책값은 아끼지 않으셨다―딱따구리 그레이트 북스, 계몽사, 계림사 문고, 이원수, 마해송, 권정생의 창작동화들…. 시치미를 떼듯 얌전히 닫혀 있던 책을 펼치면, 까만 활자들 너머로 무수한 영상들이 활어처럼 살아나 꿈틀거렸다. 불을 끄고 잠들기 전의 얼마 동안은 낮 동안 읽었던 것들이 더 강렬하게 되살아나 생명을 갖는 시간이었다. 그 공상들이 얼마나 생생한 모험과 설렘으로 가득했던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거의 한 시간쯤은 어두운 천장을 올려다보며 눈을 깜박거리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 시절을 생각하며 지난 달에 동화책 100권을 샀다. 올해 초등학교에 들어간 아들을 위해서였다. 실은 두어 질의 전집을 들여주고 싶었지만, 나름대로 심사 숙고해서 낱권으로 100권을 맞춰 거실 책장의 아래칸을 채워주었다. 아들의 성향은 나와 많이 달라서, 내가 꼭 읽히고 싶었던 창작동화들에는 손도 대지 않고 과학동화들만 오래오래 탐독한다. 그래도, 거실 가운데 앉아 골똘히 상어의 이빨을 들여다보는 아이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 한편이 뿌듯해온다.

다짐한다. 어린 시절 내가 받았던 두 가지 귀한 축복―무한한 시간과 책만은 아이에게 주고 싶다고. 결코 유복한 환경이 아니었음에도 그 무렵이 그토록 풍요롭게 기억되는 것이 바로 그것들 때문임을 알기에, 학원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컴퓨터를, 텔레비전을 줄이고, 아이를 최대한 심심하게 해주고 싶다. (심심함 속에 반짝이며 흐르는 시간의 감각을, 유년이 아니면 언제 다시 흠뻑 경험할 수 있을까.) 같은 이유로 우리 집의 거실은 한번도 말끔해 본 적 없이 늘 이사 직전이나 직후인 듯 어질러져 있지만, 아무려나 개의치 않으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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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14 14: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니르바나 2007-03-14 18:14   좋아요 0 | URL
그런 일이 다 있으셨군요.
작가들 살림살이도 베스트셀러 작가이거나, 대학교수로 겸업하지 않은 경우
고료에만 의지해서 생활하기엔 많이 힘드신 모양이지요.
그리고 사정을 헤아려주신 님의 따뜻한 성정이 또 아름다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