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의 역사와 대학의 역할에 관한 소고
1.
『대학의 몰락』의 저자의 주도적 물음은 무엇인가? 그는 이 책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가? 그의 주도적 물음은 다음과 같다: “대학이란
무엇이고 또 무엇을 하는 곳인가?”(5p) 이 주도적
물음은 단순히 ‘대학’이라는 제도의 역사를 기술(description)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대학’이
어떤 곳이었는지에 대한 기술을 통해, ‘대학’이 어떠한 곳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규범적(normative)인 태도를 암묵적으로 반영하게 한다. 따라서 『대학의
몰락』에서 보여주고 있는 대학의 역사와 역사 속에서의 각 학자들의 대학론은 단순히 골동품적 역사서술의 역할이 아니라 저자가 이상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대학의 존립 근거와 목적에 대한 논의를 (표면적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강화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시 물어야 할 것이다. 저자가 보여주는 대학의 역사를 통해, 저자는 이상적인
대학의 존립 근거와 목적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는가? 이
물음에 답하기에 앞서 저자가 제시하는 대학의 역사를 간략하게 정리해보고 저자의 규범적 태도가 반영된 대학론을 볼 것이다. 이는 저자가 보여주고 있는 다양한 학자의 대학론을 정리하고 저자의 학문론을 살펴봄으로서 간접적으로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위의 물음에 대한 견해를 정리해볼 것이다.
2.
저자에 따르면 대학은 서구에서 시작되었다. 그 기원은 11세기 혹은 12세기 즈음으로 추측해볼 수 있다. “University라는 용어는 ‘조합’이라는 뜻으로 기초 학문을
배우고 가르치는 사람들의 연합”을 의미했었다. “이렇게 시작한 대학은 곧 제도와 학문의 내용에서 체계를
갖추고 학생을 선별하여 입학시키고 통일된 학위를 수여하면서 학문의 전당으로 자리매김을 하게 된다.”(65p)
현재 대학의 제도적·학문적 뿌리는 중세 대학에 있다. 이것은 단순히 University라는 용어의 기원뿐만 아니라, ‘진리’나 ‘지식’등의
라틴어를 학교의 이념으로 삼거나 학교의 건물을 중세 양식으로 짓거나 졸업식 때 가운을 입는 것에서도 그 영향을 찾아볼 수 있다. 더불어 학위의 이름, 학위를 수여하는 제도, 강의 방식 모두 중세 대학의 유산이라고도 할 수 있다. 중세의 대학은
신학적인 근거를 보다 충실히 설명하기 위해서 지식을 배우고 생산하였다. 중세의 대학은 조합에서 출발하였지만
카톨릭 교권의 후원 아래에서 유지되고 성장하였다. 대학의 자율과 자유라는 개념 역시 교권의 후원 아래에서
발전할 수 있었다. 대학의 세세한 행정상의 업무들을 교황의 대리인이 처리할 수 없었으므로 교수들에게
자치적으로 학교를 운영할 권한을 주었고 학생들도 세속의 권력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있는 특권을 주었다. 그런
점에서 대학은 세속 왕권의 간섭으로부터는 벗어날 수 있었지만 교황으로부터의 독립은 얻은 것은 아니었기에 진정한 의미의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지식의
전수와 생산이 이루어진 곳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교황이 대학을 세속 권력의 간섭으로부터 보호하고자
했던 이유는 대학이 교회의 신학과 세계관을 지키고 전수하는 곳이었고, 또 다른 차원의 교회였기 때문이다.”(77p) 이는 신학을 중심으로 다른 학문들의 질서를 정립할 수
있고 믿음과 배움이 신학적 세계관 안에서 함께 한다는 신념이 담겨 있기에 가능하다고도 볼 수 있다. 신학은
모든 학문들 중 가장 높은 자리에서 각 학문들 간의 위계질서를 정하였고 각 학문들의 한계를 지적할 수 있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중세 대학의 가장 큰 유산은 학문의 자유나 대학의 자율이란 개념이 아니라,
합리적 토론과 논리적 사고를 학문의 자세로 만들었다는 데에 있다.”(80p) 중세 대학은 교권의 지배 아래 있었지만 동시에 혁명적 사고가 싹을 틔울 수 있는 공간이기도 했고 종교
개혁 이후에는 이 새로운 형태의 믿음을 두고 치열한 공방을 벌였던 곳이 대학이기도 했다.
종교 개혁과 더불어 중세와는 다른 사상적 흐름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학자들은
라틴어가 아닌 각 지역의 고유어로 글을 쓰기 시작했고 신학을 대학의 중심이 아닌 철학을 대학의 중심으로 놓자는 새로운 대학론이 등장했다. 이러한 새로운 대학의 전통, 즉 근대 대학은 17세기 자연과학의 비약적 발전과 더불어 “대학을 과학적 탐구와 연구로 진리를 추구하는 곳”(87p)이라는 곳으로 이해하게 하였다. 근대의 대학은 핵심은 ‘자유’였다. 그것은 신의 자유가 아닌 ‘인간의 자유’였고 이것이 최고의 가치로 등장하며 이러한 사상을 가장 잘 반영하고
있는 것이 칸트의 대학론이라고 할 수 있다.
칸트는 “대학 내에서 철학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였고 더 나아가 대학이 철학을 중심으로 재구성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90p) 이러한 주장은 기존의 신학의 입지를
위협하는 개혁적 주장이었다. 칸트 당대의 ‘철학’이란, 지금의
자연과학까지 포괄하는, 즉 신학, 의학, 법학 이외의 모든 학문을 포괄하는 것이었다. 칸트가 보기에 중세
대학의 핵심영역이었던 신학, 의학, 법학은 모두 응용 가능하고
국가 차원의 실용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러한 영역들이 대학의 핵심이 된다면 자연스럽게 대학에 대한
국가의 통제가 필요하다. 그러나 철학은 국가의 이익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기 때문에 통제의 필요성이 사라진다. “철학은 이성의 법만을 따르기 때문에, 그에 대한 책임을 질뿐이며, 국가 권력의 통제는 필요 없다고 보았다. 그렇다고 철학이 국가와
사회적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철학은 상위학부(신학, 의학, 법학)의 가르침이나
연구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가를 판단하고 비판하는 기능을 통해 대학을 진리의 길로 인도할 수 있다. 철학은
이성의 관심을 지키는 학문이기 때문에 자유를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며, 그 자유가 보장될 때 국가까지도
이성이 지배하는 곳으로 이끌 수 있다고 확신했다.”(93p) 국가의
통제로부터 자유로운 철학이 대학의 중심이 된다면, 대학은 학문의 자유와 자율이 보장될 수 있는 공간이
된다. 대학은 전문적인 직업인을 양성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대학의 중심에 선 철학이 오직 이성의 지배를
받으므로 대학은 세속 권력에 자유로운 학문 연구가 가능한 곳이 될 수 있다는 점이 강조될 수 있었다. 이러한
학문의 자유, 대학의 자율성에 대한 강조는 오늘날까지도 대학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유용하게 쓰인다.
“칸트가 주장한 철학적 이성의 대학은 1810년 베를린 대학의 설립에
큰 영향을 미쳤다. 대학의 역사에서 베를린 대학의 설립은 매우 중요하다. 연구(research)중심의 근대 대학 모델이 바로 여기서 출발했다.”(97p) 연구 중심 대학이란 지식의 전수라는 고전적 의미의 대학에서
벗어나, 새로운 것을 연구하고 지식을 만들어 내는 것을 사명을 여기는 대학을 말한다. 그러나 베를린 대학의 출발은 일정한 역사적 조건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프러시아는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패배한 이후 사회 각 방면의 개혁을 추구하였는데, 이는 민족의
정체성과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서였다. 따라서 베를린 대학 역시 민족문화를 살리고 학문을 꽃피우는 시대적
요구를 안고 태어났고 이 시대적 요구가 반영된 개념이 바로 과학적 연구였다. 이제 대학은 교회가 아닌
세속 권력으로서 국가와의 관련을 배제하고는 도저히 이해될 수 없는 공간이 된 것이다. “독일 대학은
교권에서는 자유로웠지만, 국가의 권력에서는 자유롭지 못했으며 교수의 임용이나 학사 관리는 철저하게 국가의
통제를 받았다.”(101p)
자본주의가 세계를 주도하는 하나의 이념이 되고 일상적 삶을 규제하는 가장 강력한 세계해석의 방식이자 생산방식으로
자리 잡게 되면서 대학에 대한 이해 역시 달라진다. 이는 미국의 대학들의 모습을 통해 이해해볼 수 있다. “미국의 큰 대학들은 20세기에 들어 미국의 산업자본주의와 국가주의, 그리고 최근엔 기업자본주의의 요구를 공학과 경영학을 통해 잘 받아들였다.”(105p) 미국의 대학들 역시 그 기본적 뿌리에는 신학적 요구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나 근래에 미국 대학이 보여주는 성과는 이러한 신학적 요구 혹은 기독교 정신의 결과가 아니다. 오히려 1)미국의 대학이 유럽의 대학에 비해 국가의 통제를 거의
받지 않았기에, 대학은 실리적이고 실용적인 선택을 할 수 있었다는 점,
2) 기업 운영을 다루는 경영학이 대학에 등장하였다는 점, 3)냉전 체제를 아래에서 체제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국가의 군수 산업 발전을 위해 엄청난 지원을 받았다는 점과 지역학의 등장으로 다양한 기업과 정부의 지원을 받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로 인해 미국의 대형대학들은 각종 평가 지표에서 상위에 랭크되어 있고 현재 대학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이해되고 있다.
이러한 논의를 재구성해보면, 대학을 이해하는 주요한 틀은 크게 3가지로 나뉠 수 있을 것이다. 중세 교회와의 관련 속에서 이해될
수 있는 ‘중세의 신학적 대학’ 그리고 신학을 탈피하고 국가와 관련 속에서 이해될 수 있는 ‘근대의 연구중심 대학’ 마지막으로 자본주의의 요구를
수용한 ‘기업형 대학’이 그 셋이다. 파리 대학이 중세의 신학적 요구를 가장 잘 반영한 대학의 사례이고
베를린 대학이 근대 국가 발전과 민족주의적 요구를 잘 반영한 대학의 사례일 수 있고 하버드를 비롯한 아이비리그의 대학들이 자본주의의 요구를 가장
잘 반영한 기업형 대학의 사례일 수 있겠다.
3.
대학의 역사를 개괄적으로 설명한 저자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대학의 상은 무엇인가?
저자는 다양한 사상가들의 대학론과 자신의 학문론을 설명하면서 간접적으로 자신의 견해를 보이는 것 같다. 칸트의 대학론은 앞서 간략하게 설명했으므로 하이데거, 리오타르, 데리다, 알란 블룸 그리고 매킨타이어의 대학론을 살펴보고 저자의
학문론을 검토해보겠다.
1) 하이데거의 대학론: “하이데거는
대학의 본질이란 것이 있으며, 그것은 독일 국민의 미래와 숙명적인 연관이 있다고 여겼다. 그 본질은 학문을 추구한다는 것이고, 그것의 실현은 고대 희랍 철학이
생각했던 학문의 원형적인 본질 즉 이론과 실천이 분리되지 않은 상태의 학문을 이 시대를 위해 되찾는 것이다.”(162p) 하이데거가 직시한 당대 대학의 문제는 학문의 분열이었다. 각
학문이 자신의 고유한 원리 내에서만 움직이게 됨으로써 그 학문을 배우는 학생들은 각 학문의 전문가가 될 수는 있지만 인간의 삶의 총체적인 모습에
대한 근원적인 관찰과 질문을 할 수 없게 되었다. 하이데거는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사실적이고 기술적인
정보를 모으고 산업적인 유용성을 따지는 대학을 비판하였다. 그래서 학문(이론)과 육체적 노동(실천)이 분리되지 않아야 하므로 대학생들 역시 육체적 노동과 봉사로 독일 민족의 정신적 사명을 완성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보았다. 독일 정신의 개혁은 곧 히틀러의 주장과 접점을 찾을 수 있었고 이러한 개혁에 관한 논의는
이론과 실천이 분리되지 않은 대학으로부터 시작될 수 있다는 믿음에서 그는 나치와 협력하여 프라이부르크 대학 총장에 올랐다. 하이데거는 학문의 분업화를 막기 위해 자신이 직접 학장을 선출하고 학부들의 자율의식을 비판하였으나 총장의 권한강화는
곧 대학의 나치화를 의미했다. 또한 대학의 문호를 노동자 계층에 개방하여 대학이 다수에게 열려있는 기관이
되도록 하였으나 이 역시 나치 정권의 대중 선동 이데올로기의 도구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다.
하이데거의 핵심과제는 학문의 본질을 추구하여 학문과 교육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희랍의 이론과 실천이 분리되지
않는 대학을 만드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학문의 분열을 통합할 수 있는 대학을 만들고자 했고 이론과
실천이 분리되지 않는 배움의 장소를 만들고자 했다. 그러나 이것이 독일 정신의 개혁이라는 목표와 연결되면서
나치와의 관련을 맺을 수밖에 없었고 그의 대학론 역시 오판에 따른 비극적인 결말을 맞을 수밖에 없었다.
2)리오타르와 데리다의 대학론: 리오타르는
구체적인 대학론을 정립하려고 했다기 보다는 후기 자본주의 시대에서 대학의 위상에 관한 문제제기를 했다. “그는
세계화의 본질을 지식의 문제로 이해했기 때문에 지식의 조건과 변화에 주목했다. 대학과 관련해서는 이
시대의 지식이 어떻게 생성되고 이용되는가를 파악하는 일이 대학에서 해야 할 학문의 기초작업이란 의미가 담겨있다.
그의 진단은 한 시대의 지식에 대한 보고의 차원을 넘어, 그 시대에 대한 정의를 내렸다. 그가 본 변화된 시대의 대학은 이미 그 사명이 끝난 교육 기관이었다. [중략] 지식의 목적은 소비와 교환이 되었고[중략] 대학의 연구와 산업적 연구의 구분은 없다. 대학의 교육은 지식 경제의
한 축으로 이해될 뿐, 인간이 되기 위한 조건도 아니고, 민주
시민 사회의 구성원들의 권리도 아니다.”(173-174pp.) 리오타르에
따르면 근대의 대학은 계몽이라는 이상을 앞세워 인간 해방이라는 큰 담론 아래 학문적 작업을 해왔다. 그러나
해방을 약속했던 거대 담론의 처참한 결과는 거대 담론에 대한 거부로 나아갔고 해방이 학문적 동기가 되지 못하는 환경 속에서의 대학과 지식의 관계를
살피는 것이 중요해진 것이다. “대학에서 해방이라는 초월적 가치는 철저하게 배제되었고, 체제 내에서 기술적 기능을 담당하는 것만이 대학의 사명이 되어버렸다. 해방은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행위로 대체되었다. 입력과 출력을 위한 최적의 상태를 유지하는게 경쟁에서 이겨, 뛰어남을 자랑할 수 있는 방식이 되었다.”(175p)
리오타르의 대학론은 소위 포스트모던이라고 지칭되는 시대적 조류 속에서 지식, 대학
그리고 학문의 기능에 대한 문제제기이다. 더 이상 해방이 학문과 지식을 생산하는 동기가 되지 못한다. 오직 소비와 유통만이 목적이 되며 이를 위해 대학은 지식을 가장 생산적인 방식으로 산출할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데리다의 경우 칸트 이후 근대 대학에 초점을 맞추며, 대학과 이성의
관계에 주목한다. 칸트의 주장대로 대학이 이성에 의해 움직이고 이성이 대학을 지킨다면, 대학의 존재 이유는 이성 그 자체였다. 그러나 이제 인간의 이성은
편협한 목적만을 위해 달려가는 ‘도구적 이성’만 남게 되었다. 따라서 데리다에게는 “이성이 자본주의
시장과 기술주의의 유용성에 매몰된 대학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가”(178p)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제 이성은 더 이상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철학적 개념이 아니라 목적을 가장 효율적으로 달성할 수 있게 계산적
기능만을 담당하는 수단이 되어버렸다. 그렇다면 대학은 자신이 존재 근거로 삼아온 이성에 관한 믿음을
상실하였으므로 존재할 이유가 없는 것인가? 데리다는 이런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대학의 책임과 본질에
대해 말한다. 그에 따르면 “대학의 책임은 세상과 인간의 미래에 있다.
이것은 분명 끝없고 무한한 책임이지만, 대학이 서구 역사에서 이상으로 삼았던 것이다.”(179p) 데리다의 이런 견해는 “대학이 모든 독단적이고 불의한
것에 대한 비판적인 저항의 공간이 되어야 한다”(같은 쪽)고
주장하도록 나아가게 하며, 대학의 절대적인 자유를 말하게 한다.
데리다의 대학론은 근대 이성에 대한 비판의 맥락 속에서 이성에 대한 비판 역시 대학의 절대적 자유가 보장되었을
때 성취될 수 있다는 주장처럼 읽혀진다. 데리다가 대학의 절대적 자유가 보장되었을 때 대학의 책임과
본질은 회복될 수 있다고 주장했을 때, 그에게는 대학의 책임과 본질의 회복이 인류에 대한 책임과 연결된다는
깊은 신념이 담겨있었다고 이해할 수 있다.
3)알란 블룸의 대학론: 알란
블룸은 미국 대학 교육을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그의 비판의 표적이 된 것은 1960년대 학생운동과 연결된 미국 대학의 실태였다. 당시 학생운동이
지향했던 탈권위와 반체제와 같은 정치적 슬로건은 대학 교육에 큰 영향을 미쳤다. 블룸은 그 운동의 결과로, “옳고 그름은 더 이상 대학의 관심이 아니고, 가치의 차이만이 남는
문화적 상대주의가 팽배하게 되었고, 대학은 존재 의식을 상실한 위기 상황을 맞게 되었다고 간주했다.”(185p) 그러나 블룸은 대학이 분명한 사명과 본질을 갖고 있다고
믿었고 이 믿음은 서구 철학의 전통이 자유교양교육이 가능하며 그것을 통해 성취될 수 있다고 보았다. 블룸은
“대학이 고전의 전통을 망각하고 철학 없는 교육만을 강요하면서, 목적 없는 대학이 되어 버렸고 지적이고
도덕적인 권위를 잃었다”고 주장하며 그 결과 대학이 “혼이 없는 학생들을 배출한다”(186p)고 보았다. 블룸은 대학 학부 교육의 내용과 한계를 매우 단순하게 설정하고서 “철학과 신학과 고전문학 그리고 전체의 질서와
관계성을 찾으려 했던 과학의 역사를 가르치면 되는 것으로 보았다.”(187p)
블룸은 대학에서 고전을 읽으며 옛 사람들이 인류의 어려운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냈는지를 탐구하는 것이 좋은 교육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학생들이 고전을 통해 세상을 향한 올바른 질문을 할 수 있고 스스로 생각할 능력을 키우고 의미 있는
삶을 개척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확신을 가졌다.
블룸의 대학론은 자유교양교육의 힘에 대한 믿음에서 기원한다. 그는
고전을 읽는 것을 통해 학생들이 대학에서 익혀야 할 모든 지식과 대학과는 다른 사회에서 올바르게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얻을 수 있다고 믿었다. 따라서 전문적인 직업인 양성소로 전락한 대학, 학생운동의 영향 속에서
상대주의가 팽배해진 대학은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자유교양교육이 실행될 수 있는 대학을 꿈꾸었던 것이다.
4) 매킨타이어의 대학론: 매킨타이어는
자유주의 비판가로 널리 알려져있다. 매킨타이어는 개인의 선택권을 골자로 하는 근대적 윤리관을 비판하면서, 개인의 선택권의 강조가 무엇이 옳은 선택인가에 대한 기준을 상실하게 하였다고 본다. 이는 대학론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매킨타이어는 근대 이전의 대학이
당시의 역사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보유하고 있었던 것은, 무엇이 합리적이고 정당한 것인가에 대한 기준이었다고
말한다. 그 기준은 신학만이 아니라 법학과 수학의 교수들도 공유했던 세계관과 학문론에서 출발한 합의에
따른 것이었다.”(195p) 그러나 이제 누구도 그 ‘기준’이
가능하다는 전망을 갖고 있지 않다. 이러한 기준의 상실은 ‘덕망을 갖춘 인간’을 배출하는 공간으로서
대학의 기능을 완벽하게 상실하게 한다. 연구 중심 대학은 엄청난 양의 연구를 통해 가시적인 성과들을
내지만, 학생을 어떤 자질과 덕망을 지닌 사람으로 형성할 것인가에 대한 고려는 전혀 없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매킨타이어는 그의 뿌리를 형성하고 있는 카톨릭 전통의 대학들의 각성을 촉구한다. 즉, “그는 오늘날 진리를 추구하는 모든 학문이 대학이라는 공동체
안에서 인간과 세상을 향한 공통된 목적의식과 통합성을 지닐 수 있다는 비전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197p) 매킨타이어가 제안하는 해결 방식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덕목의 가치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공동체가 가지는 일정한 규범이 그 공동체 내부의 인간을 길러낸다면, 현대
사회에서는 하나의 단일한 전통만을 강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매킨타이어는 라이벌 대학이라는 개념을
제안한다. “이 개념은 대학들이 각자가 속해 있는 전통과 이념이 담고 있는 최고의 가치와 비전으로 대학의
커리큘럼을 재구성하고, 그 노력으로 합리적 정당화의 기준을 도출해내어 라이벌 의식을 갖고 논의하고 대화하자는
것이다.”(200p)
매킨타이어는 자유주의 사상 비판의 맥락에서 대학론을 제시한다. 그의
대학론은 공동체의 규범이 한 인간을 길러내기 때문에, 공동체가 지향하는 덕목들이 있어야 하며 그 덕목에
관한 정당하고 타당한 논의과정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각 대학은 자신이 추구하는 이념에 걸맞는
커리큘럼을 제공하고 선의의 경쟁을 벌이면서, 어떤 덕목을 갖춘 학생을 길러낼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의 학문론은 레비나스와 함석헌에 근거한 것으로 보인다. 그 골자는
인간에 대한 통합적 이해의 가능성을 추구하는 것이다. 함석헌의 경우 현실의 대학에서 학문이 세분화 되어감에
따라 한 분야의 전문가는 만들 수 있지만 다양함을 아우르는 지혜를 갖춘 인간을 만들 수는 없다고 본다. 레비나스의
경우 “학문과 배움이란 제도화된 교육 과정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묻고 배우는 것을 말한다. 타인을 향한 열림으로 내 자신의 도리를 묻는 도덕적 삶이 학문적 삶”이다. “배움이란
객관적이고 규격화된 지식을 추구하기보다, 끝나지 않는 대화를 통해 진리에 안주하지 않고 염치없음을 두려워하는
삶을 사는 것, 바로 그것이다. 배움의 삶은 곧 윤리적 삶, 혹은 가장 인간적인 삶의 모습과 같은 것이라 하겠다.”(223p)
함석헌과 레비나스에 근거한 저자의 학문론은 곧 인간에 관한 통합적 이해와 이를 통한 윤리적 삶의 지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학문이 현실의 대학에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 그의 근본 문제의식이다. 현실 속에 존재하는 기업형 대학에서 학생은 전문 직업인으로 길러지거나 한 분야의 전문가이지만 다른 분야에는
문외한인 사람이 된다. 여기서 삶의 가치나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질문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저자가 그리는 이상적인 대학의 상은 곧 현실에 존재하진 않지만, 현인들이
끊임없이 물어왔던, 인간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사는 것이 그의 본질을 가장 잘 구현하는 것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는 대학이다. 이러한 배움의 공간에서 학생들은 질문을 던지고 답을 구함으로써 사회에서 보다 성숙한
삶을 살아갈 수 있고 이러한 구성원들이 살아가는 사회 역시 보다 성숙한 사회가 될 것이다.
4.
저자가 『대학의 몰락』에서 말하는 ‘대학의 몰락’이란 곧 ‘인간의 몰락’이자 ‘올바른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의
‘종식’이다. 이제 대학에서 그런 질문은 던져지지 않는다. 그러나
문제는 과연 대학이 그러한 질문을 떠맡아야할 근거가 과연 존재하는가? 라는 것이다. 대학은 왜 그러한 질문을 던져야 하는가? 삶과 배움이 일치했던 과거의
전통이 그러했기 때문에 그러한가? 저자도 인정했듯이, 대학은
현실의 역사적 과정에 지대한 영향을 받는다. 교황과의 결탁, 국가와의
결탁, 자본주의 및 기업과의 결탁이 곧 대학의 역사였다. 그렇다면
대학이 현실과의 비판적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은 하나의 ‘이념형’으로서 대학을 설명하는 것이지, 역사
속에서 대학은 단 한 번도 현실과 거리를 둔 적이 없었다고도 할 수 있겠다. 오히려 대학은 사회와의
밀접한 관계 속에서 사회의 제반조건에 지대한 영향을 받으며 나름의 위치를 차지하려고 애썼던 것이다. 그
결과가 오늘 날의 기업형 대학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에서 현실의 영향을 가장
적게 받기 위해서는 가장 많은 자본을 가지고 있을 때가 아닌가? 그렇다면 현실과 비판적 거리를 두기
위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스스로 CEO임을 주장하는 총장을 선출하는 수단을 선택하는 것은 지극히 타당한
선택이 아닐까? 더불어 철학과 신학을 통해 인간에 대한 통합적 이해,
올바른 삶의 가치를 물을 수 있다는 것은 어떤 근거에서 그러한가? 철학과 신학은 그러한
역할을 맡을 준비와 역량이 있는가? 아니면 생물학적, 물리학적
관점에서의 인간 및 사회에 대한 통합적 설명은 불가능한가?
나는 『대학의 몰락』을 통해 ‘대학이 어떤 곳이었고 현재는 어떤 곳인가’라는 질문에 일정한 답을 얻었다면, ‘대학이 어떤 곳이어야만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유보적인 상태에 머물러 있다. 몇 가지 질문들만을 무책임하게 던져놓았지만, 동학들과의 논의 속에서
유보적인 상태로부터 조금 나아갈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