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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사이코 SE
메리 해론 감독, 윌리엄 데포 외 출연 /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05년 9월
평점 :
품절

영화 아메리칸 싸이코 (American Psycho, Mary Harron, 2000)의 Intro Credit 장면.
1. 스트린에 영화제목이 서브타이틀이 올라오면서 붉은색 액체 방울이 흰 여백 위에 떨어진다. 관객들은 끈적한 방울이 여백에 흡수되지 않고 뭉쳐지는 걸로 판단해 '피'라는 것을 떠올린다.
2. 붉은 원형 이미지가 사라지면서 이번에는 붉은 색 직선이 화면 왼쪽 1/3지점을 가른다. 붉은 방울보다는 색농도가 짙다.
3. 붉은 직선이 곡선으로 변환되면서, 관객들의 머리 속을 떠돌던 '유혈'의 하드코어적 이미지는 차츰 사라져가고. 잔뜩 긴장되었던 어깨를 펴고 호흡을 가다듬을 사이 난데없이 칼이 등장한다.
칼을 힘있게 잡은 손아귀 위로 싸이코 여피족(Young Urban Professionals), 패트릭 베이트만 역을 맡은 크리스찬 베일(Christian Bale)의 이름이 올라간다. 그러나 상징적 영상 이미지에 길들여진 관객들은 칼날의 폭력성에 동요되지 않는다.
4. 아니나 다를까. 칼날이 가르는 대상은 먹음직스러운 고깃덩어리이다. 통통하고 길쭉한 덩어리는 생명의 물방울을 분출하는 곳과 비슷하게 생겼다. - '거세'를 상징하는 프로이트적인 성적 매타포는 이 장면에서 음식으로 대체된다. -
5. 빨간 딸기나 화면에 나타난다. 딸기 왼쪽편으로 이 영화에서 형사역을 맡았던 윌렘 데포(Willem Dafoe)의 이름이 올라온다. (베일은 '칼', 데포는 '딸기'. 감독의 특별한 의도가 담겨 있는 것일까.)
6. 지금까지 보여줬던 모든 이미지들은 예쁘게 데코레이션된 음식을 담은 접시 속의 이야기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7,8,9. 몸 속에 들어가면 다 똑같지만 이왕이면 잘 차려진, 먹음직스러운 음식을 먹는, 음식을 미학의 차원으로 끌어올린다는 의미를 실감하게 하는 장면들이다.
식탐과 성욕은 영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표현의 연결고리를 맺어 왔다. (이 영화에 첫 장면에서 보여주는 아름다운 음식의 이미지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주인공의 병적인 욕망과 무관하지 않다.) 아르마니, 발렌티노 , 올리버 피플스 등 명품을 선호하고 브랜드 네임으로 인간의 가치를 매기는 주인공의 평가 잣대는 모양만으로 음식의 맛을 평가해 버렸던 관객들의 시선과 다름없다.
달콤새콤하게 보이는 딸기가 잘려져 나간 목둘레에 놓여 있지 않고, 하얀 접시 위에 놓여 있어서... 관객들은 다행이었나, 아니면 실망했는가. 하드코어 공포영화도 이처럼 맛있게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장면이다.
촬영을 맡았던 안드레이 세큘라 (Andrzej Sekula)는 펄프 픽션(Pulp Fiction, 1994), 포룸(Four Rooms, 1995), 펄프 픽션(Pulp Fiction, 1994) 등 악동 쿠엔틴 타란티노 (Quentin Tarantino)의 단짝이다. 또 이 영화에는 영화 <금발이 너무해(Legally Blonde)>의 주연이었던 리즈 위더스푼(Reese Witherspoon)이 조연으로 출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