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 검은 그림자의 진실
나혁진 지음 / 몽실북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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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을 다 읽고 바로 떠오르는 감정은 '불쾌감'이다. 소재도 불쾌하고, 반전도 불쾌하고, 뒷이야기도 불쾌하다. 작가는 작심하고 불쾌한 이야기, '한국판 이야미스' 작품을 쓴 것인가. 불쾌한 소재만큼이나 밝혀지는 사건의 진상과 그 진상을 마주하는 나 자신의 착잡한 심정 모두 불쾌하다. <낙원남녀> 같은 달달한 로맨틱 추리극을 쓴 나혁진 작가의 또 다른 모습을 보는 것 같다. <교도섬>, <브라더>의 나혁진 작가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이다. 하드보일드풍 기조에 본격 추리와 액션 스릴러, 심지어 무협물까지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작가의 재기발랄한 작풍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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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검은 그림자의 진실>은 최근에 사회적 이슈가 됐던 n번방 사건 같은, 불법 음란 동영상으로 대표되는 디지털 성범죄를 다루고 있다. 사실 그런 쪽에 평소 별 관심이 없지만 인터넷 세상에 독버섯처럼 존재하는 불법 음란 동영상(야동)이나 첨단 기기를 이용한 불법 도청이나 도촬(몰카) 등의 사회적 폐해야 두말하면 잔소리이다. 인터넷과 개인주의가 발달하고 거기에 자본주의가 덧씌워진 현대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가 아닐까. 작가는 이러한 디지털 성범죄의 어두운 일면을 한 여대생의 일탈을 통해 하드보일드 추리 형식으로 그려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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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딸을 교통사고로 잃은 충격으로 이혼과 실직, 모든 것을 자포자기하고 알콜중독자로 살아가는 전직 형사 이호진은 불법 음란 동영상에 나체로 모습을 드러낸 전직 상사의 딸 백은애의 행방을 추적한다. 전반부가 은애의 행적을 추적한다면, 후반부는 그런 은애에게 해코지를 한 범인을 밝혀내는 이야기이다. 전형적인 독고다이 사립 탐정의 고독한 수사 방식을 펼치는 이호진은 지속적인 잠복과 감시를 통해 조금씩 사건의 중심부에 다가간다. 그리고 갖은 고생 끝에 드러나는 사건의 진상은 제법 충격적이다. 아니 추악하고 불쾌하다고 해야 할까. 강렬한 반전을 노린 작가의 무리수인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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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통해 사이버상에 활개치는 불법 음란 동영상의 실태와 디지털 성범죄의 폐해에 대해 단편적으로나마 알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이 고속 인터넷 포함 첨단 기기와 살아가는 현대 개인 자본주의의 병폐이다. 작가의 바람대로 관련법의 개정, 사람들의 인식 변화 등 재발 방지책이 생기길 기대해본다. 그나저나 이 사건을 통해 가장 상처를 입은 자는 누구일까. 주인공 이호진일까, 아니면 백과장일까. 어쩌면 디지털 성범죄에 알게 모르게 노출되어 있는 누구의 가족이나 이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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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칼로는 죽일 수 없어
모리카와 토모키 지음, 최재호 옮김 / 북플라자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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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책을 펼치자마자 단숨에 다 읽었다. 문장도 쉽고 분량도 300쪽이 채 안 돼 한두 시간이면 금세 읽는다. 가독성과 흡인력도 좋다. 만화스러운 설정과 전개가 좀 유치하긴 하지만...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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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 영화감독인 대학생 사치사와는 이탈리아 배낭여행에서 기념으로 단검을 사온다. 근데 이게 평범한 단검이 아니다. 이 칼에 죽임을 당한 생명체는 이 칼의 원래 주인이 죽은 시각, 즉, 정확히 4시 32분 6초에 아무런 흔적없이 멀쩡하게 되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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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신비한 단검의 효능을 알게 된 주인공은 자신의 영화 작품에 적극 반영해서 동물이나 사람을 실제 죽이고는 바로 되살리는, 리얼리티가 100% 살아있는 영화를 찍어서 (물론 주변에는 살해 장면이 고도의 CG 처리라고 둘러대지만...) 커다란 호응을 이끌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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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를 수상히 여긴 여형사 코소네는 집요하게 주인공의 주변과 배경을 추적하다가 마침내 단검의 비밀을 알게 되고... 이때부터 주인공과 여형사 간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시작된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주인공의 법적인 죄는 별로 없다. 죽인 사람이 되살아나니...즉, 시체가 없으니 살인범도, 살인미수범도 아니다. 기껏해야 사기죄 또는 공무집행 방해죄 정도? 그래도 정의감에 불타는 여형사는 자신의 아들에게까지 해를 끼친 주인공을 결코 용서할 수 없어 기필코 법의 심판대에 세우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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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죽은 사람이 멀쩡히 되살아나는 이 단검의 효능으로 수많은 일들을 벌일 수 있다. 100층 고층 빌딩에서 추락해도 추락사하기 전에 자신의 목을 찔러 먼저 그 단검에 의해 죽으면 다시 살아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하지만 불순한 행동을 반복해서 벌이면 언젠가는 벌을 받는 법. 마지막 장에 주인공에게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인과응보의 결말이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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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스릴러물이라고 해야 할까. 작가의 문장력이나 스토리텔링 방식 그리고 전체적인 분위기가 기노시타 한타의 <악몽의 엘리베이터>와 흡사하다. 전개와 내용면에서 조금은 유치한 면도 있지만 가볍게 즐기기엔 안성맞춤 작품이다. 그나저나 나에게 이 칼이 있었으면...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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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쿠바산장 살인사건 ㅣ 히가시노 게이고 산장 3부작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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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오빠의 엽서가 도착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문구와 함께...여동생 나오코는 1년 전 하쿠바의 산장에서 '자살로 처리된' 오빠의 죽음에 의문을 품고 대학 친구인 마코토와 함께 하쿠바의 '머더 구스' 산장으로 향한다. 눈 내린 겨울의 산장에는 매년 같은 사람들이 동시에 모인다. 만약 오빠의 죽음이 자살이 아니라면 오빠는 살해당했으며 범인은 이들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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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쿠바산장 살인사건>은 예전에 출간한 <백마산장 살인사건>의 개정판이다. 이 책은 1985년에 데뷔한 작가가 이듬해에 내놓은 두 번째 장편소설이자 성인이 등장하는 최초의 정통 추리소설이다. 정체불명인 한 남자의 눈속에서의 비밀스러운 작업으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주인공 일행이 산장에 도착하면서 본격 추리의 막이 오른다. 두 여성은 조심스럽게 오빠의 1년 전 행적을 조사하고 그 와중에 오빠의 죽음 외에도 재작년에 의문의 실족사고가 있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재작년의 실족사와 작년 오빠의 음독사에 이어 올해 역시 또 하나의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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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개의 객실에 있는 머더 구스 동요를 통한 암호 풀이, 오빠의 죽음에 결정적 열쇠가 되는 밀실 트릭, 3년에 걸쳐 해마다 발생하는 연속 살인, 궁극의 보물 찾기 등 정통 추리소설의 다양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거기에 다양한 인물들의 이해 득실과 복잡한 인간 관계가 얽혀 있어서 사건의 진상이 매순간 요동치는 거듭되는 반전 역시 이 책의 묘미이다. 누구도 범인을 쉽사리 예측할 수 없다. 십여 년 전, 일본 미스터리 입문 초기에 <백마산장 살인사건>을 읽었을 때는 별 감흥이 없었는데 이렇게 산뜻한 개정판으로 읽으니 예상외로(?) 매우 재밌다. 일본 본격 추리물의 출간이 뜸한 요즘, 히가시노 게이고의 초기작을 통해 정통 추리물의 재미를 만끽할 수 있어서 더없이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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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트기 힘든 긴 밤 ㅣ 추리의 왕
쯔진천 지음, 최정숙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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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재밌고 감동적인 책을 이제서야 읽다니... 하마터면 큰일 날뻔했다. 내가 이 책을 처음에 왜 별 관심을 안 두고 놓쳤을까. 아무래도 생소한 중국어권 작가의 사회파 미스터리라서 그런게 아닐까... 지금 읽어서 다행이지 안 그랬다면 땅을 치고 후회할만한 걸작이다. 작가의 또 다른 작품 <무증거 범죄>는 출간 즉시 읽었다. 이유는 '중국어판 용의자 X의 헌신'이라는, 즉, 본격 추리의 요소가 다분했기 때문... 지금 두 권을 비교해 보니, 트릭과 수수께끼 풀이가 병행하는 <무증거 범죄>도 제법 재밌게 읽었지만 아무래도 커다란 울림과 감동을 전해주는 <동트기 힘든 긴 밤>의 임팩트가 더욱 강렬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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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처음부터 흡입력있게 이야기를 시작한다. 정신이 멀쩡한 유명 변호사가 벌건 대낮에 인파가 많은 공공장소에서 허술하게 시체를 유기하려는 엽기적인 행각을 벌인다. 그리고 경찰에서 자백한 진술을 법정에서 뒤집고... 그가 세상에 알리려던 궁극의 목적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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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부패한 절대 권력에 맞서 싸우는 한 감찰관의 10여 년에 걸친 처절하고 외로운 투쟁 과정을 그리고 있다. 오로지 정의의 편에 서서 진실을 세상에 알리고 범죄자에게 법의 심판을 받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투쟁한 의로운 사람... 하지만 유력 기업의 비호 아래 절대 권력의 아성은 흔들림이 없고, 계란으로 바위치는 식의 한 인간의 외로운 투쟁은 좌절과 실망으로 점철된다. 가족과 직장까지 잃고 심지어는 감옥에까지 다녀온 그가 마지막 수단으로 선택한 숭고한 희생정신 앞에서는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그는 과연 10여 년에 걸친 칠흑같이 어두운 긴 밤을 빠져나와 찬란한 여명이 밝아오는 아침을 보았을까...그리고 세 명의 든든한 조력자들...그들의 희생과 도움없이는 주인공의 눈물어린 필생의 과업이 결코 빛을 보지 못했으리라...'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라는 유명한 문구가 생각나는, 사회파 미스터리의 정점을 찍은 소설이 아닌가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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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기 모형 ㅣ S & M (사이카와 & 모에) 시리즈 9
모리 히로시 지음, 박춘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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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에 2년 이상 꽂혀있던 『수기 모형』을 이제서야 꺼내 읽었다. 책을 펼치자마자 바로 사건부터 등장한다. M공대 실험실에서 여성 대학원생이 목이 졸려 살해된다. 비슷한 시각, 얼마 떨어지지 않은 근처 모형 교환회가 열리는 공회당 4층 대기실에서 목이 절단되어 사라진 여성 모델의 사체가 발견된다. 그런데 바로 옆에는 한 남자가 둔기로 뒷머리를 얻어맞고 쓰러져 있다. 이 남자는 M공대 살인사건의 유력 용의자이다. 그리고 두 건은 모두 열쇠의 행방이 묘연한 밀실 상태. 과연 이 남자는 자신에게 불리한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을 극복해낼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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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기 모형』은 '이공계 미스터리의 교과서'로 불리는 『모든 것이 F가 된다』의 사이카와 조교수와 모에 학생이 활약하는 S&M 시리즈 제9탄이다. 이 책은 피규어, 즉 모형을 제작하는 모델러들의 마니아한 세계를 그리고 있다. 그래서 인체 모형을 위시해서 철도, 비행기 등 다양한 사물을 제작하는 그들만의 오타쿠한 세상이 펼쳐진다. 출판사 책소개를 보니 모리 히로시 작가 스스로가 모형 제작이 취미인 모양이다. 시리즈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사건 관련 기본 정보는 미우라 경부, 우카이 형사 등 경찰이 제공하고 나머지 사건의 핵심이 되는 디테일한 부분은 여대생 모에가 동분서주, 좌충우돌하며 사건 관련자들로부터 정보를 수집한다. 그리고는 그 정보들을 사이카와 조교수 앞에서 늘어놓으면 사이카와는 언제나 그렇듯 무심하고 시크한 태도로 담담히 경청한다. 그에게 유이한(!) 관심사는 진한 커피 한 잔과 한 모금의 맛있는 담배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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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에 양이 수집한 정보로부터 사이카와의 정곡을 찌르는 촌철살인 격의 마무리가 시리즈물의 핵심인데 이 책에서는 자연스럽게 범인의 정체가 드러난다. 그 과정에서 위기에 처한 모에 양을 구출하기 위한 범생이 스타일의 사이카와 조교수의 의도치않는 액션신도 등장하고. 역시 모에 양을 아끼고 위하는 구세주는 사이카와뿐이다. 둘 간의 미묘한 러브 라인은 이번 작품에서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독자의 애간장을 녹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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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이 마무리된 후 사이카와가 풀어놓는 사건의 진상에 대한 설명은 그 일련의 추리 과정에서 결론을 도출하는 중간 부분이 생략된 곳이 많아 조금은 불만이다. 기대를 잔뜩 주었던 밀실이라는 의미도 사건의 전말을 알고 보면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고. 다양한 사물의 모형 제작에 온통 빠져있는 피규어 오타쿠의 세계를 소재로 한 점은 흥미롭지만, 매력적인 사건에 비해 트릭의 기발함이나 전체적인 스토리의 재미가 기존 전작들에 비해 낫다고 말하긴 힘들다. 이공계 미스터리의 재미를 무난히 즐길 수준의 책이지만 580쪽이 넘는 두툼한 분량은 조금 과하지 않았나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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