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 에를렌뒤르 형사
아날두르 인드리다손 지음, 이기원 옮김 / 영림카디널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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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접하는 북유럽의 추리소설. 아이슬란드 범죄소설 작가 아날두르 인드리다손의 에를렌두르 형사반장 시리즈 다섯 번째 이야기이다. 2002년작.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두고 아이슬란드의 수도 레이캬비크에 위치한 대형 호텔의 지하방에서 도어맨이 산타 복장을 한 채 살해되어 발견된다. 에를렌두르 형사반장을 중심으로 한 세 명의 형사는 범인 추적에 나선다.

이 책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접하는 영미권의 정통 추리소설이나 요즘 유행하는 일본 추리물과는 많이 다르다. 기발한 트릭이나 놀라운 반전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탐정과 범인 간의 치열한 두뇌 싸움도 없다. 자극적이지 않고 담담하다고나 할까. 오히려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반장과 피해자인 도어맨의 개인사에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아내와 오래전에 이혼하고 아들은 소식이 끊긴지 오래며 약물 중독의 딸은 걸핏하면 찾아와 '내 인생을 돌려내라.'라며 시비를 건다. 집에 가면 반겨주는 이 하나 없는, 오십 줄에 들어선 고독한 형사 반장. 그런 내면의 고독과 쓸쓸함을 따라간다. 오죽하면 부하 직원들이 크리스마스에 같이 보내자며 수도 없이 요청할까...

마찬가지로 피해자 도어맨의 기구하고도 파란만장한 인생사를 들려준다. 어릴 적 천상의 목소리를 지녀 소년 성가대원으로 '신이 내린 목소리'란 찬사를 들으며 음반을 두 장이나 냈던 아이돌 스타. 그런 촉망받는 소년의 한순간의 몰락과 좌절, 이어지는 방황과 가출... 결국 호텔의 일개 도어맨으로 전락해 비극적인 삶을 마치는 기구한 운명까지...

작가는 형사 반장과 피해자 주변을 중심으로 담담히 수사 상황을 나열해 나간다. 현대 사회에서 문제시되는 가정 폭력, 아동 학대 등이 소설의 근간을 이루고 마약, 절도, 강간, 살인 등 사회적 범죄가 동기를 형성한다. 고춧가루가 들어간 빨간색 국물의 얼큰한 순두부찌개가 아닌 투명한 색의 맑은 순두부찌개를 소금 쳐서 먹는 맛이랄까....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묘한 끌림과 여운이 있는 소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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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박물관 붉은 박물관 시리즈 1
오야마 세이이치로 지음, 한수진 옮김 / 리드비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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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바이를 깨드립니다><왓슨력>을 읽고 작가의 내공이 심상치 않다고 느꼈는데 이번 <붉은 박물관>을 읽으니 그런 생각이 더욱 견고해졌다. 일단 작가의 머리가 비상하다. 이 정도로 이야기를 구상, 직조해서 반전을 끌어내는 게 쉽지만은 않을 텐데.... 단순히 범인의 정체나 트릭 한두 개가 아닌 이야기의 전체 구조를 뒤집는 방식으로 반전을 끌어내는 기교가 놀라울 따름이다.

미제 사건이던 기결 사건이던 이미 과거에 종결된 사건을 당시의 증거 자료와 수사 일지만 보고 의혹을 찾아내서 재수사를 통해 (부하 사토시 경사의 탐문 수사 등 보강 작업이 병행) 사건의 숨겨진 진상을 밝혀내는 '붉은 박물관' 여성 관장의 날카로운 혜안과 신들린 추리가 감탄을 자아낸다.

수록된 다섯 개의 단편 중에서 몸값을 지불하는 과정에서의 예상치 못한 트릭이 빛을 발하는 <빵의 몸값>이 깔끔하니 제일 재미있었다. 일가족 독살 사건의 실체를 파헤치는 <불길>도 재밌었고, 두 가지 정황 증거만으로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는 <복수 일기>와 교환 살인을 소재로 한 <죽음이 공범자를 갈라놓을 때까지>도 괜찮았다. 하지만 너무 완벽한 논리의 장황한 설명에 치중하다 보면 재미라는 추리소설 본연의 맛이 퇴색되기도 한다. 그 예가 바로 마지막 단편 <죽음에 이르는 질문>이다. 어찌 됐건 수십 년 전 사건의 숨겨진 진상이 재수사를 통한 관장의 신들린 추리로 새롭게 드러나는 다섯 가지 반전의 묘미를 흥미롭게 감상했다. 조만간 붉은 박물관 두 번째 이야기인 <기억 속의 유괴>도 출시된다고 하니 기대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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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커 - 구약탐정신화 JDC 월드
세이료인 류스이 지음, 이미나 옮김 / 비고(vigo)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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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200개의 밀실에서 1,200명이 살해당한다."라는 전대미문의 살인예고장을 보낸 밀실경과의 한판 대결을 그린 <코즈믹>에 이은 JDC 사가 두 번째 작품. 이번에는 '예술가'라 자칭하는 천재 범죄자와의 대결이다. 간사이 지역 본격 추리작가 모임 연례 행사가 환영성에서 합숙 형태로 열리고, 이 자리에서 한 작가가 '녹스의 10계', '밴 다인의 20칙'에 빗댄 '추리소설 구성요소 30항'(밀실, 암호, 수기, 작중작, 알리바이, 미스디렉션 등)을 발표한다.

그러자 마치 그 법칙을 모두 섭렵하려는 듯 예술가를 자칭하는 범죄자의 무차별적인 연쇄살인사건이 발생하는데...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JDC 명탐정들이 환영성으로 급파되고...1,200쪽이 넘는 압도적인 분량과 스케일, 예술가와 JDC 탐정 간의 불꽃튀는 추리 대결... 과연 예술가라 자칭하는 범인은 누구인가?

간단히 말해서 '기상천외'와 '황당무계' 그 중간 어디쯤에 있는 소설이다. 어찌 보면 무협지 스타일의 약간 겉멋 든 느낌도 들고...거시적으로 넓게 보면 합격이요, 미시적으로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불합격이다. 전체적인 구성, 전개, 플롯, 스토리는 좋다. '모든 미스터리 총결산'이라는 작가의 야심찬 의도, 그를 실행, 추구하는 나름의 독창적인 세계관, 4대 미스터리를 기반으로 한 예측불허의 전개, 불가사의해 보이는 다양한 살인사건들과 등장인물 간의 촘촘한 서사, 논리에 논리를 덧씌우는 JDC 탐정들 간의 열띤 추리 대결, 마지막까지 반전을 거듭하는 '예술가'의 정체...

하지만 단순히 추리소설로서의 완성도를 들여다보면 불합격이다. 일단 수수께끼 풀이의 많은 부분이 (한국 독자가 이해 못 하는) 일본어 언어유희, 애너그램에 의존하고, 독자의 호기심을 증폭시키는 다양한 형태의 밀실 (눈 밀실, 물 밀실 등)은 형성 과정에 비해 밝혀지는 트릭은 유아적 수준이다. 다른 사건과 풀이 역시 대동소이. 무게만 잡고 알맹이는 없다고나 할까. 오죽하면 ** 밀실의 진상은 끝내 탐정이 밝혀내질 못한다. 세상에 수수께끼를 제시하고 미해결로 남겨두는 소설은 처음 봤다. 범인의 의외성을 노린 마지막의 연속된 반전은 솔직히 논리적, 이성적으로 크게 와닿지 않는다. 그냥 적당한 선에서 깔끔히 마무리했으면...

이 책은 4대 미스터리(= 4대 기서, 흑사관 살인사건, 도구라마구라, 허무에의 제물, 상자 속의 실락)에 기반을 두고 집필한 소설이다. (나는 흑사관 살인사건, 도구라마구라, 허무에의 제물을 모두 완독했다.) 작가 역시 4대 미스터리를 흠모하고, 그에 버금가거나 능가하는 작품을 내놓고 싶지 않았을까. 4대 미스터리는 내용이 난해해도 (흑사관과 허무에의 경우) 추리소설적 완성도는 뛰어나다. (도구라는 추리소설이 아니라 심리 스릴러물이다.) 하지만 이 책은 그에 미치지 못한다. 그렇다고 재미없게 읽었다는 얘기는 아니다. 디테일에서 조금 불만족스러울 뿐, 이십 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기존 본격 추리의 정석을 거부한 작가만의 독창적인 세계관과 대범한 스타일로 본격 추리의 핵심 구성요소 대부분을 책 한 권에 쏟아부은 열정과 실험 정신은 높이 평가받을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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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모자, 피노키오를 줍고 시체를 만났습니다 옛날이야기 × 본격 미스터리 트릭
아오야기 아이토 지음, 이연승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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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의 유명 동화를 다양한 트릭을 이용해 본격 미스터리로 재탄생한 아오야기 아이토 작가의 옛날이야기 x 본격 미스터리 제4탄. 서양 동화를 베이스로 한 빨간 모자 시리즈로는 두 번째 이야기. 이번에는 분리된 나무 인형 피노키오의 몸뚱어리 되찾기 대작전이다. 빨간 모자는 여행 중에 피노키오의 몸 일부분을 줍고 그 나머지 조각을 찾아 길을 떠나지만 다양한 사건에 휘말리고 언제나 그렇듯이 뛰어난 추리로 사건을 해결하며 결국 피노키오의 몸 전체를 되찾는다는 내용이다.

첫 단편 <목격자는 목각 인형>은 서커스장내에서 목격자에 의해 살인사건 용의자로 몰린 빨간 모자가 교묘한 트릭을 파헤치고 진범을 찾아내 궁지에서 벗어난다는 줄거리이다. 정교한 물리 트릭이 등장하는 본격 미스터리 단편으로 재밌게 읽었다.

백설 공주와 일곱 난쟁이가 등장하는 <여자들의 독사과>는 정교한 트릭보다는 스토리의 반전에 무게를 둔 단편이다. 독자의 허를 찌르듯, 한순간에 가해자와 피해자, 선인과 악인이 뒤바뀌는 반전의 묘미가 있다.

동화 하멜른의 피리부는 사나이를 베이스로 한 세 번째 단편 <하멜른의 마지막 심판>은 이야기고 깊고 다채로워 읽는 재미가 있다. 오랜 수감자의 감옥 탈출과 살인사건을 발단으로 드러나는 수십 년에 걸친 비밀스러운 음모와 가공할 복수 계획 등 짧은 단편 속에 풍부하고 다양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탐욕스러운 아기 돼지 삼 형제가 등장하는 마지막 단편 <사이좋은 아기 돼지의 세 가지 밀실>에서는 세 건의 밀실 살인사건 발생한다. 빨간 모자 탐정은 밀실 트릭을 파헤쳐 아기 돼지 삼 형제를 응징하고 마을에 평화를 선사함과 동시에 피노키오의 몸을 되찾는다.

첫 번째와 마지막 단편은 다양한 트릭과 본격 미스터리로서의 완성도가 좋아 만족스럽고, 세 번째 단편은 이야기가 깊고 풍부해서 재밌게 읽었다. 두 번째 백설 공주 단편이 상대적으로 조금은 밋밋한 느낌. 하지만 전체적으로 만족스럽다.

몸이 분리돼도 생각과 말, 행동을 하는 나무 인형, 마법을 부리는 마녀, 의인화되어 등장하는 다양한 동물들 등 특수 설정이 많이 사용되는데, 그 변신과 재주의 폭이 독자가 추리에 공정하게 동참할 수 있게끔 예측 가능한 범위 내에서의 적당한 선을 잘 유지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5탄을 기대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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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것이 오지 않기를
아시자와 요 지음, 김은모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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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의 여백>, <용서는 바라지 않습니다> 등으로 국내 독자에게 친숙한 아시자와 요의 두 번째 장편 마스터리. 여성 작가가 여성 주인공을 내세워 여성의 삶과 행복을 철저하게 여성의 시각과 관점으로 써 내려간 심리 서스펜스물이다. 자칫 뻔한 전개가 될 수 있는 내용을 놀라운 반전으로 커버하는 것이 이 책의 매력이다.

두 여성 주인공이 있다. 사에와 나쓰코. 공의존 관계(특정 대상과 과잉된 의존 관계에 빠져 서로 얽매이는 관계 중독 상태, 236p.)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누구보다도 서로를 믿고 의지하는 사이... 하지만 사에의 남편이 실종, 살해된 채 발견되면서 둘 사이의 관계는 걷잡을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사실 이 책을 스포 없이 리뷰하기가 힘들다. 그런 면에서 책 뒤표지에 스포일러를 최대한 배제하고 독자의 흥미를 유발하는 출판사의 간략 줄거리 소개 문구가 참으로 애쓴 흔적이 보인다. 이 책에는 놀라운 반전이 숨어 있다. 작가는 유려한 필력으로 그런 반전을 이끌어 낸다. 그래서 독자는 놀라움과 동시에 책 앞으로 돌아와 다시 한번 재독하게 된다. 그러면 주인공들의 상황 전개에 따른 대사와 행동, 심리 등이 완전히 다르게 읽힌다.

좋게 표현하면 작가의 고도의 서술 테크닉이요, 나쁘게 말하면 얄팍한 속임수랄까... 물론 나는 전자이지만... 이 테크닉은 작가의 단편집 <용서는 바라지 않습니다>에 수록된 <언니처럼>이라는 단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띠지에 보면 '속아넘어가는 쾌감'이라고 했는데 나 역시 어리둥절한 상태로 속아넘어간 것 같다. 두 여성의 끈끈한 삶의 관계를 독자를 현혹시키는 대담한 테크닉으로 서술해가는 작가의 노련한 필력이 빛을 발한 작품이 아닌가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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