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 미스터리 2021.봄호 - 69호
계간 미스터리 편집부 지음 / 나비클럽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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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접하는 <계간 미스터리> 그것도 따끈따끈한 <2021 봄호>이다. 그래서인지 출판사도 바뀌고, 표지 디자인도 확 달라졌다. 속을 들여다보니 레이아웃도 정갈하니 깔끔하고 글자도 시원시원하다.

<추리소설가 20인에게 듣는다>는 기획도 참신하고 내용도 흥미진진했다. 덕분에 추리소설가의 세계를 단편적으로나마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법원 양형조사관으로 재직하는 홍성호 작가가 "자신의 직업이 글 소재에 딱히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는 말이 다소 의외였고, 홍선주 작가의 "독자가 작의를 다르게 이해할 때 씁쓸하다."라는 말에 공감한다.

"한국 추리소설이 외국 추리소설보다 못하다는 선입견을 버리고 독자는 애정 어린 시선으로 봐달라."라는 주문에는 다소간의 반론을 제시한다. 왜냐하면 동일선상에서의 비교는 힘들기 때문이다. 아주 예전에 "왜 방화는 외화보다 재미가 없을까요?"라고 리포터가 물으니, 유명 촬영감독이 "외화는 해외에서 흥행이 검증된 작품을 선별해 수입하는 것이고, 방화는 흥행 여부에 관계없이 극장에 걸리는 것이고... 비교 자체가 불가하다."라고 답했다, 지극히 옳은 논리이고 정확한 지적이다.

우리는 일본과 서양 미스터리를 작가의 인지도 및 흥행 성공과 권위있는 상 수상 여부 등 재미와 완성도에서 검증된 작품을 선별해서 국내에 들여온다. 반면, 한국 미스터리 책은 그런 과정 없이 일단 출간한다. 흥행 여부는 차후의 문제이다. 선별된 외국 작품과 국내 소설을 동일선상에서 비교하는 것은 무리이다.

류삼 작가의 <추리소설가의 하루>는 특별한 내용도 없는데 은근히 빨려 들어간다. 일상 에세이의 담백한 위력인가. 그러면서 마지막에 혹시나 반전을 기대하는 요상한 심리... 누가 미스터리 팬이 아니랄까봐...ㅎㅎ 비슷한 느낌의 에세이 <작가의 방>도 흥미롭게 읽었다. 예술가, 작가, 창업자의 용도로 쓰이는 세 개의 책상들... 나 같으면 두 개는 처분, 하나로 통일하고 남는 공간을 활용하지 않을까 싶다.

마라톤이 올림픽의 꽃이라면, 수록된 단편 소설들은 미스터리 잡지의 꽃이다. 다른 기획 기사들보다 소설이 재밌어야 한다. 읽어보니, 앞의 네 편은 보통, 뒤의 두 편은 괜찮았다. 대부분 작품들이 꼼꼼한 자료 조사나 전문적 지식 없이 머릿속 구상만으로 가볍게 쓸 수 있는, 소설로서의 깊이가 부족한 느낌이다.

연쇄살묘범을 추적하는 소년탐정단의 활약을 그린 <코난을 찾아라>는 경쾌하게 흘러가다 뜬금없는 반전으로 마무리되고, 제법 긴장감 넘치는 스릴러 <푸른 수염의 방>은 결말을 위해서는 중간에 복선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의붓아버지를 살해한 소녀의 진상을 추적하는 <엄마와 딸>은 본격과 사회파 이도 저도 아닌 진부한 느낌이고, 치매 걸린 노모와 자식 간의 관계를 그린 <긴 하루>는 미스터리물로서의 작가의 정확한 의도를 읽지 못하겠다.

역사 추리물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의문의 살인사건을 수사하는 목마장 주인 김만일의 기지와 추리가 빛나는 <목호 마조단>은 재미와 짜임새가 좋다. 특별초청작인 서미애 작가의 <숟가락 두 개>는 살인사건의 진위를 놓고 벌이는 딸과 수양아버지의 공방을 통해 가족의 의미를 일깨워주는 잔잔한 여운의 사회파 추리물이다.

여담으로, 앞의 20인 인터뷰를 보니 추리 작가분들이 리뷰에 민감하고 나쁜 평가에 씁쓸한 감정을 느낀다고 했는데 독자도 마찬가지이다. 돈과 시간, 정성을 들여 소설을 읽었는데 건진(= 마음에 드는) 작품이 없다면 그 허탈감과 실망감은 어디서 보상받을 것인가. 생산자(작가)는 좋은 상품(소설)을 시장에 내놓을 의무가 있고, 소비자(독자)는 그중에서 맘에 드는 상품(소설)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

한새마님이 소개한 <고바야시 월드로의 초대장>를 보니 꽤나 많은 작품이 국내에 소개되었다. 그만큼 국내 독자에게 인기가 있다는 증거. 하지만 나에게는 호불호가 존재하는 작가이다. 본격물인 <밀실, 살인>과 단편집 <커다란 숲의~> 그리고 SF 스릴러 <인외 서커스>는 합격점인 반면, 죽이기 시리즈와 <기억 파단자>는 한마디로... 유치했다. 특히 죽이기 시리즈는 고전 동화를 차용한 유아틱한 전개가 내 취향과 체질에 맞지 않는다. 하지만 본격물 <밀실,살인>을 정말 문제작이다. 당시에 리뷰들을 찾아보니 많은 이들이 작가의 회심의 트릭을 눈치 못 챈 듯... 이 자리를 빌려 고인의 명복을 빈다.

디저트 격인 황세연 작가의 <예지몽 살인>은 재밌다. 그런 생각지도 못한 정답이 숨어있다니... 역시 추리작가는 뭐가 달라도 다르다. 짧은 단편이라도 어디에 어떤 트릭이 숨어있는지 모르니 문장 하나하나 초집중해서 읽게 된다. 그게 본격 추리물만의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다.

이 외에, 대한민국 제1호 프로파일러 권일용 박사님과의 인터뷰, 작법의 기초이자 뼈대가 되는 플롯의 구성 방식과 패턴 등을 다양한 예시를 들어 설명하는 기사도 유익하게 읽었다. 보통 미스터리 커뮤니티가 작가는 작가대로, 독자는 독자대로 따로 노는 경향이 있는데 네이버 밴드 '추사사'를 보니 작가와 독자 간의 양방향 소통이 활발히 이루어지는 이상적인 모임이라 보기 좋았다. 애거서 크리스티 여사와 존 르 카레 관련 기사는 시간 날 때 천천히 읽어볼 예정이다.

오랜만에 접하는 계간 미스터리... 최근 몇 년 새에 신인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등단하는 신인 작가분이 많이 보여 반갑다. 늦었지만 축하드리고 부디 정진하셔서 재미난 추리소설을 많이 발표하셨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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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Q - 탐정 아이제아 퀸타베의 사건노트
조 이데 지음, 박미영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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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25세의 흑인 청년이 있다. 180이 조금 넘는 훤칠한 키에 마른 체형, 비상한 두뇌에 번뜩이는 추리... 각종 공구를 다루고, 차를 분해하는 등 다양한 손재주를 가진... 그가 바로 LA 뒷골목 소시민의 각종 사건을 저렴히 해결해 주는 '무허가 비밀 해결사 탐정' 아이제아 퀸타베이다. 책 제목 <IQ>는 주인공 이름의 약자이다.

책은 아이제아가 방황하는 10대 청소년 시절과 탐정 일에 매진하는 20대 청년 시절로 교차 서술된다. 각종 경시대회의 상을 휩쓸며 명문 대학 진학을 앞둔 17세의 총명한 고등학생 아이제아는 유일한 보호자인 친형의 죽음으로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다. 의지할 곳이 없어진 아이제아는 공황 상태에 빠지고... 설상가상으로 보금자리인 형의 아파트를 유지해야 하는 금전적 압박에 시달린다. 결국 불량 동급생 도슨에게 방을 내어주고... 그와의 불편한 동거가 시작된다.

알바의 푼돈을 넘어 범죄를 부추기는 도슨의 꾐에 넘어간 아이제아는 조그만 상점을 털어 그 장물을 이베이를 통해 되팔아 이익을 챙기는 도둑으로 변신한다. 착실한(?) 아이제아에 비해 씀씀이가 헤픈 도슨은 사사건건 의견 충돌이 심해지고... 생활비가 떨어진 도슨은 결국 마약 거래상을 습격하고, 이것이 지역 갱단 간의 전쟁으로 번져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한다. 여기서 아이제아는 자신의 삶을 뼈저리게 후회하고 타인을 위해 봉사하는 정의의 길로 들어설 것을 맹세한다.

뒷골목 소시민의 사소한 사건을 해결해 주고 푼돈을 챙기는 25세 청년 아이제아에게 후원하는 아이에 대한 큰돈이 필요할 때 마침 악연의 도슨에게 연락이 오고... 결국 거액의 수임료를 보장받고 유명 래퍼 살인 미수 사건에 뛰어든다. 누군가 60킬로그램대의 무시무시한 맹견 핏불로 래퍼를 습격한 것. 아이제아는 세밀한 현장 분석과 날카로운 추리로 개의 주인, 더 나아가 궁극적으로 그것을 사주한 배후의 인물을 추적한다.

출판사가 '21세기형 셜록 홈즈의 재림'이라고 소개하는데 추리소설이라기보다는 추리 요소가 적절히 가미된 범죄 액션 스릴러에 가깝다. 유일한 보호자인 형을 잃은 슬픔으로 한때 못된 친구의 꼬임에 빠져 범죄자의 길에 들어섰지만 자신으로 인해 평생 불구가 된 한 아이를 보고 대오 각성, 자신의 출중한 능력을 LA 뒷골목 소시민 약자에게 쓰기로 한 현대판 슈퍼히어로.

이 책의 재미를 탄탄히 받히는 것은 탐정 아이제아와 조수역 도슨의 불편한 듯 합심하는 달짝지근한 캐미이다. 절대 어울릴 수 없는, 종자가 완전히 다른 두 동급생이 룸메이트란 운명하에 한배를 탄다. 또 하나는 바로 리얼리티, 살아있는 생생한 현장감이다. LA에 거주하며 흑인 문화를 두루 접한 작가가 뒷골목에서 통용되는 그들만의 저속한 언어나 표현을 통해 갱단의 습성과 행동 방식 등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마치 내가 현장에 있는 듯 착각할 정도로 생생한 현장감을 전달한다.

책을 다 읽으니 번뜩이는 추리와 호쾌한 액션이 어우러진 갱스터 영화 한 편을 감상한 느낌이다. 가진 것 별로 없이 오로지 정의감 하나만 가지고 영민한 두뇌와 싱싱한 몸으로 때우는 20대 흑인 청년이라는 탐정 캐릭터가 무척이나 신선하다. 특히, 보호의 책임이 있는 아이 앞에서, 그리고 멀리 하늘나라로 간 친형의 메시지를 가슴에 새기며 주인공이 자신의 삶의 목표와 가치관을 재정립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무법과 무질서, 갖은 음해와 폭력이 난무하는 대도시의 뒷골목 세계를 무대로 선한 약자의 편에 서서 그들을 돕는 주인공의 활약은 오늘도 계속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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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어하우스 - 드론 택배 제국의 비밀 스토리콜렉터 92
롭 하트 지음, 전행선 옮김 / 북로드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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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사가 탑승하지 않고 무선전파의 유도에 의해 비행과 조종이 가능한 무인기 '드론'은 알게 모르게 우리 생활에 깊숙이 침투해 있다. 드론은 애초에 군사용으로 탄생했지만 이제는 고공 영상 사진 촬영과 배달, 기상정보 수집과 농약 살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특히 물류 분야에서는 드론의 사용이 단순히 배송 확대가 아니라 기존 물류시장의 구조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드론을 활용한 배송의 신속, 정확, 효율성은 기존 슈퍼마켓이나 편의점 더 나아가 대형 마트의 매출에 커다란 위협이 될 것이다.

'클라우드'는 그런 드론 택배의 정점에 서있는 세계적인 슈퍼 기업이다. 백 개가 넘는 마더클라우드 지점은 전 세계에 방사선처럼 뻗어있고 고용된 종사자는 수천만 명이 넘는다. 클라우드는 높은 급여 외에도 직원 아파트, 의료,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완벽한 복지를 제공한다. 일과 휴식 공간 등 완벽한 삶이 안전하게 보장되는 꿈의 기업 클라우드. 하지만 과연 그럴까. 그 속에서 인간은 궁극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을까. 이 책은 그런 초울트라 슈퍼 기업 클라우드에서의 삶을 심오하고 철학적으로 접근한 SF 첩보 스릴러이다.

책은 세 명의 시선으로 교차 서술된다. 먼저 클라우드 회사의 창시자이자 췌장암으로 살날이 얼마 안 남은 CEO 깁슨 웰스가 블로그 형식으로 기업 클라우드에 대해 설명한다. 창업 배경과 급여 체계, 사회에 끼친 공헌도 등 인구 감소와 먹거리 부족으로 인간의 삶이 황폐화되는 불안전한 외부 세계로부터 중추적이고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클라우드 회사에 대한 자부심과 경영 철학을 피력한다.

그러고는 남녀 주인공이 등장한다. 한때는 잘나가는 회사 대표였지만 클라우드의 저가 공세에 밀려 파산한 전직 교도관 출신 팩스턴. 그는 자신을 나락으로 빠트린 클라우드에 입사해, 제2의 삶을 꿈꾼다. 그곳에서 전직 여교사 출신의 지니아라는 여성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이는 지니아의 교묘한 술책. 지니아는 노련한 기업 스파이이다. 그녀의 임무는 정부로부터 거액의 세금을 감면받는 클라우드의 녹색 에너지 정책의 비밀을 파헤치는 것. 그녀는 시설 출입이 자유로운 보안요원 팩스턴의 신분을 십분 이용한다.

빨간색 셔츠의 피커로 선택된 지니아의 하루 일과를 좇다 보면 '현대판' 조지 오웰의 <1984>가 따로 없다. 손목에 차는 클라우드 시계는 현대판 족쇄이자 감시용 cctv이다. 출입 코드와 크레딧은 기본이고 등급 상태 등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이 시계에 의해 명령되고 감시된다. 화장실 가는 시간 15분, 식사 시간 30분도 허투루 쓸 수 없다. 물품을 찾아 지정된 컨테이너에 올려놓는 시간이 조금만 지체돼도 클라우드 시계의 등급은 녹색에서 노란색으로 바뀌며 경고등이 켜진다. 단 1초도 마음대로 쉴 수 없는 지옥 같은 업무의 연속이다.

팩스턴은 전직 교도관 출신이라는 경력으로 인해 파란색 셔츠의 보안요원이 된다. 오블리비언이라는 금지 약물 밀반입에 대한 전담반으로 투입되어 소기의 성과를 달성하자 동료와 상사로부터 신임은 두터워지고... 깁슨에게 항의하며 자신의 삶을 되찾고자 하는 최초 목표에서 조금씩 현실에 안주하는 타협점을 찾게 된다.

에너지 처리 시설로 잠입해 가는 지니아의 작전과 동선을 기준으로, 그 과정에서 밝혀지는 임무를 부여한 고객의 정체, 클라우드 기업의 사회적, 윤리적으로 비난받을 어두운 비밀들, 무한한 청정에너지 개발로 세계의 중심에 서려는 야심찬 계획, 깁슨을 암살하려는 음모와 금지 약물 밀반입 루트의 실체 등 다양하고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줄을 잇는다.

보안요원으로서 승승장구하며 클라우드의 삶에 만족하며 현실에 안주하는 팩스턴, 그런 팩스턴을 교묘히 이용하는 기업 스파이 지니아, 인간의 삶을 송두리째 통제하는 클라우드의 정책에 반기를 들고 체제 전복을 노리는 저항군, 그 중심에서 자신의 경영 철학에 무한한 자부심을 가지고 굳건히 존재감을 과시하는 창업자 깁슨 웰스. 과연 그가 창조한 클라우드는 미래의 장밋빛 유토피아인가, 아니면 암울한 디스토피아인가. 황무지에서 자유로운 삶을 선택할 것인가, 모든 것이 완벽하게 제공되는 공간에서의 통제된 삶을 살 것인가.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그런 의미에서 마지막 장에서의 팩스턴의 결의에 찬 행동은 묘한 울림을 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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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마에게 바치는 청소지침서 쿤룬 삼부곡 1
쿤룬 지음, 진실희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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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마를 사냥하는 살인마, 스녠. 그는 20살을 갓 넘은 젊은 미소년이다. 그의 목표는 단 한 가지. 영국의 전설적인 연쇄살인범 잭 더 리퍼를 숭배해서 만든 'JACK'이라는 살인 집단의 조직원을 찾아내서 제거하는 것. 그에게는 보통 사람과는 달리 살인마를 특정해내는 예리한 감각이 있다. 여기에 다비도프라는 정보 수집상이 그에게 살인마에 관한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한다. 스녠은 잭의 조직원을 찾아내 살인을 하고, 죽어가는 피살자에게 청소 팁을 알려주면서 살해 현장을 티끌 하나 없이 완벽하게 청소한다. 그야말로 결벽증의 남자이다.

책의 초반부는 그런 스녠이 다비도프의 측면 지원을 받아 잭의 조직원을 찾아내고 한 명씩 죽이면서 임무를 완성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무엇이 스녠을 살인마로 만들었을까. 왜 스녠은 평생의 목표로 잭의 조직원을 일망타진하려 하는가. 책의 중반부는 자신의 정체성에 깊은 혼돈의 세계에 빠져있는 스녠의 어두웠던 과거로 돌아간다. 어릴 적 감옥 같은 보육원에서의 지옥 같은 감금 생활...탈출한 어린 스녠을 극진히 돌봐준 누나의 충격적인 죽음과 그런 누나를 구하지 못한 죄책감...얼핏얼핏 되살아나는 악몽 같은 기억의 편린이 스녠의 호흡을 가쁘게 회고 정신세계를 교란한다.

여기에 두 명의 여성이 등장한다. 우연히 사건에 휘말렸다가 스녠을 이해하고 그에게 연민의 정을 느끼는 회사원 샤오쥔과 다비도프의 측근인 심리상담사 닥터 야오. 샤오쥔이 스녠의 친구로서 안정감을 준다면, 닥터 야오야말로 배후의 요주의 인물이다. 닥터 야오와 주인공 스녠과의 운명적인 연결 고리는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이다. 과연 스녠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과연 그는 무사히 임무를 완성할 수 있을까. 그 해답은 번외 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작품은 타이완의 유명 플랫폼에 인기리에 연재됐던 소설을 책으로 출간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신세대 감각에 상당히 자유분방하고 거침없다. 스타일리시한 액션에 잔혹한 범죄 묘사까지...마치 영화 <킬빌>을 보는 것 같다. 범죄 스릴러에 미스터리 요소를 살짝 가미한 무척이나 독특하고 개성 넘치는 작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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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쇼맨과 이름 없는 마을의 살인 블랙 쇼맨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최고은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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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보는 베스트셀러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가 새로운 시리즈를 들고 돌아왔다. 그것도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 팬데믹 현상을 배경에 담은, 2020년 겨울에 전 세계에 동시 출간한 뜨끈뜨끈한 신작으로. 탐정이나 형사가 사건을 수사하는 전통적인 방식은 너무 전형적이거나 식상해서일까. 작가는 그 자리를 대체할 새로운 캐릭터를 선보인다. 바로 '블랙 쇼맨'이다. 지금은 50대 중년의 조그만 카페 사장이지만 한때 미국 무대를 화려하게 주름잡았던 전직 마술사였던... 그런 그가 자신의 친형을 살해한 범인을 찾아 나선다. 형의 하나밖에 없는 조카딸과 함께... 여기 552쪽의 압도적인 분량으로 전개되는 블랙 쇼맨의 화려한 추리쇼가 막이 오른다.

책은 전체적으로 차분하고 점잖게 흘러간다. 속도감이 있다거나 드라마틱하게 요동치지 않고 차근차근 한 단계씩 사건의 중심부에 접근한다. 끊임없이 잔펀치를 날리다가 마지막에 KO 한 방을 터트린다고나 할까. 그런 단조로움을 채워주는 것이 바로 이 책의 주인공, 블랙 쇼맨이라는 캐릭터의 신출귀몰한 전방위적 활약상이다. 과연 민간인인 주인공이 전문가인 형사들에 앞서 어떻게 자신만의 독자적인 스타일로 사건을 수사해 나갈까. 그것이 이 책의 감상 포인트이다.

주인공의 수사 방식은 무척이나 독특하고 개성이 넘친다. 불법 도청과 감시 카메라는 기본이고, 귀신같은 손재주로 상대방의 스마트폰을 몰래 훔쳐보고, 예리한 눈썰미에 경찰 고위층과도 담판을 벌이는 두둑한 배짱, 상대를 교란시키는 즉흥적인 거짓말과 뛰어난 임기응변 등등... 어찌 보면 타고난 사기꾼 기질의 이 모든 것이 어린 나이에 혈혈단신으로 미국에 건너가 마술사로 성공하기까지 무대에서 갈고닦은 경험과 관록의 산실이리라. 하지만 수전노 같은 경제관념에 조카 돈이나 뜯으려는 파렴치한 행태를 보면 도덕성과 인간성은 거의 바닥에 가깝다. 그야말로 속이 시커먼, 음흉한 '블랙' 쇼맨이다.

또 하나의 감상 포인트는 마치 홈즈와 왓슨 콤비를 연상시키는 주인공 블랙 쇼맨과 피해자의 딸, 즉, 삼촌과 조카의 알콩달콩한(?) 캐미이다. 아버지 살해 사건의 진상을 알고자 삼촌과 의기투합했지만 때론 비열하고, 치사하고, 불법적인 삼촌의 수법을 조카는 인간적으로 신뢰할 수 없다. 하지만 그가 보여준 전방위적 정보 습득력과 날카로운 추리, 신속한 추진력 등 사건을 캐내어가는 뛰어난 재능에 감탄하며 삼촌의 수사에 일조해 나간다.

사건의 배경은 피해자가 교편을 잡고 퇴직한 자그마한 마을이다. 피해자의 제자이자 딸의 중학교 동창들이 동창회 건으로 속속 모이는 가운데 그들 대부분이 최근에 피해자와 접촉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모두 용의자 선상에 오른다. 그 배경에는 <환뇌 라비린스>라는 매가 히트작으로 인기 작가의 반열에 오른 한 동창생을 중심으로, 그 인기와 캐릭터를 이용해 낙후된 마을을 되살리려는 동창생들, 그들만의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있다. 여기에는 물론 코로나19로 인한 끝이 안 보이는 경제적 불황과 심리적 불안감도 한몫한다.

경야와 장례식 그리고 동창회를 통한 삼촌과 조카 콤비의 비밀스러운 합동 수사는 계속되고...용의자를 한데 불러 모은 중학교 교실에 삼촌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대단원의 막이 오른다. 그리고 펼쳐지는 블랙 쇼맨의 화려한 추리쇼. 과연 범인은 누구이고 살해 동기는 무엇인가. 사실 이 책을 기발한 트릭, 놀라운 반전, 의외의 범인 같은 본격 추리의 관점으로 보면 다소 심심하다. 오히려 기존의 정통성에 탈피해서 범인을 색출해내는 색다른 접근법에 집중하면 쏠쏠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수수께끼 풀이의 새로운 방식이라는 작가의 시도는 제법 참신하고 성공적으로 보인다. 독창적인 수사 방식과 비범한 추리 그리고 화려한 쇼맨십으로 무장한 블랙 쇼맨이라는 매력적인 캐릭터...거기에 조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조카와의 찰떡 캐미까지...이 책을 통해 블랙 쇼맨을 내세운 새로운 시리즈가 무사히 정착되길 기대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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